에두아르 르베 <자살>

by 예솔



행복은 나를 선행하고
슬픔은 나를 뒤따르고
죽음은 나를 기다린다
(113p)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바로 끌렸다. 그래서 바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량은 짧지만 생각이 많아져서 읽는 데 제법 오래 걸렸다.



<자살>은 프랑스 작가 에두아르 르베가 2008년에 출간한 책이다. 단락 구분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자살한 친구에 대한 파편적인 기억과 생각들을 담담하게 나열한다. 이 책이 더욱 무거운 이유는, 르베가 이 책을 출간하고 열흘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자살에 대해 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유서였던 셈이다.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16p)



초반에 자살에 대해 이런 식의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엄청 신선하고 와닿았다. 특히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면 그가 살았더라면 할 수 있고, 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게 자살한 사람을 미화하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나도 글 속의 ‘너’처럼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고통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왜 나는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건지 생각하는 것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다른 점은,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덜 불행해지리라고 믿었다는 것인데 나는 그 반대였다. 이렇게 어리고 경험이 없는 내가 겪는 고통도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데, 긴 인생을 살면서 올 수많은 시련과 불행은 얼마나 무겁고 클지 상상만 해도 힘이 빠졌다. 그게 내가 삶을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시도는 무수히 많았지만 하나도 해내지 못했다. 언제나 목표는 높았고 항상 잘해내고 싶었지만 그 마음에 먼저 지쳐버렸고, 잘 해내지 못할 것이 두려워 그냥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느껴졌다. 책에서 그의 완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제야 그의 갈증과 공허함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화자는 주인공을 ‘너’라고 부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너’에 대해 나열한다. 화자는 그와 친구 관계인 것으로 묘사되고, 그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너’는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헷갈리기도 했고, 왜 이런 방식으로 썼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른바 연막 작전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자기고백 형식으로도 쓸 수 있었겠지만, 내가 만약 작가였다면 그런 방식은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 “나는 우울증이고, 삶은 외롭고 공허했고, 자살을 생각해왔으며 결국 자살을 할 것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묻지도 않았고 대단하지도 않았던 내 삶을 발표하는 것이 수치스럽고 유난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꼭 꺼내고 싶었을 마음이 이해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남기는 유언이 될 수도 있겠고,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전하는 하소연이 될 수도 있을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외로운 삶이었으니까. 타인의 이야기처럼 전함으로써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말들을 꺼내고 싶은데 순서도 모르고, 연결할 방법도 몰라 그냥 쏟아내듯 나열하는 것.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면서 아무도 모르길 바라는 것.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다가도 깊은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세상에 사랑하는 것도, 감사한 것도, 기쁜 일도, 평범한 일도 참 많지만 그 중 하나도 나를 깊고 어두운 늪에서 꺼낼 수 없다는 것. 내 인생의 끝은 자살이라고 정해진 듯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자신이 속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제3자처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것.



책의 시작은 어렵고 혼란스러웠고, 중간은 이해와 안타까움이었으며, 끝은 동감에서 오는 짙은 쓸쓸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