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가는 곳에 마음도 갑니다.
친정 아빠가 방을 정리하다 발견한 책이라며 <제인에어>를 주셨다.
정확하게 기억한다.
<제인에어>에 빠져 지내던 초등 6학년 어느 때.
자려고 눈을 감으면 첫 페이지의 문장들이 마구 떠다닐 만큼 좋아했던 책.
빛바랜 책을 보니 그때의 설레던 마음이 왈칵 쏟아지는 듯했다.
더 마음을 울컥하게 했던 것은 책 사이에 끼여있던 작은 종이학이었다.
와아... 맞아, 이런 것이 있었지...
종.이.학.이란 것이.
한동안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존재이다.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말을 나는 그냥 미신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친구들 중에는 진짜 1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고, 투명한 항아리에 넣어 자랑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쉽다.
나도 그때 그 말을 한번 믿어 볼걸...
왜 그저 어린애들의 장난 같은 말로 생각했을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었을까?
1천 마리를 접으며 간절히 바랄 만한 소망이 없었던 걸까...?
종이학이라는 실체는 기억이 열리는 스위치가 되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아날로그 감성의 대상들이 갑작스레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쁘게 물들고, 쉐입이 잘 잡힌 단풍잎을 찾으면, 이내 책 사이에 살포시 끼워 넣고, 며칠 지나 조심스레 열어본다.
꾸덕하게 덜 말라도 안 되고, 너무 빳빳해서 과자처럼 부서져서도 안된다.
잘 코팅될 수 있을 정도의 건조함이 생명이다.
친구들끼리 앙케트 노트?(이름마저 잘 기억나지 않는다)를 돌리며 서로의 마음을 글로 주고받던 일,
늦은 밤까지 손으로 사부작 사무작 만들던, 반드시 빤짝이 가루로 마무리하곤 했던 크리스마스 카드,
손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는 일,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다 친구의 편지를 기다리던 시간.
참 멀게도 느껴진다.
분명 내가 겪은 시간들은 맞는데, "-라떼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 같아 뻘쭘하다.
갑자기 종이학을 접어보고 싶어졌다.
그때 못 해본 1천 마리 접기는 지금도 못 하겠지만,
손으로 뭔가를 사부작거리고 싶었던 것이다.
'종이학접는법'을 검색하고, 아들 방 한구석에 존재감없이 방치되어 있던 색종이를 꺼냈다.
생각보다 손이 기억하는 것이 많았다.
이미지를 대충 보고도 비교적 쉽게 종이학은 완성되었다.
새삼스레 손길로 완성된 모든 것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종이접기, 손 편지, 원고지, 그림일기, 단풍잎 말리기, 쪽지편지...
지금 우리는 손의 수고로움에 얼마나 인색한가?
갑자기 궁금하다.
요즘 학생들도 단풍잎을 주워 책 사이에 끼워놓고 말리는 감성이 있을까?
물어보면 "왜요?, 그걸 왜 하는데요?"라고 되물을 것만 같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 가을 단풍이 너무 예뻤으니까...."
정말이다.
너무 예쁘니까 그렇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있는 곳에는 손길도 가는 거니까..."
이렇게 한 마디 더 붙여서 대답해 주는 것이 좋겠다.
*손길가는 뭔가를 느껴보고 싶을 때, 혹은 그리울 때..
종이학 접기 한번 어떠실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