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 Jun 21. 2024

내 이기심의 민낯을 보는 기분

부끄럽거나 뻔뻔하거나


"디지털 불멸 시대… 돌아가신 뒤에도 'AI 부모님'과 대화"


국내 AI 전문기업이  '세계 최초로 나이 든 부모의 건강한 모습을 AI 휴먼으로 구현"했다는 소식(2023.12),

AI  복원영상으로 76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만날 수 있는 딸의 모습(2024.03)...





처음 AI의 딥페이크 기술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는데,  

1-2년 사이에 정말 우리 일상이 되어 버릴 듯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실감하게 된다.


'아,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아빠, 엄마가 돌아가셔도 이렇게 만나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처음 들었던 이런 마음과는 달리

그러나 요즘은 "감당할 수 있을까?"의 문제로 보게 된다.





적어도 생과 사의 문제는 그렇다.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이다.


AI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아빠, 엄마의 모습을 구현해 준다 한들,

이 현생에 살아 돌아오신 것이 아님은 명백한데,

 AI로 구현된 그분들의 모습을 만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신기루와 같이 잠시의 기쁨이 있을 망정,

결국엔 허망하게 끝나버릴 버릴 영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복원된 영상으로 만나는 그 엄청난 재회의 기회를

감히 "거부"할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해 본다.



<마음 1>

신기루임을 알면서도 AI 부모님을 기꺼이 만날 것,  

거짓일지라도, 영혼 없는 모습일지라도

그렇게 곁에서 볼 수 있기를 선택할 것인가?


<마음 2>

따뜻한 체온과 촉감,  내 속까지 드나들던 눈빛에 대한 기억,

설사 그 기억이 사라져 간다 해도 가까스로 움켜잡으며

살아계신 "진짜" 모습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

그래서 당장 눈앞에 보일 AI 부모님과의 재회를 거부할 것인가?



아마도 AI의 급속한 발전 속도로 보아, 머지않아!,  곧!

이런 선택을 해야 할 현실이 눈앞에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마도 내가 <마음 2> 후자를 선택한다면,

실은 "진짜 부모님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거짓일지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두렵다.

비록 AI가 만들어낸 가짜 만남이라 해도

그 만남 후에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 현실이.


만남의 기약이 있는 헤어짐이 아니라,

'생'과 '사'를 가르는 영원한 이별을 또다시 경험해야 한다는 현실...


그 끔찍하고 괴로웠던 아픈 마음,  

시도 때도 솟구치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억누르고 억누르던 그 마음을

또다시 직면하고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후폭풍이 두렵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이기적인 마음 같으니.


<마음 2>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했지만,

결국은 내가 또 힘들어 질 비록 영상이라 해도 AI 덕분에 누릴 수 있는 부모님과의 재회마저 포기하려 했던 것인가 보다.


이런 상황에서 조차 이기적인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는 나란 존재.  내 상처가 두려워 그리움마저 접으려는 마음.

내 이기심의 끝장을 보는 것 같아,

실망스러운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젊으니까 안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