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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25. 2024

아들은 왜 옷을 못 찾을까?

미스터리는 아님


"엄마~ 위에 옷이 없는데요~"


"옷장 안에 있을 거야, 찾아봐"

(약 5초 후)


"엄마~~"


"왜?????"


"없는데요?"


(분명히 있다! 제대로 찾아라, 쫌!!)


나는 냉랭해진 마음으로 아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옷걸이 사이 몇 번만 젖혀도 바로 딱! 보인다.

남색 반팔.


"이거 찾는 거 아니야?"


"어???? 분명히 없었는데....."


레퍼토리라도 바꾸던가?  

"아까는 분명히 없었는데..."는 벌써 5-6년째 똑같이 듣고 있다.

(아들 현재 고2)






"여보~~~~"


"응??"


"내 바지가 없는데??"


"옷장 아래 찾아봐, 걸어놨어"


"오케이~~~"

(이 분의 경우, 대답은 잘한다)


"여보오~~~~!!!"


대답도 필요 없다. 바로 드레스룸으로 가서 옷장 아래 부분을 열어젖히고

찾던 바지를 딱! 손에 쥐어 준다.


"어?? 분명히 없었는데...."



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명만 그러면, 그의 문제이겠거니 하겠는데, 

우리 집 남자 두 분이 모두 똑같은 증상을 보이니 

이제는 그때 그때,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성적인 대응방법을 갖추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인가 보다.


고대부터 수렵과 사냥이 주임무였던 남자들은 멀리까지 잘 볼 수 있는, 그러나 가까운 것을 보는 데는 약한 "터널형 시야"가 발달된 반면, 여성들은 좁은 동굴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적합한 "주변형 시야" 즉, 시야가 거의 180도에 달하고, 보고자 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주변까지도 볼 수 있는 주변형 시야가 발달되었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7, 김정인 디자인관리연구소장)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시각적 차이를 알고 나니 아들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도 된다.

좁고 먼 곳을 보는 터널형 시야를 가진 아들에게

주변 구석구석 살피며 자기 물건을 찾아야 하는 일이 그에게도 쉽지는 않겠다 싶다.


아,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옷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 양말!"

"엄마~~ 바지!"

"엄마~~ 베개 커버!"

 (이불 위에 올려놔도 모른다. 같은 천, 같은 색상인 베개 잘못...)


"엄마~~ 우유"

(냉장고는 옷장 보다 더 안 보임)

.

.

.

.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주 찾는 그의 물건에 영원불변한 "자리"를 정해 주기로 했다.


상의는 옷장 문 열자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 오른쪽.

겉옷은 왼쪽.

하의는 옷장아래.

양발, 속옷, 기타 잡화는 서랍마다 이름표 붙여두기.


가장 염두해야 할 점은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도 못 찾는다는 것. 

그러므로 절대 자리가 바뀔 일 없도록 늘 같은 방식, 같은 장소에 물건을 두는 것이 포인트이다.







오~~ 효과가 있었다!!!

"엄마~~~~~" 외침이 확실히 줄었다.


아, 아들 키우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복잡하지는 않구나.


딸 없이 아들만 키우는 나에게 똑 부러진 딸들은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같은 또래를 키우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영특함에 언제나 놀랄 일만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점들로 '당황의 연속'이었어도 복잡하진 않았다.

 

대부분의 문제는 '고기반찬'으로 해결된다.

한바탕 싫은 소리를 주고받아도

"아이스크림 먹을래?"라는 말에

그의 입은 귀에 걸린다.


"응? 얘는 속도 없나?"

내심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다가도

싱겁게 끝나버린 충돌의 결과에 나도 그저 풋, 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키워보니 알겠다.

하나님은 역시 공평하시구나.

아들이든, 딸이든 

부모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 할 마음이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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