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술집이라는 이름의 마음

[사탄탱고]를 통해 본 공간의 힘

by 서수정


아침마다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어떤 공간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어떤 공간은 이유 없이 마음을 흐트러뜨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책상, 운동하는 방, 햇살이 스며드는 식탁은
나를 조금 더 정리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장소에 들어서면 내 마음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크러스너 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 속 술집 속을 들여다보며 나는 그 감정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술집은 단순히 술이 오가는 장소가 아니라,
공간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흔드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실 같았다.
술집은 어둡고, 빛은 희미하고,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흔들리며 서로 겹치고, 감정은 술의 향기처럼 공기 중에서 쉽게 번진다.
그 속에 들어선 마을 사람들은 평소에 숨기고 있던 욕망과 욕심, 의심을 마치 ‘공간이 허락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흘려보낸다.


환경심리학에서는 빛이 부족한 공간, 밀폐된 구조, 소음이 많은 환경은 사람의 자기 인식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 말이 굳이 학문적 설명이 아니어도 [사탄탱고]의 술집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이해된다.
그 술집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서로의 말은 진실보다 감정의 진동으로 먼저 도착하고, 불안은 한 사람이 내뱉는 순간
곧바로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번져간다.
한 사람의 욕망이 술집 안에서 몸집을 키우면
금세 집단적 열기로 바뀌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계가 무너진 공간에서는 마음의 경계도 쉽게 무너진다.
나는 그 술집을 하나의 공간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장소처럼 느꼈다.
빛이 닿지 않으면 마음도 어둡고,
목소리가 뒤엉키면 사고도 흐트러지고,
닫힌 창문처럼 희망의 통로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 술집의 모습은 절망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번지는지를 공간으로 구현해 낸 장면이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의 일상에도 '술집 같은 공간'이 있지 않을까.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자리,
타인의 감정이 부풀려져 들리는 자리,
스스로보다 남이 더 크게 보이는 자리.
그곳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말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내 리듬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보면 [사탄탱고] 속 술집은 마을 사람들만의 비극을 담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내면의 균열을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늘 공간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공간은 늘 말없이 인간의 마음을 바꾸고
그 마음은 또 우리의 선택을 바꾼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가 하루를 보내는 장소들을 조금 더 살펴본다.
어떤 공간은 나를 지켜주고,
어떤 공간은 나를 흔들어 놓는다.
어떤 공간은 내 안의 빛을 찾아주고,
어떤 공간은 내 그림자를 드러낸다.
그것을 알고 나면 내가 어떤 공간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조금은 더 분명해진다.


술집은 절망을 드러내는 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키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공간은 결국 마음의 건축이다.
그 건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더 흔들릴 수도,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조금씩 더 나를 지켜주는 공간 속에 머무는 법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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