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관계를 배우는 공간, 사막과 별

어린 왕자 속 공간이야기

by 서수정


문학 속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인물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보다,
그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에 가깝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을 때마다 이 이야기가 동화라기보다 한 인간이 관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공간으로 펼쳐 보인 기록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공간은 직선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별에서 시작해 사막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별로 돌아간다.
이 반복적인 동선 속에는 성장이나 교훈보다,
관계를 알기 전과 후의 인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담겨 있다.
이야기의 시작에 놓인 별은 아직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이다.
어린 왕자는 혼자 살고 있지만 고립되어 있지 않고,
장미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 관계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별은 작고 폐쇄된 공간이지만, 그에게는 아직 충분한 세계다.
이 시기의 별은 자기 세계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무런 질문을 낳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별을 떠난다.


그 이동은 도망이라기보다, 아직 관계를 모르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선택한 이동에 가깝다.
떠나야 할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다음 공간으로 나아가는 상태.
그가 도착한 곳은 사막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이야기 속 사막은 가장 중요한 만남들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조종사를 만나고, 여우를 만나고,
‘길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배우는 곳.
여우와의 만남은 이 공간의 성격을 분명하게 만든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계란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을 동반하며,
그만큼 책임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막은 그래서 고립의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처음으로 성립되는 통과지점이 된다.
이곳에서 어린 왕자는 깨닫는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기에 더 깊이 남는다는 사실을.
사막은 고통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과잉된 의미가 잠시 멈추고
관계의 본질만이 남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 어린 왕자는 다시 별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별은 처음의 별과 같지 않다.
공간은 같지만, 그 안에 머무는 의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별은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의미가 저장된 공간이 된다.
장미는 수많은 장미 중 하나가 아니라,
길들여졌기에 유일한 존재가 된다.
별은 혼자의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기억으로 남는 장소가 된다.
그래서 어린 왕자의 귀환은 끝이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이해한 뒤에야 가능한,
조용한 귀환에 가깝다.


떠남과 남김을 동시에 견딜 수 있는 상태로의 이동이다.
이 이야기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관계를 배우기 위해 어떤 공간을 통과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관계를 알게 되었고, 그 관계를 안은 채 다시 별로 돌아간다.


공간은 같지만 의식은 같지 않다.
문학 속 공간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바로 이 차이다.


"소중함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는 아직 그 공간에 도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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