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새벽 사이

by 녹차파우더

까만 밤에서 1분이라도 더 가까운 새벽으로 달려간다. 달 하나 믿고 달리는 이 길은 아침과 낮보다 새벽이 더 어울린다. 타인과 보낸 시간보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지금이 자유롭고 평안하다. 외롭지 않다. 땅에서 태어난 나무들에게서 짙은 녹음이 흘려오고 아직 거리를 활보하는 자동차들은 남은 기름까지 짜내어 누구와도 어울릴 생각이 없는 듯이 마지막 레이스를 달린다.


밤이 더 빛나는 건 늦은 귀가에도 작은 거실불이 나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어디서 길을 잃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주듯 뜨거운 열기가 없어도 마음 한쪽은 괜스레 따스하다. 누군가를 향한 식탁 위 간식거리와 선물은 아무것도 아닌 날이어도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도 특별한 것이 된다.


옥상에 올라 하루동안 막아두었던 감정의 수도꼭지를 튼다. 밝은 낮에 이상적인 내가 되어 더 힘차고 진취적인 가면으로 감춰뒀던 어두운 뒤켠에 집어삼킨 울분과 후회와 눈물을 새벽으로 향하는 시간에 태워 보낸다. 무거웠던 책임은 기지개로 내려놓고 고막에 쏟아지던 소음은 잘게 부는 바람과 춤을 추는 잎사귀로 대신 귀에 끼워 넣는다.


사람 없는 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장미 한 송이 핀 행성은 어디일까? 잡동사니 닮은 생각들을 입으로 내뱉자마자 사라진다. 말하면 없어질 것들을 왜 그렇게 끼고 살았을까? 집 안에 쌓인 물건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일인데, 점점 사라질 감정에 왜 그렇게 분노하고 미뤘을까? 내일도 또 똑같은 소리를 하겠지 하며 맥주를 한 모금 삼킨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텅 빈자리에 도망쳐야 할 것들로 채워진다. 정작 가져야 하는 모든 건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고 보물찾기 하다가도 뒤따라오는 술래에게 달아나기 바쁘다. 한 번 잡히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데, 매번 제 풀에 지쳐 너라도 나를 잡아달라고 포기하곤 한다. 공허함이 커지는 만큼 또 괴로워져 울고 아쉬워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속도를 내며 빈칸에 퍼즐을 짜 맞춘다.


아침이 오는 게 싫어 새벽을 꾸역꾸역 잡는다. 망가진 오늘에게는 미련 따위 없다. 하지만 해가 뜨는 내일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달려야 하는 해 뜬 시간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밤 사이에 유일하게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는 새벽에게 빈 껍데기인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명도와 채도가 낮아지는 시간, 숨기기 혹은 드러내기 좋은 시간, 불순물 가득한 감정을 뱉어내기 좋은 시간, 하루 마무리 혹은 시작이 되는 시간, 명확하지 않은 나와 어울리는 어둠과 밝음 사이에 낀 시간이 있어 어중간한 나도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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