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손

_ 동생

by 최서영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나는 아빠의 작고 통통하고 촉촉한 손을 좋아한다. 내가 손을 잡으면 아빠도 있는 힘껏 손을 잡아준다.


항상 겁이 많았던 나는 항상 아빠의 손이 잡고 싶었지만, 아빠는 잡아줄 때도 잡아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어두운 밤길이 무서워 아빠가 나를 데리러 나와 주길 원했지만, 아빠는 나를 용감하게 키우겠다며 베란다에서만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게 무서웠지만 베란다에서 지켜 봐주는 아빠의 그림자에 의존해 후다닥 집에 뛰어가곤 했다. 이제는 어두운 길도 혼자 잘 걷지만 아빠랑 같이 걷는 게 좋아서 혼자 버스를 타고 속초에 갈 때면 데리러 나와 달라고 했고, 아빠는 느린 걸음으로 매번 데리러 나와 주었다.


아빠가 내 인생에서 가장 의존이 되었던 순간은 대학 입시 때였다. 나는 수시 전형으로 몇 개의 대학교를 썼고, 논술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야 했다. 속초에서 버스조차 잘 타지 않았던 내게, 서울의 지하철은 너무나 낯설었다. 시험의 긴장감만으로도 어지러운데, 지하철 속 인파는 나를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지하철을 타면 잘못 탄 것일 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거나, 피곤함에 지쳐 아빠에게 기대어 잠들곤 했다. 무수한 사람들 속에 아빠에게 기대어 자고 일어난 몽롱한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처음 시험 본 대학에서 시험을 보고 나와, 잔뜩 모인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빠 얼굴을 봤을 때 “아빠,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렇게 시험을 못 본 것이 아니었는데, 나 때문에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와 시험 보는 내내 나를 기다렸을 아빠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다음 학교부터는 시험을 보고 나오면 아빠의 얼굴이 갓 까놓은 삶은 달걀처럼 되었는데, 아빠 말에 의하면 시험 보는 동안 근처 사우나에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결국 눈물을 흘렸던 첫 학교와, 말간 아빠의 얼굴을 보았던 학교 두 곳을 합격했다. 나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아빠는 말했다. “교수들이 문제가 있거나 다른 애들이 멍청한 거 아니냐.” 함께 서울을 오가며 그 누구보다 합격을 바랬을 것인데도 파안대소하며 짓궂은 말을 내뱉는 아빠였다.


어릴 적 아빠는 내게 “언니는 5천원짜리가 1만 원 행세를 하고, 너는 1만원짜리가 5천원처럼 행동 한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도 참 기분 나빴을 말인데도 언니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다. 추측하건대 아빠는 자신의 성격을 꼭 빼 닮은 내가 평생을 5천원처럼 살게 될까, 어릴 적부터 겁쟁이인 나를 보며 걱정했을 것이다.


언니가 본인 성적보다 좋은 학교에 합격했을 때 아빠는 ‘둘째 대학은 어떡하지’라고 생각했고, 언니가 어린 나이에 취업했을 때도 ‘둘째 취업은 잘 될까’ 걱정했다고 한다. 엄마가 교장이 되고, 언니와 나도 안정적인 직장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 때도 아빠는 마냥 행복해 하지 않았다. 내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도, 그 누구보다 기뻐하면서도 내 승진을 걱정하고 둘째는 언제 낳을 것인지 물었다.


아빠 인생에는 성공의 기준이 있고, 자신이 그 기준을 넘지 못할까, 또 자신을 쏙 빼 닮은 딸들이 똑 같은 곳에서 넘어질까 항상 걱정한다. 내 결혼식 날, 날 안으며 ‘이제 다 보냈다!’ 후련하게 웃던 아빠의 얼굴, 내 등을 쓰다듬던 아빠의 손길이 기억난다. 지난 주말에도 속초에 내려갔을 때, 아기의 태동을 느껴보려 내 배를 쓰다듬던 아빠의 작고 통통하며, 촉촉한 손길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항상 걱정 많고, 신중하고, 고집 있는 사람. 평생 근심걱정 속에 살더라도 행복한 그 순간만큼은 촉촉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줄 사람.


내가 아빠의 걱정거리 중 하나인 것이 내 걱정이다. 이 조차 우리는 너무나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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