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언니
동생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여행메이트다. 하는 생각도, 취향도 비슷해서 여행을 가서 어떤 상황이든 서로에게 마음 상하는 일이 없다.
동생과 함께 갔던 가장 길었던 여행은 유럽여행이었다. 마지막 밤열차를 타고 간 체스키크롬로프가 내가 지금까지 갔던 여행 중에서 가장 좋았다. 가로등 하나 없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길을 캐리어를 끌며 구글지도만 의지해 한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도 숙소가 나오지 않아서 피곤한 기색에도, 별이 아름다워서 그대로 멈춰서서 밤하늘을 구경했다. 체스키크롬로프는 아기자기한 동화같은 마을이어서, 동생과 내가 헨젤이 되고, 그레텔이 되었다.
어렸을 때, 우리가족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 동생은 차멀미가 심해 차를 타기 전, 항상 귀 밑에 키메테를 붙였다. 차를 예열하듯이, 엄마의 운전이 시작 되면 동생의 뱃속도 부글부글 끓었다. 동생은 결국 까만 봉지를 귀에 걸고, 이따금 까만 봉지를 채웠다. 나와 동생은 뒷좌석만 타면 멀미가 나고 어지러웠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산 튜브형 차량베드가 여행을 가게 되면 세팅 되어 있었는데, 그것만 보기만해도 목까지 숨이 차오르고 어지러웠다.
주말이면 엄마가 모는 차를 타고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 가서 노는 것보다, 여행지를 가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차를 오래 타야 하는 게 싫었다. 가도 가도 여행지에 도착할 기미가 안 보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이 싫어서, 하루는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갑자기 혼자 걸어서 집을 가겠다고 나 홀로 걸은 적도 있다. 내가 선택한 걸음이었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나 혼자로는 집에 갈 수 없는 것을.
반면, 남편은 가족여행에 대해 나와 정반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족여행을 간 것이 손에 꼽힐 정도라, 서른이 넘은 지금도 아쉽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 남편, 딸 셋이 가족여행을 가면 남편은 자주 그 때의 아쉬움을 어제 일처럼 꺼낸다. 하루는 딸과 함께 수영장에 갔는데, 어렸을 때 가족 모두가 수영장을 놀러갔는데, 그 기억이 즐겁고 강렬해서 엄마가 입었던 수영복까지 기억이 생생히 난다고 했다. 남편은 딸을 키우며, 그때의 어린 자신과 어린 부모님을 자주 떠올린다. 사실 지금 부모가 되고 생각해보니, 아무리 어려운 형편이라도 시간과 돈을 조금만 투자해서 가족과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더 좋은 유년의 기억이 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의 뜻과는 다르게 나는 남편의 그런 생각들이 지금처럼 좋은 아빠가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는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가족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건 아빠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다. 극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빠와 면회를 하면서 생각했다. 아빠의 심장이 멈춰버렸다면, 아빠와 다시는 무엇이든 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아빠의 심장은 다행히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빠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괌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막상 내가 주도해서 여행계획을 짜려니, 엄마와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조건 여행 프로그램은 꽉 차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괌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알아봤다. 가족들 앞에서 기본적인 영어회화도 못하는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뜬금없지만 전화영어도 시작했다.
막상 간 여행지에서는 내가 짠 여행계획들이 다 어색했다. 날은 너무 덥고, 미리 짜놓은 여행스케쥴은 자꾸 꼬였다. 그 와중에도 뒤를 돌아 뒤쳐져 걷는 엄마와 아빠가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수시로 확인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짠 여행프로그램이, 엄마와 아빠의 낯빛을 보면 최선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가 나와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엄마와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가 좋아할 것 같았던 여행 프로그램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그저 숙소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맥주 마시는게 제일 좋다고 했고, 엄마는 딸들과 함께 있는 시간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시간을 쪼갠다', '시간을 내본다'는 말은 사실 좀 말이 안 된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 해서 흐르고 있다. 시간을 내지 못 했다는건 결국 당신이 시간에게 지는 것에 배팅을 걸었다는 의미이고, 당신이 최종적으로 그 배팅에서 이겼다는 의미이다.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면서, 시간에게 지지말자고 아빠의 가슴에난 수술자국처럼 내 가슴에도 아로새겼다.
최근에 간 가족여행으로 베트남을 갔다. 여행에서 여행프로그램은 동생이 맡았고, 나는 엄마를 맡았다. 아픈 할머니를 돌보느라 아빠는 함께 가지 못 했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프로그램 보다는 엄마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자는 마음으로 떠났다. 엄마와 같은 방을 쓰고, 엄마와 팔짱을 끼며 들여다 본 엄마의 마음은 충분함 그 자체였다.
가족여행이 그렇다. 낯선 공간, 그리고 가족만 있다면 어떤 여행이든 마음이 충족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 모두가 시간을 비울지를 상의하고, 예약만 한다면 일단 반은 성공이다. 여행지에서 싸우든, 스케쥴이 꼬이든 사실 여행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다.
그 여행이 당신의 과거가 되었을 때, 인화 된 사진들처럼 깊은 잔상으로 남을 '가족' 그리고 '여행'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