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해답은 그 곳에 있다

_ 언니

by 최서영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보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술을 참 많이 좋아하셨다고 한다. 어렴풋하지만, 술에 취해 집 앞마당에서 맨발인 채로 아이처럼 통곡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엄마 그 이상으로 돌봤다.


내가 울면 할머니는 항상 우는 나를 안아주며 "그랬구나, 우리 아기가 그랬구나" 다독였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내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모르고 달래는 게 화가 나 더 많이 울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전화기도 없던 나는 학교 교문에서 할머니가 우산을 들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멀쩡한 우산 하나를 손에 쥐고, 망가진 우산을 쓴 할머니가 저 멀리서 걸어오셨다. 내가 힘들 때 언제나 나를 안아주는 사람, 할머니의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할머니는 항상 등교를 나서는 나를 아파트 창문으로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언제나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뒤를 돌아 할머니에게 손 흔들어 인사할 때도 있었고, 무엇인지 토라져 있던 날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할머니의 실루엣은 어린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외롭고 슬퍼 보였다.


집 앞 커다란 밤나무 아래 뜬금없는 집 한 채가 있었다. 그곳엔 혼자 사는 또 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 밤나무 할머니를 보러 동생과 나를 함께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할머니들은 항상 구슬피 울었다. 할머니는 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울기만 할까. 심심했던 동생과 나는 밤나무 아래서 흙을 파고 놀았다.


놀다가 집 없는 민달팽이를 보게 되었다. 너무 신기해서 맨날 민달팽이 그림만 그렸다. 쌀쌀한 겨울날이면 밤나무 할머니네 집 구들방이 좋아 우리 할머니 무릎베개에 술 먹는 할머니들 아래서 잠이 들곤 했다. 술에 취한 우리 할머니는 비틀거리며 다시 집을 향했다.


유독 술을 많이 마신 할머니는 그날 나와 동생의 존재도 인지하지 못 한 채 길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길바닥에 쓰러진 할머니의 얼굴은 붉고 젖어있었다. 거실에 구토하고 쓰러진 할머니를 보고 나는 계속 울기만 했다. 시간이 지난 후 엄마와 아빠가 돌아와 모든 것은 정리됐지만, 나는 한동안 거실, 특히 토했던 자리가 너무 무서웠다. 할머니가 나중 되어 그 밤나무집에 살던 할머니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그 밤나무 할머니와 틀어진 이야기만 내게 전해주셨다.


어린 내가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슬픔, 할머니의 어린 자아가 그곳에서 울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아픈 할아버지 때문에 큰 마음고생을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술을 입에조차 대지 않으셨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할머니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을 계속해서 떠올려본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할머니도 안아줄 사람이 필요했잖아.”


어떤 이유든 어떤 하루든, 나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 가족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정리한다. 가능하다면 실제로 편지에 쓰거나, 소리 내어 전하기도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을 정리하다 보면, 내 인생의 고민, 문제, 사건들에 대해서도 후회 없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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