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뮬레이션

_ 동생

by 최서영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할미'다. 하는 행동이나 말이 할머니 같다는 의미로. 할머니와 20년을 살다 보니 할머니의 버릇이나 말투를 많이 닮게 됐다. 얼굴도 할머니부터 아빠, 나까지 이어져 오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서, 지금의 딸까지 나를 빼다 박았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나의 주 양육자였고, 성인이 되기까지 나는 늘 할머니 옆에서 잤다. 어릴 땐 할머니가 가꾸던 텃밭에 같이 나가서 수다 떠는 게 낙이었고, 하굣길에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밭두렁 과자를 사 오곤 했다. 집에 오면 라디오로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좋았고, 바퀴벌레도 맨손으로 척척 잡아내는 할머니가 멋있었다. 음식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먹었던 나에게, 할머니는 한번 잘 먹으면 같은 반찬을 몇 달씩 주셨고 그런 점이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철없는 시절에는 밥 먹을 때 할머니가 이것저것 말씀하시는 게 싫어서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오면서 고향 집을 떠날 때는 할머니를 보지 못하는 슬픔에 버스에서 눈물을 흘렸고, 입학한 첫해 술에 취하면 할머니 보고 싶다고 우는 주사가 있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친구들이 놀린다)


그러다 몇 년 전 할머니가 고관절 골절로 입원하시는 일이 생겼고, 활동적이고 건강했던 할머니가 병실에 누운 모습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할머니는 병원 입원 후 섬망 증상과 의료진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을 해서 모두가 애를 먹이기도 했다. 병원에 적응하지 못한 할머니가 밥을 한 술도 안뜰 땐 나는 그 옆에서 갖은 애교를 부리며 한술 뜨게 만들었고, 할머니의 섬망 증상이 심해져 나를 몰라봤을 땐 병실을 나와 남들 눈 신경 쓸 겨를 없이 울었다.


다행히도 그 후 할머니는 잘 회복하셔서 지금은 엄마, 아빠와 집에서 지내시지만, 그때 이후로 언제든 할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의 모토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하자'는 것이어서, 할머니가 편찮으셨을 때는 주말마다 고향 집에 내려갔었다. 그런데도 가끔 할머니를 더 자주 보지 못한 것이 아쉽고 죄송스러울 때가 많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내려가서, 할머니와 손잡고 몇 시간씩 수다 떨면서 잠들고, 할머니 머리가 아주 길면 할머니를 모시고 집 앞 미용실에 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난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주로 퇴근길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하는 생각인데, 몇 년 전 아빠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연락 받았을 때 이후로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아마도, 엄마나 아빠, 혹은 그 소식을 먼저 들은 언니가 나에게 전화할 거고,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울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끊거나 남편 차를 탈 것이다.


그 동안 할머니에게 했던 못된 말이나 잘 해 드리지 못한 걸 먼저 생각하게 되겠지만, 나는 이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할머니와 좋았던 추억을 되새기려고 노력한다. 내가 집에 가면 환하게 웃으면서 반겨주는 할머니 얼굴, 미용실에 다녀오면 흡족한 모습으로 거울을 보며 자신의 새하얀 머리를 쓰다듬던 할머니의 모습,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한 손은 임신한 내 배를 만지면서 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의 행복감. 항상 시뮬레이션 끝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의 이러한 시뮬레이션은, 충격과 아픔을 덜 해줄 수 있는 장치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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