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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출발을 못 하겠어요” 보텍스, 엘보큐브

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최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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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업에서 폴에게 안쪽 허벅지 공격을 당했기에 선생님에게 허벅지 안 쪽을 쓰지 않는 동작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수업에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 한 아픔이라고 했었는데, 수업 후에도 허벅지 안쪽에 든 멍의 모양이나 지속적인 아픔이 고통스럽다기보다는 멍이 너무 신기하고 내 몸 안쪽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해부를 해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허벅지 안쪽이 부풀어 올라 새카맣게 화산송이처럼 검고 짙은 멍이 생겨있었다. 방금 폴을 탄 것처럼 누르면 아직도 생생하게 아프다.


오늘은 쉬운 동작을 배우려나. 오늘 배우는 동작의 이름은 ‘이지보텍스’라고 한다. 이지보텍스는 보텍스 동작을 쉬운 버젼으로 한다고 해서 이지(easy)를 붙였다고 하는데 나에겐 전혀 easy하지 않았다. 입문반에서 하는 거의 모든 동작들은 ‘이지’가 앞에 붙거나 ‘변형’이 뒤에 붙는다. 어제 수업에서는 ‘손을 왜 놓지?’ 였다면 오늘은 ‘어떻게 시작하지?’라는 질문이 내 눈앞을 가렸다.


오른 오금을 폴에 걸고 오른팔 안 쪽을 폴에 낀다. 그리고 양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출발한다.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동작이라고 느끼는 게 일단 이 자세만으로도 벌써 오른 오금과 팔이 아프고 두 손이 깍지가 껴있고 출발을 하려면 폴이 회전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출발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선생님, 출발을 못 하겠어요.”


요가도 해보고 필라테스도 해봤지만 선생님이 동작을 선행하면 그것을 완벽하게는 못 하더라도 뚝딱거리면서 따라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폴댄스 동작은 조금 다른 차원의 운동 같다는 것을 매번 경험하는 게 애초에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동작이 많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출발을 못 하는 모습은 순간순간 고장 난 로봇처럼 멈칫 거리거나 동작을 이상하게 해서 주변 수강생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사실 동작을 배우는 과정이 모방의 연속인지라 이러한 시행착오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니 나의 우스꽝스러움은 예견되어 있다.


그래도 선생님이 몸을 받쳐주어 동작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다들 못 했지만 연습하다보니 혼자서도 동작에 성공하는 수강생이 나왔다. 진도가 나갈수록 그 다음 동작을 배우는 수강생이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스스로 시작하지 못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동작을 어떻게 시작하라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시작도 못 했는데 왜 온몸에 땀이 나는지는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습을 할수록 오른 오금은 잘 끼워지지 않고 폴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폴에 끼운 오른쪽 팔도 힘이 점점 빠져 헐렁해져갔다. 그래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동작을 개선해나갔다. 머리가 폴에 가까워지면 안 되고 왼쪽으로 머리를 기울여 최대한 폴에서 떨어져야 끼운 오금과 팔에 부담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출발도 못 했는데 그래도 시작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힘이 빠져 다음 동작을 할 수 없으니 선생님은 클라임으로 폴에 올라간 뒤 다른 동작을 배워보자고 했다.


나같은 입문자는 도입 동작으로 동작을 하는 것보다 폴 위에서 동작 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진다. 어렵지만 동작을 배워보고 연습 해도 안 되면 그 때 동작을 조금 더 쉬운 버전으로 바꾸거나 뺀다. 한번 클라임을 하면 폴 위에서 기동력을 가지기 훨씬 더 수월해진다. 클라임의 역할은 폴의 높이에 있는 동시에 폴의 회전에 있다. 멈춰 있는 폴 보다 도는 폴에서 동작하는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그렇게 클라임 후 배운 동작은 바로 ‘엘보큐브’다. 엘보큐브는 오른 엘보를 걸어 뒤에서 두 손을 깍지 낀다. 손으로 폴을 잡는게 아니라 엘보를 걸어서 폴 위에 있는 동작이다. 동작을 배우는 순간에는 무섭지만 막상 용기를 내서 폴에서 손을 떼면 떨어지지 않고 동작을 성공한 내가 폴 위에서 멋지게 폴을 돌고 있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폴댄스를 배우는 날은 그런 용기를 얻는다.


괜찮아지고 있는데 완벽하게 못 해서 멈춰버리거나 실패라고 여기고 멈추었던 순간이 살면서 얼마나 많았는지 폴댄스를 배우면서 반추해보기도 한다. 어떤 정신과 전문의가 스트레스를 푸는 요령에 대해 “쌓아두지 않는 요령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폴 위에 늘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라서 오히려 완벽했던 것 같다.


이전에는 단순히 동작의 난이도로만 폴댄스를 생각하고 쉬운 난이도도 못 해내는 내게 자책 하는 순간이 많았다면, 이제는 나아지고 있는 과정과 순간에 몸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움직인다. 지금은 서툴지만 다음번엔 더 예쁘게 동작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안 될 거라며 자책하거나 조금 해보고 힘들다고 단념하고 포기했던 무수한 나의 어제에게 오늘만큼은, 온몸으로 말을 걸었다. 완벽하게 자세를 못 해내더라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하다고.


폴댄스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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