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오늘 묵상한 말씀은 요한복음 18장 1절부터 13절 말씀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를 지나, 더 이상 숨지 않으신다. 유다와 군대,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이 횃불과 무기를 들고 올 것을 아시고도, 스스로 그들을 마주하신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 질문은 상황을 주도하는 자의 담담한 선언 같았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고 하신다. 사람에게 잡히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전혀 잡혀 있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순종하며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셨다.
묵상하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디에 붙들려 있는가? 어디에 잡혀 있는가? 고난이 닥칠 때, 두려움에 붙들리는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까 불안해하며,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는가? 제 멋대로 해석한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가?
예수님 곁에서 칼을 휘두른 베드로처럼, 나도 종종 잘못된 열심으로 주님의 일을 하려 들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깊게 다가왔다. 베드로의 칼은 충성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칼이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칼을 휘두르면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하나님은 전쟁을 원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통로를 통해 구원하시는 것. 예수님은 하나님의 방향을 아셨다.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도 주님이 주신 칼이구나. 죄인 주제에 ”해주세요, 이뤄주세요”를 외치는 게 염치 없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드리는 기도, 그것이야말로 바르게 휘두르는 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하는 마음도 조심스러워졌다. 은사도 마찬가지다. 주님이 주신 것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도도, 은사도, 사람도, 내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도를 헤아리며 다뤄야 할 거룩한 도구임을 배운다.
그래서 요즘은 기도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말하기보다, “주님, 제가 지금 이 칼을 휘둘러도 되는 건가요?” “지금은 기다려야 하는 때인가요?” 그렇게 물으면서 천천히 내 안을 살피며 기도하게 된다. 함부로 휘두르지 않기 위해, 더 깊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여전히 붙들려 있는 것이 많다. 사람의 시선, 성과에 대한 욕심, ‘내가 뭔가 해내야 한다’는 부담.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조용히 말씀하신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진정한 자유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머무는 것이다. 이제는 기도도 칼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리라. 그분이 주신 것은 그분의 뜻 안에서만 빛나니까.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