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동생
자아실현은 회사 밖에서 하세요 _ 동생
24살, 지금 회사에 입사해 8년차 대리로 일하고 있다. 출산 후에는 휴직자로 전환되겠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인턴부터 시작했는데, 사실 인턴은 2개월 동안 프로젝트 수행하는 거라 회사를 제대로 맛보기 하지 않고, 과제에만 집중하다 끝났던 것 같다. 이듬해 초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면서 몇 십 개의 회사에 지원을 하고, 결국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됐다. (다른 회사도 최종 합격했었는데, 아주 가끔 아른거린다)
운이 좋게도, 신입사원 시절 배정받은 팀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서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데, 월요일 아침마다 커피를 함께 마시는 자애로운 팀장님과, 스마트한 업무 처리 능력으로 배울 점이 많았던 사수들, 만나면 항상 광대 아프게 웃을 수 있는 동기들이 있었다. 그 때는 야근마저 즐거워서 야근 인증샷을 찍어 올렸고, 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지만 전공과 연관이 있는 일이었기에 재밌게 할 수 있었다. 소위 '꼰대' 역할을 하는 사림이 없어서 신입의 패기로 이런저런 시도도 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즐겁고 유익한 신입 시절 2년을 겪고 팀을 옮기게 되었는데, 옮긴 조직도 하던 일과 유사한 업무, 좋은 사수와 잘 맞는 선배 후배들을 만나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직장인 모두에겐 위기의 순간이 온다.
이전에 있던 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팀원도 상사도 여러 번 바뀌면서 '내가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항상 손 빠르고 일 잘한다고 칭찬만 듣던 내가, 부족한 점을 지적당하고 이건 왜 이렇게 했냐고 원망이나 꾸중을 듣게 되었을 때 말이다.
업무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잘 맞고, 보람도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지만, '자존감'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원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방어하고 있던 자괴감이 한 번에 몰아칠 때가 있었다. 이 일을 몇 년 해도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아무도 나의 열정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퇴근길마다 처량한 눈물을 흘리던 때도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한 동기 언니가 나에게 혜안을 제시했다.
“자아실현은 회사 밖에서 하세요.”
나는 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회사 밖에서의 내 모습을 분리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요즘 말로 하면 본캐와 부캐 개념으로, 회사 안에서의 모습은 일종의 부캐인 셈인데, 회사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 본캐마저 상처를 입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회사에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하고, 내 역량을 다 뽐내며 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선배들은 이런 나에게 “내가 알던 너는 여러 색을 가진 파릇파릇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잿빛”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내가 제대로 된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은 것인지는 나이 서른이 넘어도 아직 잘 모르겠다. 매일 누군가의 말에 열을 내고 상처 받지만, 이 감정을 집까지 가져가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퇴근 후에는 회사 일에 대해 가급적 잊으려고 노력하고, 회사일 외에도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간다.
신입사원 때는 8년차쯤 되면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아직도 나는 그냥, 내 모습이다. 대단한 무언가가 될 줄 알았지만, 항상 내 모습 그대로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휴직 기간 동안 내 본캐를 단단하게 다듬으면서, 직장인으로서의 부캐를 재정비할 시간을 (강제로) 가져보려고 한다.
1년 만에 복직하면 프로페셔널한 내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
아마 8년이 더 지나도 나는 그냥, 내 모습일 거고, 내가 꿈꿔온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퇴사 직전까지도 이루지 못할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회색빛이 되어 애기 분유값 벌기 위해 출근하는 출근봇, 워킹맘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회사 밖에서의 나와 분리된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잘 다듬어간다면 내면만은 단단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