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_ 언니

by 최서영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_ 언니


나는 10년차 계약직 공무원이다. 계약직 공무원. 띄어쓰기를 사이에 두고 양극의 지점에서 단어들이 충돌한다. 마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이 두 단어 사이에는 서로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이질감까지 든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이렇듯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띄우는 일이다. 사람들은 나같은 계약직 공무원을 어쩌다 공무원이 됐다고 해서 '어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어공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사실 공공근로 형태나, 시간제 형태로 계약직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얼마 전, 면접을 다시 보고 재계약에 성공한 동료와 송환영 회식이 끝나고 지하철 역까지 비오는 거리를 함께 걸었다. 재계약을 했다고 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얼굴을 한 동료의 얼굴이 유독 신경이 쓰이던 날이었다.


용기를 내어 동료에게 물었다.

"언니는 그럴 때 없어요? 누가 내 마음 속의 호롱불을 꺼줬으면 할 때요."


그만 둘 용기는 없어 계속 하던 일을 하고, 이러다 재계약이 되지 않아 버렸으면 하는 마음.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지 않는 내가 싫어 차라리 내 불씨가 타의에 의해서 꺼져버렸으면 하는 마음.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지만 용기가 빠진 마음이다.


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너도 그랬구나. 사실 나 뿐만 아니라 달로(다른 계약직 공무원)와도 그런 이야길 자주 했거든. 그 언니도 그렇대."


나는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 언니도요?"


나만의 모난 생각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기는 했지만, 이대로 사는 것이 정말 괜찮은걸까에 대해서는 모두가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 했다. 동료와 짧은 대화를 끝으로, 나는 내 마음 속의 호롱불을 자주 들여다 본다. 나는 코 앞에 닥친 업무를 해내오느라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내 호롱불을 애써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 세 가지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꿈'이라고 통칭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라는 책장을 세심히 넘겨볼 일이다.

나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살면서 '잘 하는 것'에 주로 집중해왔다. 내가 잘 하는 것은 홍보마케팅이다. 사회생활을 한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른 것들은 뒤로 하고 오직 홍보마케팅이라는 내 커리어만 보고 달려왔다. 반면,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고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꿈은 작가인 아빠와 함께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글을 쓰는 것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좋은 선배와 선생들이 글을 써야한다는 말을 안부처럼 건넸지만, 나는 외면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출산을 앞두고 만삭의 몸으로 중학교 동창친구를 집에 초대해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다. 우리 중 가장 많이 변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친구는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이 나라고 했다. 졸린 눈을 번쩍 뜨고 나는 친구에게 그 이유에 대해 다시 물었다. 친구는 "어렸을 때 내가 본 너는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타인의 눈을 더 많이 의식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좋은 의미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는 어른으로 컸을지 몰라도, 나쁜 의미에서는 스스로를 많이 누르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후로는, 자기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도 많이 들어왔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의 유년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친구의 말대로, 지난 날의 나를 돌이켜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의미를 점점 지우고 살았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나의 생존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가끔씩 울컥 하고 참아왔던 것들이 발현되는 순간이 존재했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잘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하며 살아왔다. 매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남편을 보며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직장을 잘 다니고 있음에도 햄버거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말하거나,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볼까 교재를 주문할 때가 있다. 전에는 그런 행동과 말들이 잘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은 끊임 없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스스로가 잘 하는 것,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돌아보기를 조언한다. 각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왔는지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대화는 이질감 없이 통했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었는지는 서로 달랐지만, 결국 우리가 가진 목적은 같았다. 인생을 후회없이 살고 싶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장점을 잘 알고, 잘 이용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과 연결지어 결국엔 균형을 잘 이루며 산다. 그래서 가끔 좋은 어른을 만나면, 잘 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노력해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잘 하는 것으로 만든 사람도 만난다. 요즘의 젊은 세대는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의 경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철저히 그것을 분리하여 살고 그만큼 불필요한 생각도, 감정소모도 없다. 어떤 것이든 각자가 만든 인생의 방정식이다.

나는 항상 잘 하는 것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크기로 따지면, 잘 하는 것에 대한 개발이 상대적으로 크기에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크기를 조금씩 늘리는 연습 중이다.


각자 그 균형감을 키우는 방식은 다르고, 고민해볼 일이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혼자 지내도 항상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끊임 없이 하는 할머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용기라는 것은 무모하게 방향을 트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무수한 노력의 시간들과 전략적 계획들이 있다면, 내가 내 호롱불을 스스로 끌 날이 올 것이며, 두고두고 뿌듯해 할 나만의 방정식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소셜쟁이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