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타는 엄마들

워킹맘다이어리 ep.19

by 최서영


에메랄드 그린. 그 나무의 이름이라 했다. LH 직원들이 신입이든 경력이든 땅을 사서 한겨울에 심었다는 투기의 나무. 심으면 900% 수익률을 자랑한다는 마법의 나무. LH신입 직원은 "회사에서 잘려도 평생 일해 번 돈보다 많다"는 말을 그냥 직원들끼리 웃으라고 했다고 한다. 묘목이 무슨 죄고, 땅이 무슨 죄겠나. 그저 가만히 불구경 하는 나같은 사람만 불쌍한 것이다.


여보, 우리도 텃밭이나 가꿀까. 텃밭 1순위가 가족애사라고 해서 아버님의 암 증명서를 제출했다. 나같은 사람이 증명할 수 있는건 가난이나 질병 뿐이다. 그래도 텃밭을 분양 받으면 고구마, 토마토, 상추 심겠다고 들떠있다. 확 나도 나쁜 일을 저지를까. 아무리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따진들 세상은 공평하지가 않은데. 그러니까 그 때 빚을 내더라도 집을 사고 땅을 샀어야지! 이젠 정말 사고싶어도 못 사!


숙제를 안 한다는 숙제


이번 주는 개인적으로 '쉼 주간'으로 가질 예정이다. 뭘 한다고 바빴을까. 쉬자고 마음 먹어보니 다 누가 시킨 일들이 아니라 나 혼자 정한 일을 숙제처럼 해오느라 바빴다. 그래서 이번주는 맨날 내는 글쓰기 수업 숙제들을 일부러 안 해보기로 했다. 오늘 택배로 도착한 신간 책도 너무 읽고 싶지만 이번 주는 읽지 않기로 했다. 남편 왈, 당신의 병명은 과부하입니다. 제발 쉬세요, 라고 했다. 그래도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남편 뿐이다. 멍청하고 순진한 사람의 일탈은 서른 네살 먹고 담배 처음 폈어요! 같은 류 뿐이다.


그러나 '쉼 주간'이라고 해서 나도 내 손가락은 못 말린다.

"여보, 쉬어도 글은 써도 되지?"

"안돼!"

"글감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녀."

"아이고, 그럼 쓰세요."


신난다. 일기에 욕이나 한 바가지 써야지. 쉼 주간이라고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문자를 날리고 있다. 잘 지내는지, 내 도움이 필요 한지, 필요 없다면 그냥 줌이나 키고 맥주 한잔이나 하자고. 나보다 1년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한 선배는 퇴사한지 벌써 5개월이나 지났다고 한다. "퇴사하니 어때요?" 선배는 내가 물어보기 무섭게 "절대 후회가 없다"고 답해줬다. 나는 안다. 저 단호함은 단숨에 나온게 아니다. 저 한 마디를 뱉기까지 선배는 아이를 안고 천리길을 걸어온 것이다.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해 여성의 날이라고 여기저기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이 떠든다. 정작 그 마이크를 쥔 사람들은 주체자가 아니다. 바보들, 이 문제의 모든 원인이 바로 그것 때문인데. 하긴 다들 아이는 뚝딱 크는줄 알지. 우리 같은 애엄마들 마음은 몰라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가녀린 몸뚱이로 애엄마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세상은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 우리 진짜 대단한 일 하고 있는거야. 우리 없으면 당신들 세상에 없었다고.


마이크는 본인이 뺏어서 잡아야지. 남들이 들이대주지 않는다.


어디 마이크 뿐 일까. 사회의 보상이라는 게 그렇다. 자진해서 구질구질한 것들을 다 까발려야 보상을 해줄까말까다. 신혼희망타운. 그깟 경력 조금 잘못 기입하면 기회는 영영 없다. 수능 치루듯 청약을 넣는다. 실은 보상이 아닌데. 빚을 지고 투기장에 뛰어드는 것 뿐인데.


지난 주말 키즈카페에 다녀왔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건데." 동요가 카페에 울려 퍼졌다. 의자에는 좀비처럼 고개를 떨구고 핸드폰만 보는 아빠들이 투성이다. 아이 옆에는 다 엄마들 뿐. 아빠는 아빠노릇, 엄마는 엄마노릇을 한다. 역할 나누기라는 것은 무진장 모호하지만, 결국 통념적인 그릇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사회의 구멍이라 여긴다.


나는 1년 육아휴가 1년 단축근무 대신 2년 단축근무를 선택했다. 아이가 생후 60일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직장에 나갔다. 사람들은 알까. 생후 60일이 넘은 아이의 무게를. 그 작디 작고 가녀린 핏덩이를. 난 그 아이를 두고 출근을 했다. 단축근무를 한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단축근무도 3개월 남았다. 3개월 후에는 나도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아이는 또 어떻게 키울지 모르겠다. 에라이. 어떻게 되겠지. 한 달에 고작 몇 십만 원을 더 벌어보겠다고 난 내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는거다. 마침 계약직 신분도 그 때 만료가 된다. 다시 들어가려면 계약직 공고가 다시 나야 한다. 계약만료일이 다가올수록 떨리고 불안했었는데, 어째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수상하다. 나 점점 단호해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LH신입직원은 땅으로 농담을 나눴다지. 나는 애엄마들과 사랑한다느니 힘내라느니 눈에는 또 잔뜩 눈물이 고여서 농염한 진담을 나누고 있지. 우리 벌써 갱년기일까. 계절이 어찌 바뀌고 있는지 모르다가 봄이 와 버린줄도 몰랐잖아. 우리 봄 타고 있는걸지도 몰라. 요즘 파 값이 엄청 올랐는데 파나 심어볼까. 하루에 800원 어치씩 자란다는데. 아, 이젠 내 탓하는 것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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