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질문

워킹맘다이어리

by 최서영

퇴근 후 빵집에 들러 모닝빵과 생일초를 샀다. 오늘은 아이가 태어난지 700일이 되는 날이다. 별 날은 아니지만 초 부는걸 좋아하고 빵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사봤다. 빵과 초를 들고 어린이집 앞에 섰다. "너의 적응을 응원해"라는 문구가 문 앞에 걸려있었다. 새로운 반으로 올라간 아이가 이번주 내내 새로운 반에 적응하지 못 했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사실 엄마도 힘들어. 오죽하면 인사이동 전 날 밤을 샜겠니. 그런데 엄마만 그런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 그게 너에게 위로가 될까? 속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이 작고 여린 것이 벌써부터 사회생활이라니. 신통방통하고 짠하기도 한 것이다. 신학기에는 아이들 모두가 예민해져있기 때문에 몸도 약해져서 아프기도 쉽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게 늘상 벌어지는 일이라니 걱정하지말라고 위로해줬다. 곧 괜찮아지겠지 나도 아이도 다독이며 한주를 보냈다. 그런데 웬걸. 오늘 아이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가 이제는 적응을 완전히 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다행이다.


아이 어린이집 하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엘레베이터에 탔는데 겉싸개로 꽁꽁 싸맨 아이를 안고 한 아기엄마가 엘레베이터에 들어왔다. 우리 아이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나는 사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지나가다 아이들만 봐도 고개가 뒤통수까지 꺾이도록 생판 모르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한다. 너무 귀엽다. 귀여워서 미치겠다. 그런데 오늘은 계탔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신생아를 만나다니. 아기엄마는 딱 보아하니 조리원에서 갓 나온 아기엄마 같았다. 화장끼 없는 맨얼굴이 뽀얀 신생아 얼굴 같았다. 아기도 엄마도 무척 예뻤다. 그래서 초면인데 실례인걸 알면서도 나는 그 둘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따가운 시선 탓인지 아기엄마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보더니 물었다. "몇 주세요?" 나는 잠깐 머뭇하고 눈알을 굴리다가 "23개월이요"라고 답했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 엄마는 아, 몇 개월이라고 물었어야되는구나 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질문과 비슷한 답변을 받은 적이 있다. 길에서 만난 아기엄마에게 몇 개월이에요? 물어봤는데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섯살이라고 답하던 때가. 나중 되어서는 저 엄마처럼 나도 몇 개월인지 까먹고 말겠지. 누구의 질문과 누구의 답이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 다 각자의 위치와 환경이 다를 뿐이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또 생각했다. 내 글도 사람들에게 저렇게 보이겠구나.


그냥 내가 처한 상황에 푹 매몰 되어서는 내 기준에 맞춰 그것이 정답인양 떠드는 사람. 그게 바로 요즘 내 모습이다. 그래도 내 바보 같은 질문을 아직까지는 예쁘게 봐주면서 친절하게 호응해주는 사람들 덕에 조금 덜 민망해하며 떠들며 살고 있는거다. 아직까지는 젊고 패기가 있으니까 예쁨을 받고 있는거다. 그러니까 늦기 전에 그것을 깨닫고 내 삶에 자꾸 적용해보면서 내가 맞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매일 매일 깨부수며 살아야하는거다. 그 생각의 변화가 빠르게 내 삶에 반영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내 주변으로 바람 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번 주는 몸이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야외출장 때문인지 지난주 걸렸던 장염때문인지 아니면 나도 신학기 적응하듯 뭔가를 바삐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 수상한 일기를 연재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성화다. 저렇게 힘들게 아이 키우는 친구에게 일 시키지 말라는 직장동료들도 있고, 생각이 너무 많고 우울함을 달고 사는 나에게 생각 없이 긍정적으로 사는 법을 전수해주려는 친구도 등장했다. 나를 아까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 과부하를 멈추기 위해 난리다. 모두 다 날 위한 배려하고 있다.


나는 그 진풍경을 혼자 보고 느끼는게 아까워 이렇게 또 글을 쓴다. 난 이 변화들이 너무 재밌다. 아, 내 글 하나로 이렇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신경 쓰이게 하고 있구나. 이게 뭐라고. 이런걸 영향력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안 되지. 감히 영향력이라니 말도 안 되지.


주변사람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나를 멈출 방법을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다보니 내가 노잼인 것도 알겠고, 하지 않아도 될 생각과 우울을 끼고 사는 것까지는 알았다.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능한 그러지 않으려고 마음은 먹고 있다. 성급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에 조금 천천히 다듬으며 저강도로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은 이제 슬슬 든다. 적응해보자. 와, 이제 진짜 봄이 온 것 같다.

이전 06화봄 타는 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