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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Dec 09. 2023

협업을 부르는 프로세스로
교육과정 반성회 살리기

『선택 설계자들』 올리비에 시보니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하는 회의, 만족하시나요? 회의 시간, 회의 장소, 회의 인원, 회의 도구, 회의 방식, 회의 절차, 회의 내용, 회의 문화 중 마음에 드는 게 몇 가지나 있으신가요? 교사로서 부끄럽지만 저는 ‘회의’라는 말만 들으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지금은 한창 ‘교육과정 반성회’ 시즌입니다. (저는 올해 육아휴직이지만) 교육과정 반성회란 교원들이 올 한 해 학교 생활을 되돌아보고 더 확대할 것, 축소할 것, 추가할 것, 제거할 것, 수정할 것 등에 대해 회의하는 자리입니다. 안건에 따라 학년별 회의 후 의견을 수렴하여 해답을 결정하기도 하고 전체 회의 후 해답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저는 교육과정 반성회 때마다 가슴 깊이 답답함을 느끼는데요. 끝내 누군가의 이기심만 충족되는 불공정한 과정과 결과 때문입니다. ‘어떻게 저렇게나 당당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지?’ ‘이번에도 교장 교감 선생님 마음대로 결정할 거면서 왜 이렇게 긴 시간 회의를 한 거야?’ ‘회의를 통해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 힘을 과시하려는 건가?’ ‘이래서 결국 입을 닫는 사람들이 생기는구나…’


올리비에 시보니, ⟪선택 설계자들⟫, 인플루엔셜, 2021


오늘 소개할 책은 경영전략 컨설턴트이자 프랑스 최고 경영대학원인 HEC파리의 겸임교수인 올리비에 시보니의 ⟪선택 설계자들⟫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왜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복하는지, 나아가 조직 차원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데요. 저자의 관점으로 교육과정 반성회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한 의견을 말하면서 동시에 서로 상처받지 않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럼 출발하시죠!



1. 잘못된 의사결정의 원인, 휴리스틱스-편향


우리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휴리스틱스 때문입니다. 휴리스틱스란 ‘엄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내리는 판단’을 뜻합니다. 달리 말하면 ‘본능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본능적인 판단’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인스타브레인⟫의 저자 안데르스 한센은 현재 인류의 유전자가 수렵 채집인 때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수렵 채집인들에게는 엄밀하고 신중한 판단보다 직관적이고 신속한 판단이 생존에 유리했는데요. 눈앞에 맹수나 위협이 나타났을 때 직관적이고 신속한 판단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학기술 및 사회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졌습니다. 반면 인류의 유전자는 수렵 채집인에 머물러 있습니다. 끔찍하게도 우리는 AI 혁명 시대에 수렵 채집인의 생존 본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요즘 시대에 수렵 채집인의 휴리스틱스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편향’의 원천입니다. 엄밀하고 신중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한 시대에 수렵 채집인의 본능적인 판단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일수록 휴리스틱스는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다 줍니다. 하지만 휴리스틱스는 우리 본능에 새겨져 있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듭니다.


(책 속에는 주요한 아홉 개의 편향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 편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편향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접근 방법은 ‘교육과 훈련’입니다. 인간이 자주 저지르는 편향을 공부하고, 특히 자신이 자주 저지르는 편향을 분석하여 의식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남의 허물은 커 보이는 반면 정작 자기 허물은 보기 어려워하고, 게다가 일상 속에는 수없이 많은 편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편향을 인식하는 일조차 어렵고, ‘편향을 인식하겠다’는 생각이 또 다른 편향을 불러오기에 첫 번째 접근 방법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두 번째 접근 방법은 ‘편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입니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책 ⟪넛지⟫를 아시나요?  넛지란 사람들의 휴리스틱스나 편향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파리 스티커를 붙여둠으로써 사냥·포획 본능을 자극하여 남자들이 소변을 흘리지 않도록 유도하는 경우입니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이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 하는데, 어딘가 께름칙한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건데 ‘올바르다’는 게 무엇일까요? ‘올바르다’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걸까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세 번째 접근 방법은 ‘의사결정 프로세스 설계’입니다. 저자는 개인이 자신의 편향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조직이라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적절한 프로세스를 통해 협업’할 수 있다면 서로의 편향을 견제하여 균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3. 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기업을 만든다.


먼저 협업이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협업의 핵심은 ‘다양하고 상반되는 관점들의 표출과 경청’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집단은 편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집단이 편향을 더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즉 집단은 활용하기에 따라 약 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독을 약으로 만드는 핵심은 ‘협업’의 유무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협업하지 못하는 집단은 위험합니다. 이 집단에 한 가지 편향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편향은 강해집니다. 분위기를 깰까 봐 또는 상대의 감정을 헤칠까 봐 구성원들은 다른 생각을 말하지 못하며 때로는 자신의 생각은 어리석고 못난 것이라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협업하는 집단은 서로의 편향을 견제합니다. 이 집단에 한 가지 편향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다른 편향이 나타나 균형을 잡습니다. 구성원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다른 생각과 감정을 경청합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오히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지나치게 같을 때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집단은 협업하고, 어떤 집단은 협업하지 못하는 걸까요? 타고나기를 협업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정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걸까요?


저자는 협업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려면 적절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적절한 과정과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는데요. 저자는 집단의 협업을 방해하는 요소와 협업을 자극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방법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먼저 집단의 협업을 방해하는 요소 중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오잉? 프레젠테이션이 협업을 방해한다고? 제가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잘 준비된 PPT 자료와 발표로 상사들을 설득시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저자는 발표자의 PPT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발표자의 관점이 회의장을 지배해 버린다고 경고합니다. 다양한 관점이 부딪쳐야 할 협업의 장소가 발표자의 무대가 되어버리는 셈입니다.


저자는 이에 대비되는 사례로 아마존의 ‘이야기 형식의 여섯 쪽짜리 메모’를 소개합니다. 아마존 기업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모여 정해진 시간 동안 ‘이야기 형식의 여섯 쪽짜리 메모’를 각자 조용히 읽는다고 합니다. 구성원들은 메모를 통해 회의 안건을 파악하고 안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한 뒤 회의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집단의 협업을 방해하는 요소, 또 하나는 ‘즉시적인 판단 표현’입니다.


“이 투자 기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해주세요. 아직 당신의 최종 판단은 말하지 마세요. 나는 지금 그걸 알고 싶지 않습니다.”

p.294


저자는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찬성한다” “반대한다”와 같은 판단 표현을 미뤄두고 대안의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인 요인을 정리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합니다. 처음부터 찬성 또는 반대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입장을 유연하게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집단의 협업을 자극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는 ‘동일한 사실로 다른 시나리오 쓰기’입니다. 예를 들어 ‘이 아이디어 대박을 치겠다!’ 쪽으로 회의가 흘러간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그럼 실행 계획 세우기로 넘어가기 전에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쪽박을 치는 시나리오 또는 별 볼 일 없는 시나리오를 써보는 겁니다. 너무 들뜬 나머지 정보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른 관점을 가져보는 겁니다.


집단의 협업을 자극하는 방법, 또 하나는 ‘잠재적 실패 분석하기’입니다. 사실 위 방법과 거의 똑같은데요. 이렇게 말해보는 겁니다.


“지금은 X 년도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왜 그렇게 참패했을까요?”

p.302


두 방법의 핵심은 상황이나 선택 안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다양성은 선택 안의 다양성이 아니라, 상황이나 선택 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이다.

p.299



4. 협업을 부르는 프로세스로 교육과정 반성회 살리기


학년 초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모둠 과제를 내주면 백이면 백 싸움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아이들을 탓했습니다.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하면 되는 걸 굳이 싸워야 할까?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경력이 조금 쌓이자 모둠 과제가 무척 어려운 과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도 어려운데 친구의 생각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그 사이에 균형점을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제가 무능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리더란 ‘의사결정 프로세스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건에 걸맞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구성원들에게 안내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은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듣고 전체 과정을 상상하며 각 과정 속 자신의 역할을 파악합니다. ‘이때 내가 말할 기회가 있겠구나’ ‘최종 결정은 누가 언제 하는구나’ ‘최종 결정을 그렇게 한다면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되겠구나’


저는 교사로서 모둠 과제를 내줄 때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안내하지 않았습니다. 과제가 무엇이고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입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야 아이들에게 이런 순서와 방법으로 해결해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모둠 과제를 내주면서 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 안내를 빼먹었다니… 참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닐 거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왜냐하면 교사들의 회의 문화와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도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설계하지 않고 곧장 안건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열심히 회의를 했는데 뜬금없이 다음 날 교장 교감 선생님이 회의 결과를 뒤집기도 합니다. 또는 회의를 하는데 목소리가 큰 몇몇이 분위기를 좌지우지합니다. 또는 회의 진행자의 “이런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다른 의견 없으시죠?”라는 말에 “예”라고 답하고 넘어갑니다.


정말 그랬네요! ‘막히면 다수결로 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 그러니 회의 때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의 생각대로, 자신의 욕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의 생각대로, 힘이 있는 사람의 생각대로 흘러갔던 듯합니다.



각 학교마다 OO룰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초등학교라면 한국룰을 만드는 겁니다. 안건은 크게 1,2,3 수준으로 구분합니다. 1 수준 안건은 학교 차원의 문제로 최종 결정은 교장이 합니다. 2 수준 안건 또한 학교 차원의 문제지만 최종 결정은 전 교직원의 투표로 합니다. 3 수준 안건은 특정 그룹의 문제로 최종 결정은 해당 그룹 구성원들의 투표로 합니다.


회의 시작 전 여섯 쪽까지는 아니더라도 줄글로 된 메모를 읽습니다. 메모에는 문제가 무엇인지, 배경은 무엇인지, 왜 꼭 해결해야 하는지, 예시 해결안 등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회의 참여자가 메모를 읽고 난 뒤 ‘찬성 또는 반대’ 등의 판단을 말하지 않고 해결안을 제안하거나 각 해결안의 장점과 단점을 말합니다. 칠판이나 프로젝터로 회의 내용이 즉각적으로 정리되면 좋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최종 결정은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을 두고 합니다. 1 수준 안건이라면 교장이 최종 결정하여 회의 결과를 공지하고, 2 수준 안건이라면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정합니다.


만약 이런 ㅇㅇ룰이 학교마다 있고 모든 구성원들이 ㅇㅇ룰에 대해 알고 있다면 지금보다는 부담 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찬성이나 반대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최종 결정을 당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투표 방법을 찬성이나 반대로 할 수도 있지만 각 해결안에 1~5점을 주는 평가제로 하여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해결안을 선택한다면 흑백 충돌을 더욱 완화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과거에 근무했던 한 학교에서 ‘의사결정 프로세스 TF팀’에 속해본 적이 있습니다. 안건이 상정되면 TF팀은 안건에 적절한 프로세스를 개발하여 구성원들에게 공지했습니다. TF팀은 구성원들에게 프로세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주었고, 프로세스가 최종 결정되면 회의 날짜를 잡았습니다. 굉장히 뜻깊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요. 각 학교마다 ‘의사결정 프로세스 TF팀’을 둬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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