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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Dec 02. 2023

성장 강박이 없는 자연인의 삶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도시란 누군가에게 편리함과 문명의 상징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번잡함과 스트레스의 상징인 듯합니다. 사람들의 숨결로 가득 찬 지하철과 버스, 다급한 시간 속에 해내야 하는 업무와 재촉하는 상사, 성장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끊임없는 경쟁, 종종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몸. 아픈 몸으로 북적북적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우리를 덮쳐옵니다.


내가 이러려고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가? 열심히 산 대가가 터무니없는 병원비란 말인가? 얼마나 더 벌어야, 언제까지 벌어야 행복할까? 내가 희생한 현재들은 과연 미래에 보상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더 성장해야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해마다 GDP 성장률이 저조해서 불경기니 어쩌니 하는데, 그놈의 성장률! 이 정도 성장했으면 나라가 나를 챙겨줄 만도 한데, 도대체 얼마나 더 성장해야 나라가 우리를 챙겨줄까요? 성장 강박에서 벗어난 나라, 성장 강박에서 벗어난 삶이 어디 없을까요?



1. 성장 강박이 없는 유목민의 삶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인간은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구분하고, 과거를 기억하며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늘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에 끊임없이 성장하려고 애쓰며 심지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동물의 시간은 영원회귀입니다. ‘영원회귀’란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는 니체의 사상입니다. 예를 들어 개는 때 되면 일어나고 밥 먹고 산책하고 잠자는 삶을 무한 반복합니다. 그런데 개는 사람과 다르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무의미, 지루함, 불행, 괴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수한 기쁨을 반복하여 느낍니다.


그런데 혹시, 지구상에 영원회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때 되면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삶을 무한 반복하면서도 우울증이나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놀랍게도 있습니다! 영원회귀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를 붙잡거나 추억하려 애쓰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 그저 때에 맞게 살아가며 순수한 기쁨을 반복하여 느끼는 사람들. 몽골 유목민의 삶. 그들의 삶을 담아낸 에세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를 독자님께 소개합니다.


이영산,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문학동네, 2017


2. ‘하늘과 대지’가 주인공


우리는 비가 ‘온다’고 말합니다. 반면 몽골 사람들은 비가 ‘들어간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비가 온다’라는 문장에는 ‘내게’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비가 내게 온다.’ 반면 ‘비가 들어간다’라는 문장에는 ‘하늘에서 대지로’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비가 하늘에서 대지로 들어간다’


우리는 항상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최우선에 두고 사람과 가까운 것에 그다음 순위를 매깁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사람이 기르는 가축, 다음으로는 가축이 먹는 풀 순이 됩니다.


반면 몽골 유목민들은 항상 하늘과 대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따라서 유목민들은 자연을 최우선에 두고 대지와 가까운 것에 그다음 순위를 매깁니다. 예를 들어 하늘과 대지가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대지에 의지하는 풀이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풀에 의지하는 가축, 다음으로는 가축에 의지하는 인간 순이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에 ‘사람의 시간, 직진하는 시간’ 위에 살아갑니다. 과거를 기억하고자 기록하고 무덤을 만듭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돈을 벌고 돈을 모읍니다.


반면 몽골 유목민들은 하늘과 대지를 먼저 생각하기에 ‘하늘과 대지의 시간, 자연의 시간, 영원회귀’ 위에 살아갑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생일을 기념하거나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을 만들지 않습니다. 더 나은 미래라는 개념조차 없기에 "있는 대로 먹고 되는대로 산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는 거지."라고 자주 말합니다.



3. 소유하지 않는 사랑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에는 자연의 시간 위에 사는 몽골 유목민들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사랑과 죽음은 우리의 것과 무척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그들의 사랑과 죽음에서는 ‘소유’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몽골 유목민들은 "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난 당신에게 사랑이 남아 있어요"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난 너를 사랑한다. 이러면 너무 폭력적인 거 같지 않아? 강요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냥 내 사랑을 남겨놓는 거지. 유목민들은 그래.”

p.288-289



몽골 유목민들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먼저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해볼까요? 유목민들은 게르라는 천막을 짓고 삽니다. 게르는 다섯 평 남짓한 원형의 원룸으로 각자의 침대만 있을 뿐 칸막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몽골 초원의 겨울이 무척이나 혹독하다는 데 있습니다. 영하 사오십 도를 오르내리는 겨울밤, 부부가 사랑을 나눌 때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칼바람 부는 초원으로 내쫓을 수도 없기에 겨울 내내 부부는 사랑을 참아야 할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부부는 그냥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있는 게르 안에서 부부는 사랑을 나누고, 유목민들은 이를 자연스럽다고 여깁니다.



초원의 청춘 남녀들이 각자 양을 몰다가 눈이 맞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사실 양을 모는 일은 굉장히 지루한 일인데 남녀가 눈이 맞는 순간 초원은 무지갯빛 낙원으로 변합니다.


청춘들의 사랑은 불꽃과 같아서 육체를 불태울 둘만의 장소가 필요한데요. 문제는 드넓은 몽골 초원에는 몸을 숨길 장소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몽골 사람들의 시력은 4.0이라고 하잖아요?


이때 청춘들이 사용하는 게 올가입니다. 올가는 야생마를 잡을 때 쓰는 밧줄 고리가 달린 긴 막대기입니다. 달랑 막대기 하나로 어떻게 둘만의 장소를 만들 수 있을까요? 걱정할 거 없습니다. 깃대처럼 땅에 꽂아진 올가를 본 몽골 사람들은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으니까요. 그들만의 배려, 그들만의 약속입니다.



초원과 가축들이 살찌는 여름이면 유목민들은 축제를 즐깁니다. 그때 청춘에 불타는 남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른 게르를 찾아다닙니다. 유목민들은 찾아오는 손님을 결코 내쫓지 않고 대접하며 잠도 재워줍니다. 따라서 청춘 남자들은 청춘 여자들이 있는 게르를 집중적으로 찾아다닙니다.


모두가 잠이 든 시간, 난롯불도 꺼지고 암흑이 깔리면 청년은 살포시 일어나 더듬거리며 여자의 침대로 갑니다. 청년은 사랑을 구걸하고 여자의 선택에 따라 사랑을 나누기도 또는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아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딸이 양을 몰더니, 또는 손님을 재워줬더니 임신을 했다!? 우리 생각으로는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고모, 사촌에 팔촌까지 펄쩍 뛸 일이지만 유목민들은 반대로 기뻐합니다. 부모는 자기 집 화로에서 아이가 태어났다고 기뻐하며 집안의 막내로 키운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적장자 세습제와 달리 몽골은 말자상속제라고 합니다. 즉 화로에서 태어난 막내가 부모의 재산도 모두 물려받는다고 하니 막내의 삶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몽골에서 부부의 성관계는 항상 여성의 침대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는 여인에 대한 배려, 여성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처사라고 하는데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며 “너 이리 와!” 하는 게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방으로 가는 것, 여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깔려 있는 것이라 합니다.


실제로 몽골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아들과 딸 중 한 명만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딸을 먼저 입학시킨다고 합니다. 아들은 막노동을 해서라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유목민들은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말이, 소가, 양이, 염소가 교미하는 장면을 일상으로 보아온 유목민들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고 여깁니다. 남녀가 마음이 맞기만 하면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거기에는 어떤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모든 생명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4. 소유하지 않는 죽음


유목민들은 사랑을 소유하지 않듯 죽음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은 ‘풍장’입니다. 죽은 이의 몸은 초원 어딘가 떨어져 짐승들의 먹이가 됩니다.


죽은 이를 매장하기도 하지만 봉분을 만들거나 비석을 세우지 않습니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지도 않습니다. 봉분이나 비석이 없기에 세월이 지나면 시신을 어디 묻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소 충격적인데요. 유목민들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유목민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이사를 하는데 가축들을 이끄는 이틀 사흘 걸리는 이삿길은 매우 고되다고 합니다.


이삿길을 함께하지 못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노인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합니다. 가족들은 노인을 위해 흥겨운 잔치를 준비하고, 마지막 잔치를 즐깁니다. 때가 되면 노인은 준비합니다.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라는 양의 엉덩이 비계(말랑말랑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한 기름 덩어리)를 입에 넣는다. 눈을 감고 편안히 앉아 있는 노인 앞으로 걸음마를 막 뗀 어린 손자가 다가선다. 그리고 입에 문 양의 넓적다리뼈를 툭 쳐서 비곗덩어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 비계가 숨길을 막아 순식간에 노인은 죽음을 맞는다.

p.338



5. 자연인의 삶이 부러운 대한민국


최근 갤럽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송 영상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나는 자연인이다⟩가 3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시간, 직선의 시간’ 위에 끊임없이 성장하고 소유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자연의 시간, 영원회귀’ 위에 큰 고민 없이 반복되는 삶을 누리고 싶은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인간의 시간, 직선의 시간’ 위에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꿈꿉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를 꿈꾸고, 무명한 사람은 유명인을 꿈꿉니다. 그런데 부자도 더욱 큰 부자를 꿈꾸고, 유명인은 더욱 유명해지기를 꿈꿉니다. 문제는 가난한 자보다 부자가, 무명인보다 유명인의 힘이 더 세다는 겁니다. 즉 ‘인간의 시간, 직선의 시간’ 위에서는 늘 가진 자가 유리합니다.


‘인간의 시간, 직선의 시간’ 위에서는 가진 자가 더 가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못 가진 자가 더욱더 발버둥처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러니 못 가진 자는 수많은 현재를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원하는 미래가 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만, 한 번 가진 자가 되면 그 이후로는 한결 쉬워질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시간’ 위에서 못 가진 자로 산다는 건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이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시간’ 위에서 아등바등 소유했던 것들을 포기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없는 ‘자연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때가 되면 일어나고, 때가 되면 먹고, 때가 되면 일하고, 때가 되면 잠자는 영원회귀의 삶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좋아하신다면, '인간의 시간'에서 지치고 힘들어 잠깐 쉬고 싶으시다면, '자연의 시간'이 주는 위로를 느끼고 싶으시다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 책 정말 정말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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