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뚫기 Mar 20. 2024

자유론 핵심 꿰뚫기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몇 달 전 김정운 교수님 인터뷰 영상에서 이런 표현을 들었습니다.


free from,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해방

free to, 무엇을 할 자유, 개성


김정운 교수님이 고백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free from에 몰두했던 거 같으며, 앞으로는 free to를 누리며 살고 싶다고요.


무척 공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이름은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인데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기 싫어서, 우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지은 이름입니다.


제가 원했던 자유는 free from이었는데요. 저를 구속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꿈꾸었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모습을, 사회가 제시한 정답이 아니라 저만의 해답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구속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정작 구속에서 벗어나자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했습니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당황스럽고 무섭더라고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free to, 무엇을 할 자유를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구나.

진정한 자유란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구나.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오늘 소개할 책은 1859년,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 출간한 ⟪자유론⟫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무려 155년 전에 free from과 free to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책에 담았는데요. 자유론의 핵심을 꿰뚫는 우구리의 이야기, 출발하겠습니다.



1. 계급이 무너지기 시작하다. (사회 배경)


제 1차 산업혁명 이후로 왕과 지주 계급이 힘을 잃었고, 반면 산업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시민 계급이 힘을 얻었습니다. 시민 계급은 왕과 신분 사회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는데요. 쉽게 말해 시민들은 평등을 원했습니다.


시민 계급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 또한 요구했는데요. 덕분에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 제도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시민 계급은 이를 ‘정치적 자유’라 불렀습니다.


신분 사회가 무너지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언뜻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존 스튜어트 밀은 그 속에 존재하는 엄청난 그림자를 지적하는데요. 이제부터 그 음산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2. 다수파의 폭정 (사회 문제)


다수파의 폭정이란 사회 구성원 절대 다수가 공권력과 여론, 정서를 활용하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개성을 말살하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는 걸 말하는데요. 예를 들어, 특정 종교 하나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이단이라고 부정하는 현상이 그렇습니다.


당시 다수파란 시민 계급을 말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주로 산업자본가를 뜻합니다. 즉 다수파의 폭정이란 산업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은 인정하고, 산업자본가들이 싫어하는 것은 무시하는 세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수파의 폭정은 시민 계급에게도 무거운 족쇄가 되었는데요. 다수파의 폭정이 ‘사회적 불관용 분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불관용 분위기’란 다수가 옳다고 결정한 것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차단하는 분위기를 뜻하는데요. 따라서 불합리하고 틀렸다는 게 확실해보여도 어느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 계급 조차도 서로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습니다. 자기 만의 신념과 개성을 만들지 못하고 그저 남들이 하는대로, 남들이 인정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꼬집습니다.


그들에게는 관습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외에,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이라는 것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정신 자체가 노예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저 즐겁기 위해서 하는 일조차도, 남들이 무엇을 하며 즐겁게 노는지를 먼저 생각하고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서 한다. 그들은 군중 속에 묻혀 있기를 좋아한다.

p.145



3. 다수파의 폭정은 왜 문제일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핵심 문화는 유교였습니다. 여전히 유교 문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데요. 그동안 우리는 유교적 사상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패륜이니 상놈이니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유교 문화는 조선 시대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서 그 영향력은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어찌됐든 유교 문화 덕에 우리 민족의 삶이 수백 년간 이어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즉 다수파의 폭정 덕에 우리 민족의 혼이 이어져왔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존 스튜어트 밀은 다수파의 폭정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드는데요.


첫째는 다수파의 폭정이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먼저 진리를 탐구하는 뛰어난 지성들이 입을 닫게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통찰과 발견을 하더라도 말하는 순간 사회적으로 낙인 찍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관습대로만 살 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는 노예 상태가 됩니다.


둘째는 다수파의 폭정이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합니다. 인간다운 삶이란 인지, 판단, 독특한 감정, 정신 활동은 물론이고 심지어 도덕적 선호 같은 인간적 능력들을 충분히 사용하고 누리는 삶이라고요. 그런데 그 능력이란 오직 스스로 선택을 할 때만 훈련이 된다고 덧붙이는데요. 따라서 다수파의 폭정으로 관습대로만 살아가는 삶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사는 기계의 삶과 같습니다.


따라서 존 스튜어트 밀은 다수파의 폭정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수파의 폭정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4. free from에서 free to로 (대안 제시)


존 스튜어트 밀은 인류가 끊임없이 진보하고 동시에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free from이 아닌) free to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free to의 자유’란 우리가 익히 들어 익숙한 자유인데요. 그가 말하는 자유에 관한 핵심 명제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개인은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사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2.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들을 했을 때에는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하고, 사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부과할 수 있다.

p.211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모든 자유를 누린다.
단,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익히 들어 익숙한 말이지 않나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자유’를 설명할 때 늘 반복하던 말이었는데요. 그 뿌리가 존 스튜어트 밀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자유란 구체적으로 어떤 자유일까요? 바로 다음 ‘세 가지 자유’인데요. 하나씩 소개해보겠습니다.


첫째, ‘의식’이라는 내면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자유인데요. 양심의 자유, 사상과 감정의 자유, 의견과 정서를 가질 자유, 표현하고 출판하는 자유를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상과 토론의 자유’라고 기억하시면 될 듯합니다.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이 자유가 ‘다수파의 폭정’을 막고 인류의 정신적 발전을 돕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지성들이 자신의 통찰과 발견을 자유롭게 말하게 되고,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토론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가진 오류가 드러나고 보완되고 개선되게 됩니다.


둘째, 외면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자유인데요. ‘취향과 추구의 자유’입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각자 자신에게 맞는 인생 계획을 세우고, 하고 싶은 일들을 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유를 말합니다.


‘사상과 토론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취향과 추구의 자유’ 또한 인류의 발전을 돕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으로 자기 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데요. 즉 각자 개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이 나타나고 공유되고 개선되게 됩니다.


마지막 셋째는 ‘결사의 자유’입니다. 결사의 자유란 단체를 만들 수 있는 자유인데요.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목적을 지닌 단체는 안 되고요. 다른 사람을 강제로 가입시키거나 속여서 단체를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모든 자유는 지켜져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고, 사회는 개인에게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이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입니다. 때리거나,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성추행을 하는 등의 행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입니다. 이겨내지도 못할 술이나 마약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근무 중에 주식을 하느라 업무를 다하지 못하거나, 특히! 양육과 교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아이를 방치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회는 두 가지 경우 모두에 개입하여 개인에게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5. 우리 사회는 자유로운가?


십여 년 전만 해도 ‘일만 하느라 노는 법을 까먹었어요.’라는 고민이 참 많이 들렸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해서 개성은 사치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온갖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체험거리 등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나아가 그것들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매일매일 새롭고 독특한 취향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휴가 시즌만 되면 누가 더 멋진 해외 여행을 했는지, 누가 더 멋진 경험을 했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가장 외로운 세대는 20대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미래의 20대는 더 외로운 세대가 될 거라는 예측도요.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빡빡해지니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20, 30대 청년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으로 빚을 내어 주식이나 코인에 손을 대기도 하는데요. 그 때문에 스스로 삶을 포기한 제 지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free from,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소망이 된 사회는 조금은 암울한 듯합니다. 그런 사회는 ‘free to, 무엇을 할 자유’를 꿈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삶을 경험할까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매년 안타까운 아이들을 마주하는데요. 특히 부모가 양육과 교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분명 우리 사회는 양육과 교육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사회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상은 참 어렵습니다.


알콜 중독, 게임 중독, 집에 들어오지 않음, 무관심 등으로 방치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데요.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발견하고 아동 학대 가능성이 있으니 신고를 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은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보호자의 진술 몇 마디, 아이의 진술 몇 마디면 끝나니까요. 명확한 학대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인 겁니다. 괜히 신고한 교사만 원한을 사게 되지요.


반면 그 아동 학대라는 게 교사에게는 엄청난 칼이 됩니다. 교실에서 아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고, 선생님의 손이 아이의 어깨를 스쳤다고, 아이가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하게 몸으로 막았다고, 아동 학대 신고를 당하고 생각보다 여운이 짙은 상처를 받습니다.


저는 아동 학대법이 교사에게 예리한 칼인 것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 마음에 입힌 상처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학창시절에 선생님들에게 받은 상처가 적지 않기도 하고요.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완벽한 약자였고, 늘 가르침을 당하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존엄과 권위가 회복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동 학대법이 교사에게 예리한 만큼 부모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는데요. 잠깐 ⟪자유론⟫ 속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사회는 자신의 구성원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들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린아이와 미성년자인 기간 전체에 걸쳐서, 그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삶과 행동을 할 수 있게 교육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를 훈육하는 선생임과 동시에, 그들이 성장하는 환경이다. 기성 세대가 선량함과 지혜로움에서 너무나 통탄스러울 정도로 결핍되어 있다면, 다음 세대를 온전히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로 만들어낼 수 없다.

p.187


저는 우리 사회가 ‘free from, 해방’ 수준의 자유를 넘어서 ‘free to, 개성’ 수준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이 입시와 출세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free to, 개성’ 수준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요.



오늘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애쓴 우구리에게 공감과 댓글 살포시 부탁드리고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입니다. +_+!



매거진의 이전글 국민 MC 유재석 님 메시지에 숨은 놀라운 비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