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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Aug 13. 2024

과소비로 길들여진 노동종
그게 난가?

근대 사회의 덫: 왜곡된 노동종, 폭력적인 작업종, 멸종위기 행위종

근대 사회의 덫: 왜곡된 노동종, 폭력적인 작업종, 멸종위기 행위종, 한나 아렌트 통찰

어서 오세요. 책뚫기의 북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하루 노동은 잘 마치셨나요? 아니면 노동하기 위해 출근 중이신가요? 매일매일 노동하는 우리 모두 참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반면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인간관계는 삭막해져 가는 듯해요.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요? 왜 매번 경제는 어려워지고 빚을 내지 않고는 집조차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을까요? 때때로 내가 사람인지 일하는 기계인지 헷갈리고요. 주변 사람들과 대화는 온통 돈과 건강 이야기뿐이에요.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거겠지?”라는 고민을 던지면 “배가 불렀냐? 살만 한가보다?”라는 조롱이 돌아오고요. “아니 나 진짜 진지해. 내 말 좀 들어봐.”라며 고민을 이어가려해도 “너 머리 잘 됐다. 어디서 했어?” 또는 “야! 한 잔 해!”라는 반응뿐이에요.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정치 찰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소비와 사치, 낭비경제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 우리 시대의 특징이라고요. 그녀는 우리가 왜곡된 노동종의 삶을 살고 있으며, 따라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해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그녀가 말하는 노동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소개해볼게요.


오늘 내용은 다소 긴데요. 끝까지 들으시면 ‘원래부터 세상이 이랬던 건 아니구나!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구나!’하는 시원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책뚫기의 북라디오 지금 출발합니다.


[책뚫기의 글을 오디오로 즐겨보세요]

https://youtu.be/BIyRcptIWY4


노동종


우리 인간은 모두 생물학적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요. 따라서 우리는 때가 되면 먹고 자야만 해요. 어떤 인간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노동해야만 해요.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 등의 생명 필수재를 얻어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노동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때 노동이란 ‘인간 신체가 세계를 유지하고 그 부패를 막기 위해 치르는 일상적 싸움’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하는데요. 쉽게 말해 노동종이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때가 되면 일어나고 노동하고 먹고 자는 일상을 무한히 반복하는 사람을 뜻해요.


그리고 노동종은 무한히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요. 노동하는 ‘수고와 고통’ 그리고 생산물을 ‘흡수하는 기쁨’을 반복하는 원형의 시간 속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려요. 따라서 노동종에게는 더 나은 미래나 성장 개념이 없어요. 그저 고통과 기쁨의 순환, 노동과 소비의 순환 자체가 삶이자 행복이에요.


그럼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노동종은 누구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자연인’과 ‘종교인’이 노동종인 듯해요. 딱 필요한 만큼의 노동과 소비라는 순환 속에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들이니까요.


또 우리가 늘 하는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도 대표적인 노동이에요. 집안 세계를 유지하고 그 부패를 막기 위해 치르는 일상적 싸움이니까요. 집안일은 노동이기에 수고스럽고 고통스럽지만 마쳤을 때 상쾌함과 쾌적함을 느낄 수 있어요. 게다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고 영원히 반복되죠.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여러분은 매일 집안일을 반복하며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나요?



작업종


여러분이 타고난 노동종이라면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에서 변치 않는 행복을 느낄 거예요. 그런데 타고난 노동종이 아니라면 분명 지겨울 거예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나아지는 것도 없이 늘 제자리에 머무는 삶이 저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바로 이 점이 노동의 특징인데요. 노동 생산물은 소비하고 나면 사라져요. 음식은 먹으면 곧장 사라지고요. 먹지 않아도 금방 부패해서 사라져요. 집안일도 시간이 흐른 만큼 다시 쌓여요. 따라서 노동은 인간 세계를 바꾸지 못해요. 영원한 제자리, 영원한 순환, 원형의 시간이 흐를 뿐이죠.


바로 이 때문에 작업종이 탄생해요. 작업종은 원형의 시간에서 벗어나고자 무언가를 만드는 종인데요. 노동을 도와주는 도구를 만들기도 하고요.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집과 가구를 만들기도 해요. 또 감정과 사유를 담은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하죠. 이런 작업 생산물은 음식과 달리 오래 지속되기에 인간 세계를 변화시키고 유지시킬 수 있어요.


그럼 이때 작업이란 무엇일까요? 제 식대로 정리하자면 ‘작업이란 키치를 사물화 하는 활동’이에요. 이때 키치란 온갖 종류의 ‘그래야만 한다’로 실현되기 바라는 꿈이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가구 장인은 먼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가구, 즉 키치를 상상해요. 그리고 그 키치를 사물화 하면 마침내 가구가 탄생하죠. 가구의 탄생은 인간 세계를 새롭게 하고, 덕분에 인간은 보다 새로운 세계에 살아가게 돼요.


이 때문에 작업종은 두 가지 축복을 누리는데요. 하나는 인간 세계를 새롭게 한다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작업종이 자신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신은 죽더라도 자신이 창조한 작업 생산물은 여전히 남아 인간 세계를 구성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우리 시대 대표적인 작업종은 누구일까요? 요즘은 기계화, 자동화로 인해 많은 장인들은 사라졌어요. 그리고 AI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예술가, 기업을 만드는 기업가가 요즘 시대에 남은 작업종이 아닐까 생각해요.



행위종(정치종)


작업종은 인간 세계를 창조하는 축복을 누리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저주를 견뎌야 해요. 바로 외로움인데요. 이는 작업이란 활동이 가진 특성 때문이에요.


작업은 본래 폭력적이고 대상을 수단화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가구 장인은 자신이 꿈꾸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 재료와 도구가 필요해요. 나무라는 재료를 얻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요. 또 나무를 가구로 만들기 위해서 톱, 망치, 끌 등 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도구로 활용해요. 이처럼 작업종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재료를 구하고, 또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도구 및 수단으로 활용해요.


예시를 하나 더 들어 볼게요. ‘서른 살에 결혼하는 게 내 인생 계획이야.’라는 목적으로 상대에게 프러포즈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볼게요. 이 사람은 작업종이예요. 인생이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상대를 수단 또는 도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작업종이 사물이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만들려고 하면 우리는 숨 막혀 죽을지도 몰라요. 서로가 서로를 수단으로 이용하기만 하고, 심지어 힘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폭력적으로 활용하는 세상이 될 테니까요. 이 때문에 작업종은 결국 외로워질 수밖에 없어요.


바로 이 때문에 행위종, 다른 말로 정치종이 탄생해요. 행위종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고 또 토론해요. 그 과정에서 설득이 이루어지고 무언가를 결정하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새로운 인간 세계가 탄생하기도 해요.


그럼 행위 또는 정치란 무엇일까요? 제 식대로 정리하자면 ‘행위란 자신의 키치를 말로 드러내고, 나아가 설득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활동’이에요. 쉽게 말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로 자신을 드러내고 토론해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활동이 바로 행위이자 정치예요.


행위종이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정체성과 개성을 지닐 수 있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데요. 영원한 순환 속에서 노동만 하는 노동종과 골방에 앉아 제작만 하는 작업종은 결코 자신을 드러낼 수 없어요. 오로지 행위종만이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행위종에게는 커다란 저주가 두 개나 있는데요. 하나는 결과의 예측불가능성이에요. 우리는 행위가 좋은 결과를 불러올지 나쁜 결과를 불러올지 확신할 수 없어요. 내가 던진 말을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고요. 또 토론 끝에 결정한 사안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확신할 수 없어요.


또 하나의 저주는 환원불가능성이에요. 용기를 내어 던진 말 한마디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와도 결코 주워 담을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토론 끝에 결정하여 무언가를 실행하는 순간 결코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요.


따라서 행위종에게는 하루하루가 일종의 도박이에요. 때에 따라 아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데요. 그래서 행위종에게는 약속과 용서가 필요하다고 한나 아렌트는 말해요. 약속이 있어야 예측불가능성을 그나마 줄일 수 있고요.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용기를 내어 행위를 시작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 볼게요. 우리 인간은 크게 노동종, 작업종, 행위종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어떤 종이 옳고 어떤 종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각자의 영역이 다르다고 할 수 있고요. 또 우리는 때에 따라 세 종 모두가 될 필요도 있어요.


첫째,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종이 꼭 필요해요. 노동종이 없다면 작업종, 행위종은 탄생할 수 없겠죠.


둘째, 인간 세계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려면 작업 생산물이 필요해요. 작업종이 창조한 세계가 있기에 행위종이 그 안에서 행위할 수 있고요. 또 작업종이 책, 영상, 그림들을 만들어야만 행위종의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어요.


셋째, 정체성과 개성을 지니려면 행위종이 되어야 해요. 또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여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려면 행위종이 필요해요. 다만 행위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기에 용서하고 약속을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고요.



근대 우세종, 노동종


우리는 언제부터 노동, 소비, 낭비 그리고 외로움의 시대에 살게 되었을까요? 한나 아렌트는 ‘노동, 작업, 행위’의 눈으로 근대 사회를 분석하여 답을 내리는데요. 지금부터 그녀의 눈으로 본 근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근대는 ‘부가 무한히 증식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모두가 부유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야말로 부의 원천이라 생각했는데요. 따라서 근대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노동을 하고, 동시에 노동 생산성을 높이면 모두가 풍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때 ‘사회’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사회란 가족 결합체를 뜻해요. 쉽게 말해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고, 가족 전체가 부유해지면 구성원들도 잘 살게 된다는 거예요. 따라서 근대는 구성원들이 가족을 위해서 사적 소유를 포기하고 열심히 노동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노동종이 되라고 강요해요.


정리하자면 근대는 부가 무한히 증식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고, 인간의 노동만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 사람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가족 안에서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기 시작해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겨요. 노동 생산물인 음식과 집안일 등은 금방 부패하거나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많이 만들어봤자 금방 사라지기에 노동 생산물로는 부가 무한히 증식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근대는 두 가지 해결책을 내놓는데요. 하나는 소비의 수단으로 화폐를 쓰는 거예요. 음식과 달리 화폐는 오래도록 보관하고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하나는 작업을 노동으로 만드는 거예요. 특히 작업의 분업화 때문에 작업 활동은 아주 잘게 나뉘어 전문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되었어요. 이로써 근대 사회는 금방 사라지는 노동 생산물뿐 아니라 비교적 오래 지속되어 축적할 수 있는 작업 생산물까지 쏟아내기 시작해요.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요. 인간의 소비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부가 무한히 증식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생산과 소비가 끝없는 순환을 이루며 커져야만 하는데요.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생산하려면 기존에 생산했던 것들을 빨리 소비해야만 해요. 노동 생산물이야 빨리 소비할 수 있지만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작업 생산물은 빨리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이에 근대는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아요. 작업 생산물을 마치 소비재인 것처럼 취급하는 거예요. 이때부터 의자나 탁자가 옷만큼 빨리 소비되고, 옷은 빵만큼 빨리 소비되기 시작해요. 게다가 우리는 소비의 수단으로 화폐를 넘어 신용, 즉 빚을 쓰는 시대에 이르러요.


무한 생산, 무한 소비, 낭비 경제, 돈이 없어도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 부가 무한히 증식하는 시스템이 비로소 시작된 거예요.



왜곡된 노동종, 멸종위기 행위종


한나 아렌트는 근대의 최종 단계를 순응주의라고 말하는데요. 사람들은 사회를 위해 예의 바르고 순종적인 노동종으로 길러져요. 사람들은 모든 일을 먹고살기 위해서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소비하기 위해 노동해요.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은 수시로 바뀌고 또 점점 더 많아져요. 이제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도 세탁기, TV, 침대, 소파, 에어컨, 식탁, 테이블, 의자 등은 물론 공기청정기, 제습기, 건조기, 식기 세척기까지 필수인 시대가 되었어요.


작업 생산물을 노동 생산물처럼 소비하게 만든 근대는 작업종을 노동종으로 바꿔버렸고, 노동종에게서는 원형의 시간을 빼앗았어요. 본래 노동종은 수고로운 노동과 소비의 기쁨이란 영원한 순환 속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는 종이었으나, 이제 노동종은 가족 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끝없이 노동함으로써 현재를 희생하는 종이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행위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름 끼치게도 폭력적인 작업종이 행위종을 몰아냈어요. 앞서 자신이 꿈꾸는 인생을 만들고자 상대에게 프러포즈했던 사람 이야기 기억나시나요? 근대를 주도한 철학자들 또한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자신의 이상에 걸맞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는데요. 원하는 세상을 만들다! 역시나 아주아주 작업종스러운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끝내 전체주의, 나치즘 같은 엄청난 폭력을 낳기에 이르렀죠. 이처럼 작업종이 사물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다루기 시작하면 무척 위험한 일이 벌어져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또한 작업종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의 키치를 주장하고 설득한다고 하지만 은근슬쩍 강요해요. 상대가, 특히 내 아이가 나의 키치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도 해요. 나이 든 꼰대, 젊은 꼰대 등 자신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고요. 역으로 상대를 꼰대라 규정지으며 자신의 꼰대스러움을 숨기기도 해요.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하는데요. 왜냐하면 인류는 꾸준히 행위종이 설 자리를 없애왔기 때문이에요. 행위종들은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기를 좋아해요. 그러면서 새로운 키치를 창조하고, 그 키치를 실현하려고 시도하죠.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확실치 않는데도 행위종들은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따라서 왕, 통치자, 지배자에게 행위종들은 말대꾸를 하고 어깃장을 놓는 눈엣가시였겠죠?


행위종이 설 자리를 꾸준히 없애다 보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키치를 주장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키치를 창조하는 게 무척 낯설어요. 심지어 사회는 행위란 못된 것이라고 종종 가르치기까지 해요. “말대꾸하지 마. 대들지 마.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와 같은 말, 익숙하지 않나요?


지금 시대에 행위종은 멸종위기종이 된 듯해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 우리 인간은 행위종일 때에라야만 정체성과 개성을 지닐 수 있어요. 용기 내어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의 키치를 말로 뱉어야만 자신의 빛깔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새로운 키치를 향해 몸을 던질 때에라야만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지 못할 때 우리 인간은 외로워져요.



끝으로


오늘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노동종, 작업종, 행위종이란 관점으로 우리의 삶을 살포시 둘러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영상을 만드는 저는 작업종이에요. 그러나 제 영상을 여러분이 들어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순간 우리는 행위종이 되어요. 저의 키치가 말로 전달되고, 여러분의 키치가 댓글로 드러나는 순간 ‘책뚫기의 북라디오’는 행위의 장이 되어요. 무척 가슴 뛰는 일이지 않나요?


여러분의 댓글은 저마다 다 다른 색을 지니고 있어요. 즉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정체성과 개성이 드러나고 우리는 비로소 고유한 목소리를 지닌 존재가 되어요. 댓글을 달아달라는 말을 어렵게 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 ‘책뚫기의 북라디오’가 여러분에게도 행위하는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지금까지 책뚫기의 북라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제 마음을 뚫어주세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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