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던 그 때 그 추억
휴대폰 없던 사랑
자동차 지하철 없어도 사람이 다녔듯
휴대폰 없어도 우리는 만났다
지난 주말 약속한
다음 데이트까지
사흘이나 남은 어느 날 오후
문득 보고 싶어
너의 하숙집을 향해 달려갔다
백 미터 넘게 떨어진 공중전화로 뛰어가
전화했지만 벨소리만 들렸다
공중전화와 하숙집 앞을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른다
보고 싶은 마음
깜짝 기쁘게 해주려던 마음은
깊은 아쉬움을 넘어
막연한 원망이 됐다
쓸쓸히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 반쯤 건넜을 때
맞은편 광고판 뒤에서
노란색 치마를 입은 네가 빠끔히 날 쳐다본다
나는 너의 하숙집 앞을 서성이고
너는 나의 귀갓길 위에 서있었다
휴대폰이 있었다면
할 수 없는 사랑
30년 전 다른 대학 학생이던 그녀를 사귈 때.
일주일에 한 번, 주로 토요일 오후에 만나 ‘데이트’를 했다. 헤어지면서 ‘다음 토요일에는 몇 시, 어디에서 만나자’라며 약속을 해야 했다. 연락수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당연히 없었고, 이른바 ‘삐삐’(무선호출기)도 널리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녀는 하숙집에 살았기 때문에 그녀와 연락하려면 하숙집 주인에게 전화해서 “저는 ○○○인데요, 하숙생 ○○○ 좀 바꿔주실래요?”라고 해야 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는 전화도 할 수 없었다. 사전 약속 없이 ‘번개 만남’을 가지려면 그녀 하숙집 근처로 가서 공중전화로 전화해 “나 하숙집 앞에 와 있으니 잠시 나올래?”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여름방학의 어느 날 오후. 나는 방학 동안 집 근처 어학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녀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그녀의 하숙집 앞으로 무작정 갔다. 공중전화로 전화했더니 하숙집 사람들이 모두 외출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부터 하숙집 앞에서 그녀의 귀가를 기다리다가, ‘혹시 모르니 다시 전화해 보자’며 하숙집에서 100m 넘게 떨어진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걸기를 반복했다. ‘공중전화 하러 간 사이에 엇갈리면 어떡하지?’ ‘그냥 얼굴만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1시간 넘게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에 만나니까 보고 싶은 마음을 그때까지만 참자’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방향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TV광고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맞은편 광고판 뒤에서 노란 치마를 입은 그녀가 나타났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 학원 수업 끝나는 시간과 집으로 돌아가는 동선을 알고 있던 그녀는, 내가 그녀의 하숙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그 시간에, 내 귀갓길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나와 같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었으면 벌어지지도 않을 해프닝이지만, 어찌 보면 그래서 더 짜릿한 추억으로 남는 것 같다.
여보 고마워요. 그때 내가 당신을 기다린 것보다, 당신이 나를 더 오래 기다려줘서…. 그 30년 전 추억을 지금도 함께 나눌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