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매듭을 풀려고 하는 사람에게선 언젠가는 풀린다. 꽁꽁 언 겨울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풀린 것처럼. (중략)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젠가는 실현시키면 되는 것이다.”
_ 이기진의 「꼴라쥬 파리」 중에서
새해의 첫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그대의 말대로 날씨 정보를 소재로 한 시를 써보아도 좋겠습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주아님 눈에는 세상이 모두 시의 소재들로, 저의 눈엔 책의 소재들로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할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것들 존재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탓입니다. 시의 렌즈와 책의 렌즈는 같으면서도 다른데 마치 우리의 모습과 같이 여겨집니다. 여러 시의 묶음이 시집이라는 책이 되고 때론 책이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책이 시를 품기도 하고 시가 책을 품기도 합니다..마치 주아님과 저처럼요.
대구에 간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아버지의 기일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해 당황스럽고 미안했습니다. 제가 좀 더 마음을 내어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무색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고 그 말이 대체로 맞기도 하지만 맞지 않을 때도 있는 듯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주아님에게 아버지와의 이별이 그러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그대에게 전한 감사패는 그대가 저나 책공방에게 보낸 마음에 비하면 약소한데 그 안에 담긴 크고 깊은 마음을 알아봐 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삼례 딸기 축제는 몇 년 전에 삼례문화예술촌 앞마당에서 진행했던 터라 딱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주아님의 예상대로 코로나로 인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취소될 것 같습니다. 저는 삼례도 딸기도 삼례 딸기도 무척 좋아하지만 이러한 관행적인 지역축제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편이라 아쉽지는 않네요. 주아님의 말처럼 열심히 사 먹기나 합시다 우리.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 그중에서 딸기는 TOP 3에 들 정도로 최애 과일입니다. 이맘때쯤에는 로컬푸드에서 딸기를 플렉스-하곤 합니다. 맛있는 딸기를 보면 여러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지난번에도 부모님 집에 가지고 갈 딸기를 사면서 주아님 생각이 나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 구입하다 보면 몇 만 원이 훌쩍 넘곤 합니다. 그래도 다들 맛있어하고 고마워하면 제 마음도 흡족해 돈을 아껴야지 하면서도 다음에 또 그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먹고살 수 있는 만큼만 돈을 벌면 된다는 주의인 제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는 이러한 때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딸기를 살 수 있는 돈이 아니라 건물을 살 수 있는 정도로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저의 편지가 많이 늦었습니다. 대 지각 사태입니다. 편지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동하지 않아 며칠을 허비했습니다. 그 마음 안에는 가짜 마음으로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리했습니다. 이제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이 되고 보니 진짜 마음이 될 때까지 저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평소답지 않은 저를 인식하며 작년에 제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작년 봄, 익산문화재단에서 ‘100일 필사 프로젝트’에 쓰일 필사노트 제작을 제안받아 진행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플랫폼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전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전하는 기술이 아닌 그 무언가에 해당하는 것을 ‘진짜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제가 그동안 꾸준히 기록을 하고 필사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저의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예전이나 평소의 저라면 ‘어렵고,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꾸준함’에서 대해 이야기했을 텐데 그날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빼먹어도 망했다고 여기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100일이라는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야기였고 무엇보다 그때 당시 저 스스로 넘어졌다고 할 만한 상황이라 그러한 생각이 더 강하게 자리 잡아 그랬던 듯합니다.
제가 일기를 쓴다고 하면 기록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선 다들 (말 뿐인 것 같아 진짜인지 의심이 가는) 대단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현실은 주아님도 아시다시피 그렇지 못합니다. 하루를 빼먹었던 날은 허다하고 지난번에도 말했듯 일주일 넘게 일기를 쓰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일기를 쓴다고 기록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언제고 다시 제 궤도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쉬지 않고 완주하는 일도 대단하지만 다시 일어나는 마음도. 어쩌면 후자의 마음이 더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이는 다이어트나 운동과 같이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모든 일에도 통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에게 편지를 쓰기에 앞서 ‘다시 일어나 완주하는 마음’에 대해 집중해서 이야기했던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이와 같은 힘과 마음이 지금 저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의 편지도 우리의 약속도 예정된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습니다. 또 우리의 관계도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합니다. 아마 제가 느끼는 것처럼 주아님도 저와의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을 느꼈으리라 짐작합니다. 감정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특히 저나 주아님 같이 예민한 사람들의 경우 더욱 그럴 테지요. 지금의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지만 제 마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 또한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 중 하나라는 것과 제가 그러하듯 주아님 또한 우리가 잘 지내길 바라고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너무도 다른 모습을 마주하고 당황스럽고 어색해져 버린 터라 ‘매듭’을 어찌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주아님을 믿으며 서로 다른 우리의 공존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주아님이 지난 편지에서 말했던 ‘마음을 주고받았다면 드러내는 일에도 가감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저는 아무리 아파도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고름이 살이 되지 않으니 상처가 있다면 피가 철철- 나도 그 위에 소독약을 들이부어야 새 살을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요즘은 상대방은 나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여지곤 합니다.
계기는 지난번 제주 여행에서부터였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어떠한 면에서는 거울처럼 똑같은 면을 지녔지만 어떠한 면에서는 너무도 다른 우리가 서로 너무 힘들다는 것을 인지한 탓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각자의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배려하려다 보니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아닌 자신을 위한 배려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지금의 감정이 무덤덤해져서 진짜의 솔직함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모스크바보다 더 추운 날씨가 지나고 조금 덜 추운
2021년 01월 14일 오후 8시에 이승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