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Jul 13. 2024

빨강이, 노랑이, 초록이 모자 안녕

240713 빨강이, 노랑이, 초록이 모자 안녕


이렇게 바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바쁜 요즘이다. 그래도 이런 생각이나 마음은 좀 남겨 두고 싶고, 정리하고 싶은데 하면서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일기도 두 달 가까이 밀려가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그날그날 주어지는 미션들을 수행하다 보면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간다. 올해를 시작하고 내내 시간이 휘몰아친다는 말이 맴돌았고 요즘은 ‘휘몰아친다’는 말을 넘어 시간이 아닌 세월이 간다고 느껴질 정도다.


벌써 몇 년째 매년 제각각 다른 의미로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반짝반짝하던 예전의 계단식 성장도 아니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도 아니지만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고 안으로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뾰족뾰족하던 마음이 많이 편해져서 좋다. 당연하게 어떠한 측면에선 더욱 연약해지기도 했다.


눈 코 뜰 새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바쁜 와중에 아끼던 모자를 떠나보냈다. 오래되긴 했어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생 때 쓰던 모자니 십 년을 훌쩍 넘긴 모자들이다. 찐으로 애정했고, 참 오랜 시간 함께 했다. 모자랑 티셔츠랑 깔맞춤은 물론 폴로 맞춤으로 신나게 지냈다.


물론 지금도 그럴 수 있는데 자리와 장소와 만남에 어울리는 옷을 주로 입다 보니 티셔츠는 종종 입어도 모자는 잘 안 쓰게 됐다. 일 년에 한두 번 쓰던 시절을 넘어 몇 년 동안은 아예 쓰지 않고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몇 번은 당근을 통해 떠나보내려고 사진도 찍었는데 아직 이별할 때가 아니라는 듯 마음이 찡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갔다.


그러다 지난달, 요즘 출근 중인 청촌에서 <되살림 장터>를 하게 됐다. 마음이 아니어도 쓰지 않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욕심이지 싶어 모자를 데리고 나갔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너도나도 관심을 보였다. 내 눈에만 예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잘 어울리고 애정하는 사람이 가져갔으면 해서 가격도 짱짱하게  적었는데. 초피드로 빨강이와 노랑이가 떠나고, 도로 가져가고 싶었던 초록이도 너무 잘 어울리는 분께서 데려갔다.


좋으면서 싫었다. 앞뒤가 안 맞지만 진짜다. 내 새끼들 같은 녀석들의 예쁨을 알아봐 주어 좋았고, 나의 젊은 날을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떠나보내야 해서 싫었다. 아직도 아른아른하고, 다시 새로 살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요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아니 삶 자체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소중하지만 귀찮고, 힘들지만 뿌듯하다. 공주 갈 날이 바짝바짝 다가온다. 오래 기다린 시간이고, 감사한 시간인데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이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퍼러딩딩한 4월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