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윤미네 집』 말고 『전몽각』

by 이승희

80. 『윤미네 집』 말고 『전몽각』

『전몽각』 / 전몽각 지음 / 열화당 출판



울산에서 만난 반가운 친구를 소개한다. 친구를 만나러 울산에 갔다가 함께 도서관에 갔고, 그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났다. 얇고 작지만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책이다. 사진 쪽에 관심이 좀 있다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윤미네 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사진에도 책에도 관심이 없더라도 다양한 연유로 이 책을 만난 많은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윤미네 집』은 일명 소장 각이라 할 만한 잘 만든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좋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잠깐 관심을 받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관심을 받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더구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회자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책공방에서 뒤늦게 이 책을 만난 나도 이렇게 펜이 되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책을 소개하면 다들 반응이 좋다.


『윤미네 집』이 유명한 반면 전몽각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솔직히 나는 돈도 못 벌고 사진이나 찍는 당시에는 무능한 아빠였을 줄 알았는데 『전몽각』을 통해 그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선 그는 사진작가이기 이전에 토목공학자였고, 1966년에는 네덜란드로 유학도 다녀왔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으며, 후에는 성균관대 건축학교 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했다. 그러니까 그는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사진과 가족을 사랑했던 멋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의 꼬장꼬장함과 집요함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토목공학자라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그는 연구자에 가까웠다. 사진 또한 하루하루 실험을 하는 마음으로 자신에 눈과 마음에 닿는 장면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윤미네 집』에 담긴 사진에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이 책 『전몽각』에 담긴 사진에는 그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뇌가 엿보인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토질 검사를 맡아 진행하며 그가 보고 듣고 느꼈던 바를 짧게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통해 이 공사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홍보 영상에서 말하듯 경부고속도로는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빨리 만든 고속도로”다. 일명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익과 혜택이 분명하듯 그 과정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면이 있음 또한 분명하다. 다음은 이 책에 담긴 귀한 문장들이다.



“그 무엇도 꾸준함을 당할 수는 없다. / 윤미 아빠에게 사진은 일기자 삶의 메모였다. / 평단의 평가나 전문성의 잣대는 이미 그의 사진이 획득한 보편성 앞에 고개를 숙인다. / 이미지의 거죽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쳤을 때만이 진정한 사진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윤미네 집’으로 입증했다. / 우리 내면에 침묵하고 있던 감정의 결을 비추어 반추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네 초상이 되었다. / 잘 찍은 사진은 많은데 좋은 사진은 드문 이 시절 / 낮고 작고 느린 것의 생명력을 눈빛으로 전할 것 / 게으르지 않은 삶을 보냈다는 걸 입증해 줄 최고의 친구는 카메라였다. 찍고 또 찍는 수밖에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 그에게 인생의 황혼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기억하기 위한 만행의 행군이었다. / 모든 여건이 어려웠을 텐데 각박해 보이지 않았다.”


어느 한 문장도 빼놓고 싶지 않을 만큼 위의 문장 하나하나가 좋아 몇 번을 읽고 또 읽으며 곱씹었다. ‘신언서판’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는 그 사람이 담겨 있고, 그 사람이 쓴 글에는 그가 담겼다. 이 글도 그렇다. 내 글도 그렇다. 물론 좋은 면만 담기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다. 그는 그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멋진 사람이었고, 그는 기록자였다. 나도 그처럼 나만의 시각을 가진 기록자가 되고 싶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사진이 더욱 좋아졌고 그도 좋아졌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문장을 꼽는다면 “아무리 실수하더라도 괜찮은 그런 점이 또한 아마추어의 특권”이 부분이다. 이 문장을 마주하고 ‘삶에 있어서 프로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인데 모두가 아마추어가 아닐까. 그러니 아무리 실수해도 괜찮은 거 아닐까. 아니 괜찮아야 하는 거 아닐까. 물론 그것이 진정한 실수라면 말이다. 잦은 실수 혹은 큰 실수가 괜찮지 않은 요즘 이 세상이 문제인 건 아닌가. 의도적인 실수와 바로잡으려고 하는 마음의 부재는 책망받아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은 진정한 실수라면 조금 너그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등의 생각이 솟아났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니 마음에 힘이 생기는 기분이다. 『윤미네 집』이 잘 만든 좋은 책이라면 이 책은 재밌고 유익한 책이다. 나중에 기획가 닿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후루룩 엿보는 재미도 있다. 중간중간 수시로 등장하는 그의 사진은 보너스처럼 달콤하다. 글밥도 많지 않아 후루룩 읽을 수 있다. 느리게 읽기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나는 한 시간 만에 뚝딱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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