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센티멘탈 벨류> /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

by 이승희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센티멘탈 벨류>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



<센티멘탈 벨류> 영화 봤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핸드폰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는 요즘이다. 일을 할 때나 일을 하지 않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운동을 할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나. 핸드폰과 떨어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주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핸드폰과 물아일체 수준으로 함께하는 일상이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의 나는 반나절 혹은 그 이상은 핸드폰을 잊은 채 살아가곤 했던 그나마 핸드폰과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핸드폰 중독 수준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핸드폰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까닭은 오늘 본 영화가 좋았다는 이야기의 일환이다. 어떤 영화를 보는 것만큼 어디에서 영화를 보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오늘 본 영화를 일반 상업 영화관에서 봤다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중간중간 핸드폰을 확인했을 것 같다. 최근에 재밌게 봤던 <왕과 사는 남자>를 볼 때도 그랬다.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중간중간 시간을 확인하고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핸드폰을 확인했다. 물론 화면을 터치하거나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 같은 영화라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넷플릭스로 보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것도 엄청나게.


영화 감상은 말 그대로 감상이다. 줄거리 확인, 내용 이해가 아닌 ‘경험’이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관에서 봐서 그런지 중간에 핸드폰도 확인하지 않았고, 마지막 엔딩크레디트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러한 힘은 공간에서 오지만, 이 공간 그리고 분위기는 공간의 구조도 있지만 공존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영화감독인 구스타프가 오랜 친구이자 촬영 감독인 피터를 만나러 가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였다. 이 대화를 마주하고 ‘담대함’이라는 단어가 남았다.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하다는 의미가 아닌 담담하게 대하는 온도라는 의미에서.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이성과 감성을 당연하게 분리하는 태도. 어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대화였으나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울컥했다. 한편으론 저게 어른이 아닐까, 그리고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장면에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구스타프는 어떤 인터뷰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팀(스텝)을 두고 ‘가족’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 촬영을 하지 않는 동안 그는 팀을 챙기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자신이 ‘가족’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친구라 할 수 있는 친구의 몸이 혼자 일어서는 게 버거울 정도로, 지팡이를 짚어야 할 정도로 쇠약해지는 동안 그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은 감독이 아내와 두 딸들과 살던 집을 떠난 것과도 흡사했다.


나는 아마도 이 장면을 보며 나 또한 언젠가 저런 순간을 마주하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의 쇠약함을 알지 못한 채 예전 생각만을 가지고 일을 제안했으나 예전 같지 않은 친구의 상을 마주하고 제안을 거두어야 감독의 입장이든, 나의 쇠약함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반가운 요청에 신이 나서 응했으나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없음을 마주해야 하는 친구의 입장이든. 어느 쪽이 그나마 덜 힘들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참 별로인데 이 둘의 대화는 건조하기만 하다. 다만 눈빛과 표정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구스타프의 영화에 반해 배역을 맡은 할리우드 스타 ‘레이첼 캠프’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다. 할리우드 스타임에도 스타라는 지위에 빠져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자신이 맡은 배역을 단순히 캐릭터로만 생각하여 연기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배역이 아닌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참 좋았다. 진짜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노력, 내 것만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능력, 아무리 욕심이 나도 내 것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줄 아는 힘, 내가 아는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용기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한 레이첼의 선택으로 구스타프는 늦게나마 제자리를 찾아가고, 그의 딸 노라도 자신만이 아닌 아버지 또한 자신처럼 힘들어했음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대사를 꼽자면 ‘기도는 절망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맥락의 이야기였다. 무언가를 바라고 청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문을 외듯 저 밑바닥에 있는 기운까지 끌어모아 에너지를 쏟는 일. 이 대사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후 이어지는 “도와주세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 혼자서는 못해요. 나에겐 집이 필요해요. 집이 있어야 해요.” 하는 대목 또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줄기차게 하는 생각 중 하나는 ‘무엇이 중요할까’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삶의 무게와 속도에 치여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소중한 걸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점검하곤 하는데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구스타프가 대본을 쓰고 15년 만에 다시 영화를 찍으려고 했던 이유는 ‘딸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 위하는 방식이 딸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딸의 거절로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맡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물론 어떤 측면에선 할리우드 스타인 레이첼이 배역을 맡는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는 구스타프가 이 대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로 했던 이유는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무언가를 하기로 했을 때 먹었던 마음과 그 이후의 마음, 목적, 생각이 달라지곤 한다. 물론 모든 것은 변하니 변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변화가 아님에도 변화라 착각하거나, 헷갈리거나, 잊거나, 놓치게 된다. 그리고 후회한다. 후회가 나쁜 건 아니지만 굳이 자처할 필요는 없으니 정신을 단디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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