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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고 우리의 은유

250921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북토크

by 이승희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은유

250921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북토크


250921 <책방 잇다>에서 열린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북토크


‘나나(머리)’가 되고 싶었으나 ‘베토벤(머리)’이 되어 3개월을 살았다. 그 사이 <책방 잇다>에서 열린 은유 작가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공주에서 첫 외출이었다. 간만에 숨통이 틔이고, 무언가 오랜만에 제자리를 찾아간 느낌이랄까. 책공방 일과 상관없이 공주에 와서 가장 좋았던 날을 꼽으라면, 이날을 꼽고 싶다.


나의 은유 작가님을 만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소규모로. 닮아서 좋아하게 된 건지, 좋아하다 보니 닮아진 것인지. 대규모 강연을 가장 피하고 싶고 이런 소규모 자리가 가장 좋다는 이야기, 무언가를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고, 기억하고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가 그득했다. 덕분에 머릿속은 물론 손과 마음이 분주했다. 작가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나랑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꽤 여러 번 했다.


일요일 오전에 진행된 만남은 “책이 종교다”로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생활을 하는 일요일 오전,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듯 모여 앉았다. 그리곤 자기소개라는 명목하에 각자 자신이 은유 작가님을 왜, 얼마나, 어떻게 좋아하는지를 앞다투어 고백했다. 은유 작가님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꽤 오래전부터 알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나름 부심이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깊고 큰 애정을 가진 분들 사이에서 나의 팬심은 여지없이 작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니 더 좋았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는 ‘내 생각과 취향이 대세가 아니구나’ 하는 것인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구나,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이렇게 있구나’ 하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은유는 자연스럽게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주옥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아이들,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약한 상황에 놓인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부터. 잘 사는 삶이란 나와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상황에 덜 놓이게 하는 것이 삶의 기술이라는 이야기. 글쓰기는 자기 언어를 만드는 일이라는 이야기. 사람은 기능적인 존재가 아닌 복합적인 존재로 보고, 어떤 상태를 두고 정체성으로 오인해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 악한 일을 하지 않아서 죄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선한 일을 하지 않은 게 죄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등등.


특히 몇몇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책을 두고 너무 어두워서 싫다고 하는데 정말 어두운 건 이러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는 꼭 기억하고 싶다. 무언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꼭 한번 짚어야 할 지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정말 그러한가?’이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을 뒤집어서 보아야 하고, 되짚어서 보아야 하고, 비틀어서 보아야 한다.


나는 이날의 만남을 통해 내 삶의 용기가 조금 생겼다. 일이든 삶이든 늘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다시피 하는 나는 과연 내가 잘 살고 있을까, 괜한 에너지를 쓰는 것은 아닐까,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건 아닐까, 생각보다 실천을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은유 작가님을 만나고 나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됐다. 잘 사는 삶은 성공이나 성취 같이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나를 잘 아는 삶, 나 스스로를 너무 어렵고 힘들게 하지 않은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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