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01. 친애하는 그대에게
독약은 약이 아니라 독이듯, 악법은 법이 아니라 악이지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악입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옳은 것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 또한 죄라고 성서에서는 말합니다. 고장 난 신호등을 고치지 않고 고장 나기는 했지만 신호등이니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길에서 기다리겠습니까? 고쳐서 길 역할을 하는 길로 만드는 것이 잘 하는 일 아닙니까? _『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중에서
주아님, 안녕하세요. 저는 그대에게 승희님이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인용 문장을 쓰고 첫 문장으로 ‘주아님, 안녕하세요’를 쓰고 이후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더 정확히는 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종종 겪었던 일입니다. 작년 12월까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책공방 이승희입니다.’를 사용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 문장이 익숙해 실수를 하곤 합니다. 이제는 너무나 진부해져 버린 노랫말처럼 ‘습관은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몸에 새겨진 문신은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만 이 습관이라는 녀석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또 다른 문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대가 내게 처음 이 제안을 했을 때 가졌던 첫 마음을 기억하여 정말 가벼이 시작하고자 했는데 인용 문장도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문장도 너무 무거워져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요즘 가볍기보다는 무거운 탓일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저는 종종 내가 할 수 있는 일, 바람직한 일, 옳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해결책 혹은 방안은 무엇일까,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갖춰지거나 선행되어야 할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등등 이 따위 것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TV의 뉴스를 보아도 신문을 보아도 SNS를 보아도 도무지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나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해지는 내용보다는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정말 답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고 화를 넘어 분노가 치미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대부분이 내 생활과는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일들은 아닌데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울화가 치밀어 그런 내용을 마주하고 나면 한동안 그런 감정에 머물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러한 정보로부터 벗어나고자 일부러 외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내 그렇게 외면해버리면 사회는 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또 주의를 기울입니다. 저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요일이라 10시 30분 미사에 가려고 서둘러 준비를 하다 마음이 바뀌어 저녁 미사에 가기로 하고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살아가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과 답을 찾다가 정말 찾기도 하지만 못 찾는다고 해도 그 삶이 잘못되었다거나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 주아님을 만났을 때 제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실까요?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상향등 일명 쌍라이트를 켠 차를 마주하고 우리는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저는 그때 아마 저 차의 차주는 자신이 지금 쌍라이트를 켠지도 모를 거라고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그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쌍라이트를 켜서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줄도 모른 채 사람들이 자신을 마주하면 눈살을 찌푸린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주아님과의 만남을 마치고 홀로 있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전조등을 켜고 운행을 해야 하는 야간에 전조등을 켜지 않고 (자기 스스로는 켰다고 생각하고) 주행을 하며 왜 내 앞은 이렇게 어두울까 하소연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저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나는 내 삶을 안전하게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주행하고 있을까? 하향등을 켜야 할 때에 상향등을 켜고 오른쪽으로 갈 계획인데 좌측 깜빡이를 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문득 무서워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렇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점검하고 다독이며 내가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나를 점검하고 다독이며 내가 원하는 삶으로 만들어 가는 일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힘듦만큼 의미 있고 때로는 뿌듯함을 가져다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먹고사는 일과 별개로 매우 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먹고사는 일만 중해지고 이러한 일들은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러한 일이 중한 것은 알지만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적어지고 그러다 보면 먹고사는 일이 더 중하다는 학습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가장 좋은 답은 이러한 일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일을 통해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일 텐데 그것은 요원하게만 여겨집니다.
앞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이라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아님이 시를 쓰거나 내가 책을 만드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중 몇 퍼센트를 쏟아붓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부끄러워만 집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일상을 살아내는 중에도 시 쓰는 일과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로보트나 컴퓨터가 아니기에 다른 일을 하면서도 어떠한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마음을 쏟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가능하다면 우리가 진짜 시를 쓰고 책을 만드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쓰며 그것으로 먹고사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꿉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 저는 비로소 이 사회가 진정으로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불어 결과만이 아닌 과정이 중시되어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말 따위도 사라져 버렸으면 합니다.
쓰다 보니 마음이 자꾸 격해집니다. 그동안 이렇게 격한 마음을 풀어 놓을 길이 없었는데 이 마음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함께 격해지지 말아야 할 텐데 다 쓰고 보니 더 뜨거운 마음을 지닌 그대라 걱정입니다. 저는 한 사람이 생을 살아가며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더라도 그 삶은, 그 생은 외롭지 않은 생이라 성공한 삶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편지들을 보며 한 생각입니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언제쯤 생길까 그간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지를 쓸 누군가가 그리고 이 편지를 부담스럽거나 가벼이 여기지 않고 기쁘게 받아 줄 누군가가 있어서 참 기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많이 힘들었고 많이 외롭던 시기에 나에게 와주어 참 고맙습니다. 이 일도 우리의 관계도 부디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오래가길 기대해 봅니다. 또한 이 편지가 서로의 삶에 짐이 아닌 안식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 편히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펜에 집중해 쓰다 보니 두서가 없긴 하지만 이렇게 완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2020년 6월 14일 일요일 오후 1시
이승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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