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정진국 / 생각의 나무
25. 나도 가고 싶다, 유럽의 책마을!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정진국 / 생각의 나무
170126 '지금처럼 꼭 읽을 책만 사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지갑을 꼭 쥐고 있으면 결국 나중엔 누구의 책도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책을 마치며 중)라고 이야기하며 지은이는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도 미래를 위한 준비로 사두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 또한 그러했기에 지은이의 이야기를 읽곤 뜨끔-했다. 읽지 않을 것 같아도 지금 당장 못 읽더라도 내가 응원하고픈 혹은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은 사야겠다. 나온 지가 꽤 된 책이었는데 제목만 보고 나중에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공방지기가 되어버린 후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것은 읽어야 하는 책이 줄줄이 사탕처럼 밀려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읽고 싶은 것과 읽어야 하는 것이 뒤섞여 있다. 다만 이렇게 읽어야 할 책이 밀려 있으니 쉽사리 내가 읽고만 싶은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나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이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지만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해서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공간에 대한 기록'을 함에 있어 참고자료 차원에서 읽게 된 것이다. 선생님께 말로만 듣고, 인터넷 기사로만 접했던 '헤이 온 와이'를 비롯해 유럽 곳곳의 책마을의 모습을 접할 생각에 책을 손에 넣고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곳곳의 책마을이 어떻게 조성이 되었고 그 마을의 차별화된 주제 그리고 그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느 책방에서 어떤 책을 발견하고 어떤 책이 있다는 류의 내용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역사적인 배경지식이나 인문학적인 배경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런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그런 감동이나 메시지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겨야 하는 내용이 많아 아쉬움이 남았다. 언제 시간이 된다면 역사 공부도 미술 공부도 한번 해보고픈 마음이나 아마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이 책을 보았고 꽤 빨리 보았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담담한 시선이 참 좋았다. 크게 막 공감이 가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내가 가보지 못한 유럽의 책마을을 상상해보는 일은 꽤 흥미로웠다. 그중에서 유독 반가웠던 대목은 유럽의 책마을에는 책을 파는 서점과 함께 우리와 같은 공방 특히 활판공방이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오랜 시간 문화로 받아들여졌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의 혹은 가족의 추억을 담은 책을 만드는 문화가, 책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그러한 공방들을 지켜주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 크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지점은 어느 마을에 있는 공방에선 2주간의 실습연수 프로그램을 받기 위해선 한 해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가 좋고 축제 프로그램으로 일기장이나 선물용 책자를 가죽 표지로 꾸미는 체험이 있다는 내용부터였다. 또 노르웨이의 어느 마을에 그 고장의 생활사 자료가 풍부해서 그 마을의 향토사 책이나 사진첩이 있다는 내용에선 무척 부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한참 동안 그 대목을 곱씹으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그런 문화를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지은이는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명절이면 주민들이 책을 선물하는 관습이 문화적 저력을 키웠으리라 짐작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책마을 대부분은 거의 10년 정도 지난 마을이다. 축제 때나 날씨가 좋을 때는 관광객이 많지만 대부분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듯했다. 무조건 일 년 내내 사람들이 바글바글 해야 잘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네와는 차원이 다른 여유가 아닐까 싶다. 교육을 하든지 프로젝트를 하든지 공간을 만들든지 우린 투자와 동시에 효과가 나타나길 바란다. 나는 이것을 ‘자판기적 사고’라고 칭하는데 이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투자가 있으면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이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나타나는 것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투자가 있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투자의 목적 또한 수익인지 복지인지의 구분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을 외친다. 무조건! 무조건! 세상에 '무조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세상에 무조건적인 일보다는 조건이 붙는 일들이 더 많고 시간이 필요한 일은 더 많다. 병원 가서 주사 맞으면 바로 낫고 아프던 것이 약 먹으면 바로 낫고 그렇게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그런 경우가 있다 치더라도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무조건, 곧바로'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마을이 10년 정도 되었고 어떤 마을에선 10주년을 기념해 회고 사진전을 열고 그 10년을 함께한 사람이 회고사를 하는 등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그곳의 문화가 부러웠다.
어쩌면 지은이는 '책을 마치며'에 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마을 이야기를 할 때는 잔잔하고 담백하게 흘러간데 비해 마지막에선 격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면 유럽의 책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니 더욱 우리나라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서일 수도 있겠다. 지은이는 책을 마치며 책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그에 얽힌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내용을 접하고 생각해보니 어디 그것이 출판계뿐이랴 싶다.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는 중요한 것 이외의 것들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다. 그러면서 책이 잘 되자면 우선 책을 다루는 사람이 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중매시장에서 선호되는 것처럼 어디 출판사에 다니는 사람이 선호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도 이야기했다. 이 대목에선 웃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씁쓸해졌다. 그런 세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두 직업의 가치가 연봉으로만 판단되는 현실이 안타까운 생각 때문이었다. 책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들고 전하는 모든 사람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대목은 선생님께 많이 들었던 내용이고 책공방에서 꿈꾸는 바와 맞닿아 있는 내용이라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읽는 내내 지은이가 책에 가지는 그 주변의 것들에 가지는 뜨거운 애정과 따뜻한 관심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이런 분이 가이드해주시는 책마을 투어가 생긴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가이드 분야가 나라별 지역별뿐만 아니라 이렇게 주제별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또 그에 따라 브로슈어에 뻔히 나와 있는 내용을, 주어진 자료를 줄줄 외워서 전하는 것이 아닌 양질의 정보 제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난 2008년도에 이 책이 나왔으니 벌써 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모습이 그러했는지 지은이의 시각이 그러했는지는 지은이는 대부분의 마을에 대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그곳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