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완독한 책이니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겠다. 책 띠지에 있는 문구가 웃기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강한 심장을 준비하라!'(ㅋㅋ) 여담이지만 강한 심장은 준비 안 해도 될 것 같다.
중국 문학은 처음 읽어본다. 요즘 매주 토요일인지, 격주 토요일인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떤 기자분이 '금서'에 대해 쓰는 기사를 재밌게 읽고 있다. 기사를 읽다가, 어느 순간 스포일러 부분이 나오면 기사를 딱 덮는다. 그리곤 책을 빌리러 가거나, 혹은 구매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 '금서'라는 단어가 주는 호기심 가득한 매력이 나를 앞지른다. 도대체 책에 뭔 내용을 썼기에 금서가 됐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도 그랬다. 금서라 했다. 중국에서는 더 이상 중국어로 이 책을 만날 수 없는, 그런 책 이랬다. 무슨 내용일까? 봤더니, 매혈로 인한 허난성에서의 집단 에이즈 감염 사태를 다룬 책이었다. 중국이라는 공산국가 특성상,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막는다. 작가는 이 주제를 다뤘다. 그리고 곧이어 중국에서는 이 책이 금서가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나라로 번역본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중국 허난성 뿐 아니라 오래된 중국의 매혈 문화, 그리고 집단 에이즈 감염 사태의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딩씨 마을의 꿈'은 1990년대 허난성 집단 에이즈 감염에 대해 딱 꼬집어 기술하지는 않는다. 시대를 바꿔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 가난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가난한 농민들이 매혈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기와집을 짓고, 이층집을 짓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도나도 매혈을 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 몸에는 참깨 같은 바늘자국이 있다. 검붉은 혈관이 툭툭 튀어나와있다. 온 마을의 존경을 받는 딩선생님의 장남 딩후이는 매혈의 우두머리였고, 주사 하나로 9명을 찔렀다 했다. 딩씨 마을에 에이즈(열병)이 번지기 시작한 이유겠다.
옌롄커라는 작가의 책을 읽는 열흘 동안, 하루키 생각이 났다. 두 거장이 적어도 내겐 비슷했다. 다루면 안 되는 것을 다루는 게 좋았다.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난징 대학살 내용을 넣었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금서 취급을 받았다 들었다.) 환경과 배경을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좋았다. 옌롄커가 딩선생님이 되어 딩씨 마을을 묘사하는 모든 장면마다 딩씨 마을에 가 본 것처럼 여름날의 냄새와, 마을의 냄새와, 열병 환자들이 모인 학교와, 량과 링링이 뒹구는 집안과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천부적인 묘사 실력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소설을 굉장히 흡입력 있고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중국을 선호하지 않아서 중국문학도 관심 밖이었는데 그런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전 아프가니스탄 문학을 읽으며 아프가니스탄을 접하고, 그 나라와 역사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하며 알음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딩씨 마을의 꿈'을 읽으며 관심 없던 중국이란 나라의 아픈 이면을 본 것 같았다. 중국 역사와 문화가 조금 궁금해졌다. 옌롄커의 다른 소설도 보려고 주문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자, 역할이라 생각한다.
책 첫 장에 성경 창세기 내용이 짤막하게 나온다. 꿈에 대한 이야기다. 창세기에서 꿈을 해석하는 사람은 요셉이고, 요셉의 해석대로 이루어진다. 딩씨 마을에서 딩선생님은 꿈을 꾼다. 그리고 꿈속 내용 그대로 딩씨 마을은 변화한다. 맨 앞 장에 나온, 다소 생뚱맞게 느껴졌던 창세기의 내용이, 책을 읽다 보니 확연하게 이해가 되었다. 옌롄커는 딩선생님도 요셉처럼 꿈꾸는 자,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보는 자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거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별 5개 주는, 다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부까지 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다만 영어판으로도 분명 책이 있는데, 확실히 중국문학이라 그런지 읽고 공부하거나 참고할 자료가 적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