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핀시리즈 시인선 047 (230819~230821)
잿빛을 잊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 「압생트」 (p.88)
(23/08/21) 에세이 같기도, 연작 소설 같기도 한 시들이었다. 환상동화를 읽는 것처럼 몽환적이고 꿈같은 분위기의 시들. 잿빛의 밤하늘, 달 아래 정말로 흡혈귀 작가가, 요나가, 천사가, 굴뚝의 기사가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 ‘전차 문이 열리자 숨이 막힐 듯한 여름의 열기가 밀려들고, 나는 강한 햇빛에 눈을 찡그린 채 소매치기 아이가 플랫폼을 가로질러 건너편 선로를 향해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본다’는 마지막 시까지 완벽한 마무리였다. 꿈인지 진짜인지 모를 밤의 세계에서 헤매다,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 간명하게 말해서, 시는 나로부터의 탈주다. 시는 생성이고 변신이다. 시는 의미에서 비의미로 나아가는 운동이며, ‘나’에서 ‘나라고 부를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리하여 시는 세계의 다질성을 개방시킨다. 그럼으로써 시의 아름다움은 해석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을 일깨운다. 아름다움은 얼빠진 도시 원숭이들을 할퀸다.
/ 에세이: 「원숭이와 나」 (p.139)
현대문학 핀시리즈는 처음인데, 이 시집이 정말 좋아서 다음 책으로 안희연 시인의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을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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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를 쓴다네. 그리고 그녀는 이 도시가 자신이 꾸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다시 말해서, 자네도 나도 그녀가 꾸는 꿈의 일부라는 거야. 지금 이 순간도, 창밖으로 내리는 저 눈도 말일세」
/ 「소설가」 (p.25)
처음에는 뭉개진 얼룩처럼 보이다가 곧 또렷해지는 광장 시계탑의 둥그스름한 문자반 불빛 아래 서서, 내 삶은 누군가의 꿈인지도 모른다는 매번 새로 시작되고 매번 똑같은 의심.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꿈꾸고 나를 걷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매번 똑같고 매번 새로 시작되는 의심. 가령 그가 꿈 밖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걷고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그가 걷는지도 모른다는.
/ 「밤길 걷는 사람」 (p.54)
「너는 날 처음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는 날 잘 알고 있어」 사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예전에도 우린 여러 번 마주쳤지. 하지만 넌 모두 잊어버렸어. 네가 잊어버린 다른 수많은 꿈처럼」
/ 「천사」 (p.71-72)
「(…) 당신의 시를 읽은 뒤부터 내가 쓰는 문장마다 당신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당신의 그 웃음소리가 내 원고에 메울 길 없는 구멍들을 뚫어놓은 것 같단 말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지요. 당신 말대로 내 문장이 당신의 문장을 쓰는 것이든, 당신의 문장이 내 문장을 쓰는 것이든,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쓰는 것이든 내가 당신을 쓰는 것이든, 그런 건 이제 내 알 바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난 그 구멍들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 「요나」 (p.105)
「꼬맹이, 난 널 잘 알아. 넌 한 번도 너의 꿈을 믿은 적도, 사랑한 적도 없지. 넌 자신이 이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진짜로 살아본 적이 없는 거야. 넌 여전히 고아원의 잿빛 벽 속에 웅크린 겁먹은 어린애로 남아 있을 뿐이야. 반대로 우린 꿈속에서 삼백 살은 더 나이를 먹었지」
/ 「소매치기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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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
요나 (p.12)
고아원
소설가
까마귀의 밤
밤길 걷는 사람
마감일
회전
천사
원고
압생트
요나 (p.102)
소매치기들
(*출판사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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