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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youlovearchive Dec 31. 2023

정용준, 유령

현대문학핀시리즈 소설선 007 (231227~231230)



*별점: 4.5

*한줄평: 악(惡)은 무엇이고, 악인은 누구인가

*키워드: 죄 | 살인 | 사형수 | 호기심 | 이야기 | 죄인 | 죽음 | 의도 | 본성 | 정상 | 욕망 | 기다림 | 미움 | 그리움

*추천: 악(惡)과 악인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존재를 숨겨야 존재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습니다. ‘쁘리즈락’, 그곳에서 저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여기 말로 ‘유령’이지요. (p.127)


| 첫 문장: 얼음 바다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p.9)


———······———······———


* 2023년의 마지막 책으로 정용준 작가님의 『유령』을 골라뒀는데,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그와 별개로 책은 정말 좋았지만.


* 죄와 벌, 선과 악의 기준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교도소에 있으니까 죄인’(p.25)이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p.33)이라는 교도관 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그는 악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신형철 평론가가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p.39)을 우리 또한 매일 같이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지켜보기만 하는 이도 있지만 비웃고 비난하는 이도 있고, 동정하고 연민하는 이도 있다. 속내를 들키지 않았다고 내가 한 생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악(惡)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 474번이 신해준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그에게 동정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으며, 한 사람이 두 존재가 될 수 있다’(p.133)는 474번의 말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상이 완벽하게 이분법으로 나뉘는 곳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도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기에 언제든 두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작품 해설은 재독 후에 읽어보려고 아껴두었다. 이 복잡한 감정을 책을 한 번 읽고 다 써 내려가기엔 아직 나의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겨울 풍경 그 자체인 이 작품. 겨울 하면 이제 정용준 작가님이 떠오를 것 같다. [23/12/31]


———······———······———


|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

  (…)

  잔인한 놈? 살인자? 사이코? 아냐. 아냐. 속을 모르겠는 놈이야. (p.13-14)


| 그는 의도를 품지 않아요. 죽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고 그로 인해 얻는 쾌감도 원치 않아요. 그는 그냥 죽입니다. 그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어요. 따라서 복수도 없고 오해도 없지요. 폭우가, 눈덩이가, 번개가, 곰이, 인간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있나요? 사자는 사슴의 숨통을 끊고서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 용서를 빌지 않아요. 그냥 먹을 뿐입니다. 본성이란 그런 것입니다. (p.28)


| 무표정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 윤은 그것을 잘했다. 스스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그것은 선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악한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기다리고 지켜봤다.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p.39)


| 죽게 되겠지요.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사형 당하러 들어온 사람을 사형 시키는 것이······ 뭐, 그 방법밖에 없겠지만 무력하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살인을 저지른 죄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공범같이 말이죠. 죄를 짓고 그에 합당한 벌을 집행하는 게 법과 교도소의 존재 이유라면 이유일 텐데 이 경우엔 모두가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돕는 셈이죠. 뭔가 속고 있는 것 같아요. (p.93)


| 부서졌던 시간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일그러진 그림. 기괴하게 조립된 얼굴. 한쪽은 웃고 있고 한쪽은 울고 있습니다. 떠나가고 버려지고, 두 가지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고 싶고 죽이고 싶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누나와 엄마. 오피스와 무미야. 한 사람이 두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이젠 이 혼란을 멈추고 싶습니다. 담당님. 이해하시겠습니까?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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