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핀시리즈 시인선 013 (240205~240222)
* 별점: 5.0
* 한줄평: 시의 제목들을 모으면 또 한 편의 시가 되는 시집
* 키워드: 울음 | 슬픔 | 고독 | 물결 | 어둠 | 기억 | 노인 | 죽음 | 빛 | 영혼 | 밤 | 음악
* 추천: 음악을 닮은 한 권의 시집을 읽고 싶은 사람
그리하여 중요한 말은 종이 위에 쓰인 말이 아니라. 쌓이고 쌓이면서 지워지고 지워지는 말들. 그렇게 지워짐으로써 종이 위에 다시 드러나는 말들. 그렇게 말과 말 위로 어떤 겹과 겹을 만들어주는 말들이다.
/ 에세이 |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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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이 참 좋다는 분들이 많길래 산문집을 읽기 전에 핀시리즈 시인선 013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를 읽어 봤어요. 제 인생 시집 중 한 권이 되었습니다.
* 목차를 읽는 순간부터 이 시집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시들의 제목을 쭉 읽다 보니 그 또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 같았거든요. 에세이까지 모두 읽으니 이 시집의 제목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가 정말 와닿았어요. 시집에 실린 시들과 시집 제목이 딱 어울릴 때 더 감동받는 편!
* 저에게는 어둠과 고독, 기억과 망각, 밤과 물결, 슬픔과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될 시집이었어요. 「사막의 말」과 「현악기의 밤」이 특히 좋았는데요. 시를 읽다 보면 모든 시인 각자의 언어는 참 독특하고 그래서 유일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 다름을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요.
* 에세이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을 읽으며 시인은 ‘시를 쓰고, 쓴 것을 쌓고, 또 지우고 지우며 그렇게 드러나는 말들을 남기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이지 않는 말의 흔적을 쌓아가는’ 사람의 산문은 어떨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 밑에 좋았던 시의 제목들을 쭉 써두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시가 좋았어요.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시집을 만나는 일은 뜻밖의 행운이자 행복 ꕤ [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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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 것은 철 지난 노래를 부른 뒤의 일이었다. 벽과 벽을 물들이는 것은 꽃과 나무의 그림자였다. 타오르면서 스러지는 것. 우리는 그것을 눈빛과 눈빛 사이의 간절함으로 이해했다.
/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p.13)
| 너는 어떤 질문 하나를 남겨둔 채 사막으로 떠나 두 번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깨달음이 후회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 「사막의 말」 (p.15)
| 이 어둠이 걷히면. 이 기억이 스러지면. 어제의 양떼구름을 잊어버렸듯 오늘의 나무둥치의 상처도 잊게 되겠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기억할 것도 잊어야 할 것도. 간직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구해야 할 것도 없다는 듯이. 먼지는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 「나뭇가지들은 나무를 떠나도 죽지 않았고」 (p.28)
| 너는 녹아내린 얼음 위에 다시 문장을 새기고 있었다. 읽히지 않는 무늬를 쓰다듬듯 어둠을 만지고 있었다. 투명한 사각형에서 드넓은 표면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저편에서 너를 부르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이름을 불러내고 있었다.
/ 「이누이트 이누이트」 (p.33)
| 너와 나는 재빨리 멀어져 갔다
서로가 서로의 어둠에 물들지 않도록
각자 등을 돌리고 열심히 걸어갔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막이 되어주려고
/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 (p.34)
| 익숙하지 않은 배웅처럼 걸음과 걸음 사이에 문득문득 슬픔이 끼어들면서. 너를 너로서. 나를 나로서. 있는 그대로 그 자리로부터 울리면서 물들어가는. 어두운 밤이다. 밤의 노래를 듣고 있다.
/ 「현악기의 밤」 (p.48)
| 공작이 있다. 공작은 오늘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빛을 끌면서 걸어가고 있다. 하나의 영원처럼. 나는 그 공작 앞으로 다가가 구슬 하나를 굴려서 넣어준다. 어린 시절 그토록 꺼내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바로 그 유리구슬을.
빛나라고.
같이. 더욱 빛나라고.
/ 에세이: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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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울고 있는 사람」
「숨 쉬기 좋은 나라에서」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사막의 말」
「처음처럼 다시 우리는 만난다」
「보이지 않는 한 마리의 개」
「나뭇가지들은 나무를 떠나도 죽지 않았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이누이트 이누이트」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
「마른 잎사귀 할머니」
「우주의 빈치」
「높은 곳에서 빛나는 나의 흰 개」
「현악기의 밤」
「무언가 붉은 어떤 것」
「모나미는 모나미」
「달 다람쥐와 함께」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흰 산으로 나아가는 검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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