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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Feb 24. 2023

유려한 시퀀스를 만드는 사람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2 인디살롱 

문화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났다. 그리고 문명이 개화하는 곳에는 언제나 공간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장(field)은 한 역사에서 다음 장(chapter)으로 넘어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17세기 유럽의 살롱(salon)도 그중 하나였다. 


21세기. 장석준 소장은 대지 위에 그래프 하나를 그렸다. 가로축에는 건축, 세로축에는 대중을 적고 그 사이 어딘가에 점 하나를 찍었다. 건축이란 고지에서 내려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건물을 도심 곳곳에 심고 싶었다. 그래서 독립(independent)했다. 어딘가에 의지하는(depend on) 대신, 불굴의 의지라는 힘으로 척추를 꼿꼿이 세웠다. 그것이 인디살롱(indie salon)을 세우는 골조가 됐다. 


굳건히 세운 뼈대 아래, 장석준은 슬라브(@slab_seoul)라는 견고하고 단단한 기반을 마련했다. 카페라는 단어로만 요약하기엔 의미가 복잡하다. 슬라브에는 건축에서의 인디를 찾으려는 그의 뜻이 담겨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미감부터 다양한 논의와 이벤트가 피어나는 장, 서울 마포구 망원동 지하에 자리한 슬라브에서 장석준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인디살롱(@indiesalon_official)의 소장, 장석준입니다. 인디살롱은 대중과 건축 그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스튜디오입니다. 2014년도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10년 차가 됐네요. 

 

그렇게 오래됐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매체 노출은 상대적으로 덜 된 느낌인데요. 

건축 전공자로서 나름의 프라이드 같은 게 있었거든요. (웃음) '내가 진짜 잘하면 어디선가 먼저 찾아주겠지' 생각했죠. 저보다 훨씬 잘하시는 고수 분들이 정말 많으시거든요. 그들에 비하면 전 아직 부족함 투성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굳이 매체에 먼저 연락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해외 매체에서 인디살롱의 프로젝트를 볼 수 있었어요.

한참 작업에 매진할 무렵, 아키데일리(Archdaily)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웃음) 


뭐라고 하던가요?

인디살롱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5개 정도의 공간을 골라 자료를 보내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했던 피크닉 프로젝트를 전달했어요. 얼마 전에는 문화식당 성수 관련 자료를 보냈고요. 나머지 세 개도 얼른 정리해야죠. (웃음)


포트폴리오 정리를 아직 다 못 하셨나요? 

네. (웃음) 정말 쉬지 않고 공간만 만들어 왔거든요. 프로젝트 끝나면 바로 다음 프로젝트 들어가고 하다 보니 여유가 없었죠. 물론 이것들을 정리하는 게 중요한 건 사실이에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하지만 제 일의 본질은 공간이거든요. 클라이언트들의 공간 하나하나에 몰입하다 보니 정리는 자연스레 뒷전이 돼버렸네요. 


공간 설계와 마케팅, 두 가지 모두를 잡기란 쉽진 않을 거 같아요.

스튜디오 설립 초기에는 웬만한 것들을 혼자 다 했어요. 그런데 일이 늘어나니까 어렵더라고요. 홍보를 담당하는 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올해부터는 그간 정리하지 못한 내용들을 관리하고 간추리는데 시간을 할애해 볼 생각이에요. 보다 더 많은 분들에게 인디살롱의 작업을 전달드리고 싶어서요. 올해 인디살롱 목표가 홍보거든요. 


홍보의 해?

어쨌든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임에는 틀림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렇죠.

공간 디자이너의 존재 유무를 보다 많은 대중들이 알게 되는 것, 마케팅이 이에 필요하다면 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본질은 실력이겠지만요. 보정과 편집으로 포장은 할 수 있지만, 결국 내실 있고 실력 좋은 스튜디오들이 업계에 단단히 자리할 거예요.

잘하고 노력하는 분들은 티가 나게 마련일 테니까요. 대중의 안목도 보다 더 높아질 테고요. 사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처음 뵌 자리니까요. 정해진 틀보다는 중구난방으로 주고받는 이야기. 저도 참 좋아해요. (웃음)






대중과 건축 사이 사교의 장,

인디 살롱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일'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건축을 전공했는데요. 4학년 때 동기에게 공간 하나를 의뢰받았어요. "야, 석준아. 우리 부모님이 건물 1층을 카페로 운영해 보라고 하는데 네가 좀 도와줄래?" 하더라고요. 


학생인데요? 

네. (웃음) 건축 전공자라 맡긴 거 같은데. 저도 학생 신분이었잖아요. 혼자 하기는 부담이 컸어요. 후배, 동기를 모아 방학 때 셋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때 여러 가지 많이 느끼고 배웠어요.


무엇을요?

건축을 신성시 여기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어요. '건축의 미래' 혹은 '공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하는 게 건축학도가 지녀야 할 태도라 생각했는데요. 이게 클라이언트와 소통할 때는 일종의 벽처럼 작용하더라고요. 


어떤 식으로요?

앞서 의뢰받은 공간 얘기인데요. 당시 건물은 마당이 있는 구조였어요. 저는 마당에 일부러 좁은 골목을 인위적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죠. 틈새로 작은 빛만 보이게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싶었거든요. 골목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어 발걸음을 건물 쪽으로 유도할 수 있게 말이죠. 그랬는데.


그랬는데.

클라이언트는 반대로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람이 많이 오려면 정문을 크게 뚫는 게 좋겠다고 말이죠. (웃음) 저는 건축적인 접근이라 생각한 방식이 일반 대중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전공자와 비전공자 사이의 간극의 크기를 체감했던 경험이었죠. 


그래서 작업은 잘 마무리 됐나요?

휴학하고 그 작업에 3~4개월 정도 매달렸어요. 현장 근처에 월세방 하나 구한 다음, 아침마다 현장으로 갔죠. 덕분에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실제로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카페가 됐거든요.


대단하시네요. 학생 신분으로 사실상 실무를 하신 격이잖아요. 그것도 개인적으로. 그럼 그때부터 스튜디오를 운영하신 건가요?

아뇨. 이후에는 졸업하고 한 건축사무소에 취업을 했는데요. 의뢰가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요?

네. 작업물을 보고 의뢰해 주시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전 건축을 하고 싶었어요.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안 했죠. 


그런데 어쩌다?

건축 회사에서 하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모습과 좀 달랐어요. 실제로 보지도 않은 벽돌을 그림으로만 쌓고, 배수관 단열재도 기호로만 그렸거든요. 주야장천 도면만 그리는 게 답답했어요. 명망 높은 건축가가 되려면 이런 것들을 다 직접 다뤄야 하는데, 하는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런데 의뢰가 자꾸 들어오니까 한 번 해보기로 했죠.


그게 가능한가요? 

보통은 그럴 수 없는 구조인데요.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맡은 프로젝트가 백화점 내 팝업 스토어였어요. 9평 정도 되는 공간에 집기 제작해 설치하는 작업이었는데. 팝업 스토어는 공사 기간이 짧거든요. 하루 이틀 내로 끝내는 게 대부분이라. 그런데 이후에 일이 또 물 밀듯이 들어왔어요. 결단을 내려야 했죠.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실무에 대한 경험과 감각을 익히고 싶은 욕구도 컸고요. 결국 소장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전해드리고 퇴사했어요. 그게 2014년도 4월 1일이었네요. 


심정이 어떠셨나요?

아직도 생각나요. 그날 저녁,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야'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눈이 막 떠지더라고요. 긴장돼서. 당시에 제 주변 모두가 반대했어요. 망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냥 회사 쭉 다니는 게 어때'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어요.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 같아요.

오히려 의욕이 생겼어요. 제가 가려는 길을 응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니까 좀 열받더라고요. (웃음) 왜인지 모르겠는데 자신감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시공하는 분들이 유행하는 디자인을 찍어내는 게 대중들이 인식하는 인테리어였어요. 유명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개인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와 다소 거리감이 있었고요. 그 사이에 제가 서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제겐 그곳이 블루오션처럼 보였어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였으니까. 


실상은 어땠나요?

6개월 넘게 일이 안 들어왔어요. (웃음) 당장 생활비가 바닥을 보이니 막막했죠. 그러다 스타벅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어요. 하루 4시간 일하는 파트타임자리였는데 생활비도 벌면서, 작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랬는데.

 

그랬는데.

당시 점장님과 최종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들었어요. 수염을 잘라야 한다고. 매뉴얼이었나 봐요.  

 

그 시절에도 수염을 기르셨군요.
네. 집에 가는 길에 친한 동생한테 전화해서 말했어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짜 밀어야 하나 하고 막 얘기했죠. 동생은 어차피 다시 자라니까 밀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그날 저녁에 일이 들어왔어요. 

 

와.
그래서 수염 안 밀고 작업 했어요. (웃음) 꽃집 프로젝트였어요. 그 후로도 연달아 의뢰가 들어와 지금까지 인디살롱을 운영할 수 있었어요.

 

우리 일상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인생이 참 재밌어요. 



소설처럼 탄생한 인디 살롱(Indie Salon)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왜, 뮤지션 중에서도 인디밴드가 있고 대중적인 밴드가 있잖아요. 저는 건축에서 인디를 찾고 싶었어요.
 

건축에서의 인디? 좀 더 풀어주실 수 있나요?

인디 문화라는 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변인의 방향을 쫓아가는 것, 그것도 나쁜 건 아니죠. 근데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만의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인디(indie)라는 단어를 썼어요. 살롱(salon)은 17~18세기에 성행한 공간이죠. 본인이 좋아하는 책이나 그림 등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자리. 저는 건축에서 인디를 찾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건축가랑 일반 대중 사이의 간극이 크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걸 좁히고 싶은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기도 해요. 

 

학부 시절부터 인디살롱 설립까지. 일관된 방향성으로 달려오신 것 같아요. 

일관된 태도만큼은 명확하다고 생각해요. 유명 건축가들이 사람들에게 준 영향력을 저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어쨌든 인디살롱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겠습니다. 







플로어 아니고 슬라브


지금 앉아 있는 자리, 슬라브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어느 날, 건물주가 지하 공간 임대 났는데 활용할 생각 없냐고 묻더라고요. 이 건물 3층에 인디살롱 사무실이 있거든요. 하겠다 했지만 처음부터 카페로 운영할 계획은 없었어요. 오히려 작업실처럼 쓸 생각이 컸죠. 작업이 없을 때는 사실상 유휴지처럼 방치돼 있었어요. 


사진: 양홍규

그런데 왜 카페를? 

종종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여기 내려와서 커피 마시며 담소를 나눴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여기를 일종의 휴게실처럼 활용해볼까 싶었죠. 하나씩 만지다 보니 '이왕 하는 거 본격적으로 커피도 팔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구나. 층고는 원래 낮았나요? 

아뇨. 원래는 더 높았어요. 근데 좀 아늑한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어딘가 입장해 아늑한 느낌을 받는 천장 높이를 2050mm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높이를 연출하려고 조절했어요. 


슬라브(Slab)라는 이름의 의미는 뭔가요?

어떤 이벤트나 상황이 발생하려면 당연히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필요한데요. 이를 든든히 받칠 수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택한 단어예요. 사실 슬라브는 비표준어예요. 슬래브(slab)라고 쓰는 게 맞죠. 근데 관용적으로 슬라브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그렇군요.
보통 도면에 바닥을 F(floor)로 표기하는데요. 2D에선 플로어로 표기하지만 바닥판에 구조가 들어가는 3D의 영역에서는 슬라브라고 칭해요. 공간을 만드는 건 결국 도면만 그리는 게 아니라 실제 세계에 뿌리내리고 지탱할 수 있는 역학과 구조, 디자인이 연결된 총체잖아요. 그래서 슬라브라고 이름 짓게 됐어요. 


공간 콘셉트는 뭔가요?

건축가 혹은 공간 디자이너의 작업실 분위기를 전하는 거였어요. 


그런 느낌이 어렴풋하게 들긴 했지만, 직관적인 느낌은 또 아니에요. 

건축에서 우스개 소리로 그런 말이 있어요. '장바구니 모양의 마트'. 학부 시절 그렇게 건축하라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은 지양하고 있죠.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것 중 하나는 바로 이 테이블인데요. 

사막의 오아시스는 맹수나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가 목을 축이러 가는 장소잖아요. 저는 슬라브에서도 경계와 구분 없이 다양한 행위가 벌어지길 원했어요. 그래서 이 '오아시스 테이블’을 제작해 비치했죠. 유선형의 형태로 공간에 맡게 크기와 형태가 다르게 연출돼요.

 

이름이 참 귀엽네요. 그런데 이 '오아시스 테이블'이 슬라브에만 있는 건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첫 번째 오아시스 테이블은 인디살롱 사무실에 있어요.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 그 사이로 나무나 조명이 올라올 수 있게 만들었는데요. 공간 가운데 놓여 있어 자유롭게 아이디어 회의와 미팅도 하고 다 같이 밥도 먹고 편히 쉴 수 있는 용도로 쓰고 있어요. 두 번째 오아시스 테이블은 '문화식당 성수'의 단체 테이블, 세 번째는 '피어몬트'에 있어요. 피어몬트의 테이블에는 독서나 작업을 할 수 있게 조명을 추가했죠.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슬라브에 있는 이 테이블이에요. 여기서 커피도 내리고, 누군가 작업도 하고, 어떤 이는 데이트도 하는, 다양한 장면들이 빙 둘러앉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공: 장석준
사진: 양홍규

벽면에 위치한 수납장은 어떤 용도인가요? 

그간 제가 모았던 소품, 혹은 작업하다가 남은 파편들을 비치했어요. 일종의 건축가 아카이브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사진: 양홍규


턴테이블 뒤에도 공간이 있어요. 아까 몇몇 직원분들이 드나드는 모습도 봤는데. 

뒷공간은 원래 가구나 샘플 만드는 작업실이었는데요. 지금은 타이프라이터(@typw.kr)라는 브랜딩 회사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브랜딩 회사도 운영하고 계신 건가요?

네. 생각보다 공간에 대한 방향성이나 계획 없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로고부터 스토리까지 다 설계해야 하는 상황들이 빈번하다 보니 자연스레 브랜딩도 하곤 했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제대로 해보자 한 거예요.  



뭐랄까. 슬라브는 인디살롱의 가치관이 한껏 묻어 있는 장소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멋진 공간에 맞도록 구현하려 노력했어요. (웃음)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은 공간이 아니다 보니, 이상적인 형태로 공간을 구성하기 용이했죠. 이를테면 사각형의 공간에 기능적인 요소는 한쪽에 집어넣고, 가운데에는 좀 더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오브제를 놓을 때. 저는 이걸 완벽한 공간으로 느끼거든요. 직선과 곡선이 동시에 존재하니까요. 슬라브는 그 조화가 잘 갖춰졌다고 생각해요. 직선의 수납공간이 벽면에 있고, 오아시스 테이블이 가운데 비치돼 있잖아요.


테이블에도 어떤 힘이 있는 거 같아요. 지나치게 밀착한 느낌도, 그렇다고 너무 멀리 앉은 느낌도 안 들어요.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거리처럼 느껴지는 적절한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양도 중요하지만 결국 공간에 사람이 들어섰을 때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 고민하거든요. 오아시스 테이블도 그랬던 거 같아요. 한 칸 정도 띄어 앉아 있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거리감을 계속 연구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고립감도 주지만, 옆 사람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에게는 적당한 여지도 확보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감. 





    


요즘 공간에 대하여

 

몇 년 전만 해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공간 문법들이, 지금은 '경험'이라는 키워드로 설득력을 얻는 모양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 공간에 대한 소장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뭐가 됐든 다양한 공간이 많이 생기는 건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선택지가 많아지면 분명 각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공간이 있을 거거든요. 그럼 그것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고, 그걸 바탕으로 좋은 공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달라질 거고요. 이런 문화가 지속되면 공간에 대한 의식 수준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마트인데 장바구니 모양' 같은 공간이 생기는 거도 나쁘다고 볼 수 없는 거죠? 

네. 근데 거기서 그치면 안 돼요. 주목을 얻은 그 이후로도 좋은 게 이어져야 하죠. 그런 예시들이 반복적으로 생산돼야, 대중들도 어디가 좋은 공간인지 본인만의 기준을 정립해서 정의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더 볼 수 있게 되는 거고요. 적절한 예시일지 모르겠지만, 예를 하나 들자면 저는 이케아 처음 들어올 때 두 팔 벌려 환영했거든요.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할 거라고 생각해서.  


어떤 인식이요?

가구에 대한 인식이요. 그전까지는 가구 하면 보통 가구 거리에서만 접하기 수월했는데요. 요즘은 어떤가요? 빈티지 가구도 유행하고, 관련 서적도 여기저기 출간했고요. 대중에게 가구를 디자인의 범주로 넣도록 만들었죠. 무엇보다 가구를 사서 본인이 직접 만들어 본다는 거, 이것도 엄청난 거거든요.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가지 공간들이 생겨나는 과정 속에서 체감과 경험이 누적되면 하나의 취향과 관점이 될 거예요. 이 과정들이 축적되면 공간의 본질에 충실한 것들이 존속하는 문화가 조성될 거고요. 


요즘 공간 외에, 소장님의 요즘 관심사는 어떤 건가요?

보통 업계에는 인디살롱처럼 독립된 회사 하나가 작업하는 경우도 흔한데요. 최근에는 코워킹(co-working) 방식, 그러니까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같이 작업하더라고요. 인디살롱에서 일하던 친구들도 꽤 많이 독립했는데요. 퇴사하고 나서도 서로 교류하며 협업도 하더라고요. 각자만의 장점이 합쳐져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거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런 팀플레이 해보고 싶어요. (웃음)


각자만의 색이 강한 분들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면,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그게 각자에게도 다시금 영감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일 특성상,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요. 생각의 방향을 스스로 제어하는 게 발전에 마냥 도움이 되는 거 같진 않아요. 확실히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흥미로운 게 나올 거 같아요.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요. (웃음)


또 해보고 싶은 거 없으세요? 

요즘 본인만의 스튜디오 운영하는 디자이너분들 정말 잘하시고 계신데요. 알거든요. 보이지 않는 고충들이 있다는 거. 그런 분들 만나서 도움드리고 싶어요. 물론 제 상황과 전적으로 같진 않겠지만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왔으니까. 그때 일화를 공유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최근에 어떤 디자이너 분께서 저한테 고민을 털어놓으신 적이 있어요.  


어떤 고민을 털어놓으시던가요?

건축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생업도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이셨어요. 저는 유학을 가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사회생활에 빠지다 보면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 위축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사고가 말랑말랑할 때 많은 걸 주입해서 본인만의 것을 더 공고히 다져봐도 좋다고 제안했죠. 

 

그런 고민을 나눌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혹시 개인적으로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건 없으신가요?

다른 디자이너 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거 같은데. 왜 어떤 건축가나 디자이너에게는 그들만이 가진 명확한 색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요. 인디살롱에는 그런 게 없는 거예요.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도 공간이 어떻게 나올지 감을 못 잡으시고요. 인디살롱 작업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다 다르거든요. (웃음) 


음, 반대로 말하면 색이 없는 게 색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비슷한 접근인데요. 왜, 장소도, 공간도 다르고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일관된 디자인 언어로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겠어요. 때마침 주변 지인들이 그런 말을 해줬어요. 인디살롱은 스펙트럼이 넓다고. 어떤 걸 맡겨도 다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하는데. 아, 이게 우리 장점이구나, 이게 우리 색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됐죠.

  

공감해요. 

어쨌든 건축은 실용의 영역이기 때문에. 물론 제가 만든 공간이지만 그걸 내 작품이라 여기지는 않으려는 태도. 그 경계는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고 믿어요. 쉽지 않지만요. (웃음)  

 






디제잉과 디자인의 유사성


평소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이세요?

관찰을 많이 해요.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어디로 돌리는지,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그런 것들을 자주 들여다봐요. 건축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죠. 중요한 건 그것들을 기억에 잘 담는 거예요. 관찰했던 것들을 머릿속에 넣었다가 필요시 그것들을 꺼내서 상황에 맞게 비틀거나 대입하는 식으로 활용해요. 누구는 평소 그냥 보는 것들을, 저는 허투루 볼 수 없죠.


애를 쓰시는 거네요. 의식의 끊을 놓지 않아야 하니까요. 

맞아요. 예를 들어, 제가 어디 카페에 갔는데 다른 카페에 갔을 때보다 약간 이상한 느낌이 온다? 그러면 막 관찰을 해요. 벽 넓이, 천장 높이, 바닥 소재 등을 보면서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봐요.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기억을 만들어내면, 공간을 그릴 때도 이것들을 복기할 수 있어요. 사용자의 입장으로 말이죠. 그리고 진부한 말이지만 현장에서도 영감을 받아요.


현장이요?

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당연히 현장을 방문하는데요. 공간도 공간이지만 주변 콘텍스트(context), 맥락을 많이 살펴요. 주변에 뭐가 있는지, 규모는 어떤지, 이 건물이 주변 경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파악하고 관찰하는 거죠. 안과 밖을 계속 번갈아 이동하며 시선도 바꿔보고. 공간에 들어설 콘텐츠를 강조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그런 단서들을 조합해요. 

 

최근에 눈여겨보고 계신 디자이너 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있죠. 너무 궁금해서 작업도 같이 했는걸요. (웃음) 다주로(@dajulostudio)라고. 엄청 잘하세요. 본래 가구를 작업을 하셨는데 최근에는 파빌리온, 상공간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계신 듯하더라고요. 저 뒤에 조명등 보이시죠? 


네.

예전에 슬라브 놀러 오셨다가 선물해 주고 가신 거예요. 이런 디테일 풀어내기 정말 어렵거든요. 구현하려면 그만큼 도면도 진짜 많이 그려야 되고요.

 

슬라브에 참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나 봐요. 

예전부터 파티 문화를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 마시면서, 그들의 지인들로 초대 범위를 확장했죠. 다섯에서 열 명이 되고, 늘어난 인원만큼 이야기보따리가 길어졌어요. 불철주야 파티하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게 인디살롱 파티예요. 


아, 그게 인디살롱 파티군요. 지난번에 초대해 주셨던.

매해 4월, 12월 이렇게 총 두 번 진행해요. 올해도 4월에 할 예정이고요.

 

그때 다시 한번 초대해 주시면 참석하겠습니다.
꼭 오세요. 생각지 못한 교류와 다양한 이벤트들이 펼쳐지거든요. 어떤 때는 포토그래퍼랑 모델이 우연히 이 장소에서 연이 닿아 협업한 적도 있어요. 파티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만 세 팀 정도 되고요. (웃음)



파티 외에도 슬라브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일들이 있을까요?

작업한 공간들이 문을 열기 전, 슬라브에서 일종의 테스트 비슷한 것들도 해보고 있어요. 마침 3월쯤 개점하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요. 대표님이 슬라브를 엄청 좋아하세요. 조만간 여기서 팝업스토어 열어보기로 했어요. 

 

여러모로 유용한 장소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운영할 생각이에요. 카페를 오픈하신다고 하면 여기서 테스트 한 번 해볼 수 있도록 말이죠. 누군가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하는 튼튼한 도약판 같은 공간. 


아참, 저기 뒤에 있는 턴테이블 말이에요. 실제로 쓰고 계신 건가요?

그럼요. 최근 파티 때도 직접 음악 틀었는걸요. 학부 시절, 다양한 파티에 참석하곤 했는데요. 디제이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틈틈이 배웠어요. 저는 스스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하려고 하는 사람 같아요. 


다재다능하시네요. 

하고 싶은 것들을 여러 개 펼쳐 놓는 편이에요. 그것들 중 손에 닿는 걸 하다 보면 원하는 것 중 하나를 하는 삶이 되는 거니까요. 


신선한 접근이네요. 원하는 것들을 가급적 많이 펼쳐놓으면, 그중 하나는 분명하고 있을 거란 접근. 그럼 실패의 순간을 마주할 일이 없겠네요. 

그렇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보다는, 결국 뭐 하나를 이루게 된 쪽에 가까워지니까요.


파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혹시 디제잉과 공간 설계의 유사점 같은 게 있을까요? 

디제이가 끊김 없이 매끄럽게 음악을 이어가는 것처럼, 공간 설계는 입장부터 퇴장까지의 자연스러운 시퀀스를 다듬어요. 디제잉은 보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본으로 하는데요. 이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하려면 강약조절이 필요해요. 시작은 잔잔한 비트로 출발하지만, 점차 BPM이 빠른 음악으로 플로어에 있는 사람들을 고조시키도록 셋 리스트(set list)를 구성하죠. 이게 공간 시퀀스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공간도 좁은 진입로와 넓은 공간감을 적절히 섞어 시야와 동선에 강약을 조절하거든요. 


그나저나 소장님. 이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요? 제가 사진 전문가가 아니라 매번 참 어렵네요.

아, 제가 한 때 혼자 밀었던 시리즈가 하나 있는데. 


어떤 거죠?

너드(NERD) 시리즈라는 건데요. #Nerd의일주일이라고. (웃음) 여기저기 앉아 잠든 척하는 콘셉트 사진을 찍은 적이 있거든요. 그 포즈로 한 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재밌네요. 그럼 촬영을 시작해 볼게요. 

좋아요.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인디살롱 장석준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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