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1 스튜디오 프레이머
사막에 표류한 두 사람이 있었다. 키 큰 사람은 망가진 비행기를 고치려 고군분투 했다. 기름 떼 묻은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옆에 있던 키 작은 사람은 고향에 있는 꽃 한 송이를 떠올렸다. 풀을 뜯던 어린양에 입에 들어갈까 걱정했다. 그러자 키 큰 사람이 말했다.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키 작은 이는 발끈했다.
어린 왕자에게 꽃은 소중했다. 꽃 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수백만 개의 행성에 존재하는 사물 하나하나를, 고유한 개체로 여기는 힘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꽃이 뿌리내린 별도 사랑할 수 있었다. 별이 없었다면 꽃 또한 살 수 없었을테니. 그러므로 꽃이 시든다면 그에게 있어 별의 의미도 소멸할 따름이었다.
무언가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 그런 인물은 소설 바깥에도 존재한다. 스튜디오 프레이머(Studio Framer)의 김소연은 언제나 사람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꾸어 갈 공간을 정성스레 다듬고 다듬었다. 사람과 공간이 어깨동무하면,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이 공간과 이별하면, 마음 속에도 빈 공간같은 구멍들이 숭숭 뚫리곤 했다. 소설 속 어린 왕자처럼.
오늘날 공간은 이미지로 나열되곤 한다. 몇 주에서 몇 개월 걸쳐 다듬어지는 어떤 이의 노고가, 평면으로 압축돼 진열된다. 매대에 올라온 상품은 쉬이 품평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공간은 누군가 삶을 꾸려가는 터전이다. 김소연은 그 마음을 움켜쥐고 이 세계 벽 어딘가에 액자를 걸고 있다. 이미지 대신 사람, 삶을 끼워 넣은 채.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드디어 만나 뵙게 됐네요. 이전 매체 시절 연락드린 적 있는데. 당시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인터뷰는 못 했죠.
그래도 이렇게 만나 뵙게 됐네요. 반가워요.
저도요.
인터뷰 경험이 많지 않아 좀 떨리네요. 잘 말씀드려야 할 텐데.
괜찮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정리는 제 몫이라서.
믿을게요. (웃음) 저는 스튜디오 프레이머(Studio Framer)의 김소연입니다.
그간 만나온 대다수 공간 디자이너 분들은 '이걸 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경우와, '어쩌다 보니' 뛰어들게 된 경우로 크게 나눠졌는데요. 소연 님은 어느 쪽에 가까우신가요?
어릴 때부터 만들고, 그리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입시 미술을 하게 됐죠.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까워 보이네요.
네. (웃음) 처음부터 공간 디자인을 하려고 미술을 한 건 아닌데요. 고민은 했어요. 작가로 활동하고 싶은데, 디자인도 재밌어 보였거든요. 그러다 택한 게 도자 공예였죠.
공예 전공하셨구나.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말씀인 즉, 생각과 좀 달랐나 봐요.
맞아요.
어떤 부분이요?
무얼 만들지 계획하는 과정은 참 재밌었는데요. 테크닉을 계속 보완해야 하는 부분이 힘들었어요. 또, 공예는 섬세한 태도를 요하는데 그런 게 조금 안 맞기도 했고요. 그러다 시선이 옮겨졌어요. 공예에서 설치 미술 쪽으로. 환경을 조성하고, 주변과 관계 맺는 작업이 흥미롭더라고요. 그러다 아예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미시에서 거시로. 공예와 공간 설계 사이에 유사점이 있을까요?
공예와 공간 디자인의 유사점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속성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도 감동을 주고 일상 속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차이점도 있을 텐데요.
앞서 말씀드렸듯 공예에는 수양의 태도가 필요해요. 구상한 형태를 실물로 구현하려면 끝없는 기술 연구가 병행돼야 하고요. 디테일도 중요해요. 습도, 온도 등에 적합한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거든요. 무엇보다 인내심도 필요하죠. 당장 결실 맺지 못하더라도, 여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 저는 세 가지 모두 부족했어요. (웃음)
혼자 하느냐 여럿이서 하느냐의 차이도 있겠네요.
맞아요. 공간은 도면이나 3D를 그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이를 실물로 구현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클라이언트와도 소통해야 하죠. 공간은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 맺음도 중요하고, 이것들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과의 관계 맺음도 중요해요. 그래서 더 재밌다고 생각해요.
여러 명의 의견을 조율하며 공간을 만드는 일도 쉬울 거 같지 않네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업무도 쉬울 거 같지 않은데요. (웃음)
인터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인데요. 스튜디오 프레이머의 의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프레이머(framer)라는 뜻이 '액자, 틀을 만드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고 '입안자'라는 뜻도 있는데요. 이 단어가 '공간 만드는 사람'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임이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공간도 그 안에 다양한 장면들을 채워 넣잖아요.
언론에서도 '프레임을 짠다'는 말을 관용적으로 사용해요. 설계자가 벽, 바닥, 천장을 재료 삼아 공간을 만들듯, 기자는 단어와 문장으로 집을 짓는 거죠.
멋진 표현이네요.
뭐가요?
단어로 집을 짓는다는 말이요.
아, 안희연 시인의 에세이집 제목이 <단어의 집>인데요. 그걸 변주한 거예요. 출처 밝혀야죠. 레퍼런스 중요하거든요.
중요하죠. (웃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독립하신 이유가 뭔가요?
좀 복잡한데요. 제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요. (웃음) 설계한 지 딱 10년 차가 됐거든요.
오래 하셨네요.
이것만 하다 보니 힘에 부치던 시기가 찾아왔어요. 번아웃(burnout)이었나 봐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죠. 이 업계 쪽으론 고개도 안 돌리려고 했어요. (웃음)
퇴사하고 뭐 하셨나요?
사하라 사막에 갔어요.
사막이란 단어를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광활한 대자연 안에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범우주적 관점에서 나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일 텐데 대체 뭘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나' 하고요. 그런 풍경들을 보고, 그런 물음들을 던지다 보니 서서히 마음속 노이즈가 사라졌죠.
사유가 치유의 과정이 된 셈이네요.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쉬었는데요. 회복 탄력성이 생긴 건지 다시 일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공간 디자인도 결국 자기표현의 영역이잖아요. 회사에 소속되면 본인만의 디자인을 구현하기 어렵나요?
음, 하고 싶은 걸 못 한 적은 없었어요. 좋은 디자인을 제안하면 회사도 수용했거든요. 반대의 경우면 반영되지 않았지만요. (웃음) 각 스튜디오마다 디렉터 성향이란 걸 배제할 순 없지만, 그게 막 납득 못할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 구조 속에서 일하다 보면 설득력 높은 디자인을 위해 더 골몰하게 돼요.
건강한 느낌이네요.
대부분이 그렇지만, 디자인 과정도 설득의 영역이거든요.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일련의 연속이죠. 이렇게 조율하는 과정이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데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믿어요.
스튜디오 프레이머가 작업한 공간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부클릿(booklet)'이 궁금했어요.
부클릿(booklet)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 가든타워에 자리한 대여 공간이에요. 스튜디오, 행사 등을 위한 장소인데요. 클라이언트는 이곳이 건물의 역사를 소개할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되길 바라셨어요. '소책자'를 뜻하는 부클릿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배경이에요.
현장은 어땠나요?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공간이다 보니 흔적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어요. 철거를 해보니 장판은 일곱 겹으로 쌓여 있었고요. 벽에는 지층처럼 겹겹이 붙은 벽지와 오래된 신문지가 남아 있었죠.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창호 디테일, 라디에이터에 새겨진 한자 버튼, 세월이 느껴지는 화장실 가구 등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웠어요.
바깥 풍경도 남달랐을 거 같아요.
창 밖으로는 창덕궁과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이 마주하고 있어요. 현장을 둘러보다 밖을 보는데 이상하더라고요. '이 공간을 스쳐간 누군가도 지금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창밖을 바라봤겠지', '이곳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하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거든요.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나요?
시간 위에 시간을 덧붙인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50년의 시간이 축적된 공간의 아우라에 매료 됐거든요. 기존에 있던 오래된 창호, 한자로 쓰인 라디에이터 버튼, 방화문과 손잡이, 화장실 가구 등의 요소들은 최대한 유지했고요. 새로운 재료들이 이들과 조화될 수 있도록 계획했어요. 화장실에 있던 옛 타일은 살리되, 그것과 유사한 색의 타일을 이어 붙였어요. 망가진 수전은 원래 있던 수전과 최대한 비슷한 제품으로 대체했고요.
색이 참 좋더라고요.
가든 타워로 향하는 동선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뭐랄까. 거장들의 건축물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들의 작업물에 착안해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죠. 작업하면서 스펙터 북스(Spector Books)에서 출간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사진집을 많이 펼쳤어요. 컬러와 마감재의 사용 방식, 투박하지만 감각적인 디테일들을 참고했어요.
한 군데 정도 더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튜디오 프레이머의 색이 잘 드러난 공간.
있기는 한데. 거기가 지금 영업을 중단했거든요.
아.
그래서 이걸 얘기해도 괜찮을지 조심스럽네요.
아프셨겠어요. 마음이.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디자인에 있어 내 판단에 문제가 있었나', '이용자 친화적인 공간 구성을 못했던 걸까, 다른 디자인을 시도했으면 더 잘 됐을까'하고 말이죠. 정말 계속 곱씹었어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가요?
아뇨. 그 자리에 다른 브랜드가 입점해 있어요. 공간의 큰 틀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달라지다 보니 감도가 묘하게 바뀌었더라고요.
혹시 다른 브랜드가 들어섰을 때 방문해 보신 적 있나요?
지나가다가 봤어요. 어쩌다 바로 맞은편 공간에 갈 일이 있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어요.
아이러니하네요. 공간의 틀과 구성이 허물어지지 않고 계승됐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스튜디오 프레이머가 조성한 공간감이 좋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잖아요.
저는 처음 의도했던 공간이 완성도가 높다고 자부해요. 그건 스튜디오 프레이머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 클라이언트, 시공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과의 협업으로 만든 결과물이니까요. 공간은 그 속을 채워 가는 사람과 삶이 없으면 미완에 그치고 말거든요. 그런데 초기 구상과 다른, 새로운 브랜드가 공간에 들어선 걸 보니 묘하더라고요. 묘하다는 표현 외에 어떤 말도 떠오르질 않네요.
요즘에는 공간이 평면(이미지, 사진)으로만 소비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특히 후킹(hooking)에만 연연하는 카드뉴스 콘텐츠 같은 거 볼 때.
'2월에 꼭 가야 하는 공간 BEST 5' 같은 거.
맞아요.
정작 왜 '꼭'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없는. (웃음)
조회수나 주목도를 높이고자 공간을 이미지로 나열하는 걸 저는 '공간을 소모품처럼 쓴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소연 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복합적인 마음이 들죠.
입장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 할 수 없으니까요. 미감적인 차원만 놓고 보자면 '어떤 의미에서의 상향 평준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기도 해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시선이 높아지면 디자이너도 발전하는 동력이 되고, 업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만,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이 우려되긴 해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 공간의 다층적인 의미를 들여다보지 않고, 요약된 이미지로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요? 공간은 결국 누군가가 삶을 이어가기 위한 터전인데 말이죠. 아, 그리고 환경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실제로 2020년 발생한 폐기물 중 건설폐기물이 44.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죠.
철거할 때마다 '이거 충분히 쓸 수 있는 건데'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요. 어떤 신축 건물은 설치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요소들을 뜯어내는 것도 봤어요.
왜요?
인테리어 하려고요.
그렇군요.
저는 남길 수 있는 건 최대한 남기려고 해요.
앞서 말씀해 주신 부클릿도 그렇게 작업하셨죠. 남기는 게 더 어렵지 않나요? 더 고민해야 하니까.
작업 자체가 고민의 연속이라서요. (웃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어떤 요소들은 그렇게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과거에 만들어진 공간에는 그런 게 더 많고요. 흔적을 보존하는 게 공간의 역사가 될 수도 있잖아요. 미약하지만 환경에 해를 덜 끼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작업하실 때 중요시 여기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중간 지점을 잡으려고 노력을 해요.
어떤 양극 사이에서의 중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굳이 표현하자면 예술과 실용 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둘 중 한쪽을 고르자면 스튜디오는 어느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어느 쪽도 아니려고 하죠. 균형을 잡으려 부단히 애쓰거든요. 말씀드린 중간 지점이 그런 의미기도 하고요.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거예요. 클라이언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클라이언트의 입장이요?
제가 감정 이입을 좀 잘하거든요. (웃음) 정말 몰입해요. '내 돈으로 내 공간 만든다'는 상상을 해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런 관점으로 클라이언트와 소통하죠. 간혹 '이건 디자인적으로 꼭 필요한데'하는 요소들도 있는데요. 이럴 때도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아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되거든요.
감정 이입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정말 심했는데요. 지금은 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한 거 같네요. (웃음)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느낀 건, 확실히 지나친 감정 이입은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거였어요. 최선을 다하는 마음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태도도 중요하더라고요. 지치지 않고 이 일을 오래 하려면 더더욱 말이죠.
공간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형태, 구조의 밸런스, 비율이요. 조형성이라고 하죠. 컬러나 텍스쳐는 시선을 쏠리게 만들기엔 용이하지만, 전반적인 구조를 살피기 어렵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형태와 구조의 완성도가 있어야 색도 질감도 더 돋보이게 되고요. 스튜디오 프레이머는 마감재나 색을 다 걷어내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조형적인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도자공예를 전공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조형성을 중시하는 게 공예가 준 영향이 있다고 보시나요?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봐요. 어떤 조각품은 오직 흰색으로만 칠해져 있는데도 형태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공간에서도 그걸 적용해 보고 싶어요. 불가능한 게 아니거든요.
소연 님은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특별한 걸 하지는 않고요. 평소 습관적으로 관찰을 하려고는 해요. 오늘처럼 카페에 오면 주변을 많이 둘러봐요. 누군가 차를 마시는 모습, 행동 패턴,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책, 책을 쥔 손의 모양. 이런 것들을 보고 모아두면 공간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혹시 뭐 기억나는 사례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런 순간들을 설명할 때 '벼락 맞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써요. 장황한 문장으로 나열하기는 좀 힘든 거 같아요. 장면, 그날의 온도, 주변 향기 등 모든 게 뒤섞여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팍, 하고 나오거든요. 벼락을 맞았다는 표현 말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나 지금부터 영감 얻기 위해서 뭔가 할 거야!' 이런 태도는 아니네요.
그건 뭔가 숙제 같잖아요. (웃음) 평상시에 보고 느낀 것들을 머릿속 집에 보관해요. 하나 둘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필요한 순간에 방을 한번 쓱 훑어보는 거죠.
집 한 채 지을 정도라니. 머릿속 평수가 넓으신가 봐요. 저는 고작 서랍 하나 정도 들어가는 크기인데.
아까 말씀하신 '단어의 집'이란 표현을 따라 해 봤어요. (웃음)
집 대신 액자(frame)로 하시죠. 이름이 스튜디오 프레이머니까.
좋아요. (웃음)
최근 방문한 공간 혹은 전시 중 기억에 남는 곳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두 곳이 떠올라요. 하나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한 <프리츠 한센 150주년 기념전 - '영원한 아름다움'> 전시예요. 근래 봤던 전시 중 제일 좋았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먼 나라에서 온 디자인과 한국의 전통 공예, 그리고 장소가 지니는 상징이 뒤섞였는데 그게 조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장소랑 시간을 초월해 가치 있는 것들이 한자리에 어우러진 모습이 말이죠. 그게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에 있는 RexKL이라는 곳이에요. 1940년대쯤 지어진 극장 건물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리노베이션 한 곳이죠.
어떤 게 흥미로우셨나요?
의자가 계단 형태로 놓여있는 옛 극장의 구성을 활용해 서점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흥미로웠어요. 극장 시절 모습도 상상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새로운 장면을 볼 수 있게 하니까요. 거기서 좀 특이한 광경도 목격했는데요. 지역에서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거기서 찍더라고요. 주민분들도 마땅한 목적성을 가지지 않은 채로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기도 하시고요.
공원이 떠오르네요.
사실 한국에도 복합 문화 공간은 많지만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느낌은 아니거든요. 거긴 달랐어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그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공간이 엄청 세련됐다거나 디자인적으로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과거와 오늘날의 모습이 겹쳐진 형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확실히 켜켜이 쌓인 시간성에 매력을 느끼시는 모양이에요. 부클릿 작업 방식도 그렇고.
그런가 봐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마지막 맞죠? (웃음)
정말입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아까 사막 여행 얘기 해주셨잖아요. 왜 하필 사막이었나요?
제가 <어린 왕자>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사막을 가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어린 왕자>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이 다르게 읽힌다고들 하던데.
맞아요. 어릴 적 읽었을 때랑 성인이 됐을 때 느낌이 다르거든요. 같은 해에 읽어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매번 새롭게 와닿기도 하고요.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요. (웃음)
공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기와 시절, 감정 상태에 따라 방문했을 때 느끼는 감각이 달라진다는 점에서요.
그렇네요.
스튜디오 프레이머가 만드는 공간은 어떤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원하시나요?
우리를 둘러싼 시간, 배경, 상황에 따라 매번 다채롭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고요.
생텍쥐베리가 쓴 <어린 왕자> 같은 공간이라고 봐도 될 거 같네요.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웃음) 그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어린 왕자>처럼 오래도록 손이 가는 공간. 잊힐만할 때쯤 책장에서 꺼내보고 싶은 장소.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스튜디오 프레이머 김소연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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