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 10 워프앤우프
뭍을 떠난 지 85일째. 입질 없는 고요 속에 의지는 꺾일 것만 같았다. 그 무렵, 낚싯대가 흔들렸다.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수면 위로 드러난 형상은 그야말로 월척. 엿새간의 씨름 끝에 기어코 청새치를 낚아챘다. 뱃머리를 부둣가로 돌렸다. 꺾이지 않던 마음이 결실을 맺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출몰, 뱃전에 매달렸던 청새치는 앙상한 뼈만 남고 말았다. 그리하여 빈손으로 돌아오게 된 일화를, 노인은 덤덤하게 읊었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꺼져가는 누군가의 열정에 다시금 불을 지피기도, 건조한 일상 속 꿈이라는 샘물을 솟아오르게 만들 수도 있다. 늙은 어부의 이야기를 듣던 한 사람의 마음속은 물결치듯 일렁였다.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닥치는 대로 써 내려갔다. 노인의 이름은 그레고리오 푸엔테, 그의 삶을 문장으로 나열한 건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노인과 바다> 속 문장은 그렇게 완성됐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이야기는 영감이 된다. 으스러져 가는 건물, 공허한 터전을 마주한 워프앤우프(WARP AND WOOF)에게, 마주 앉은 이의 서사는 언제나 설계의 토대가 됐다. 헤밍웨이는 누군가의 일화를 재료 삼아 종이 위에 단어의 집을 지었다. 워프앤우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재료 삼아 지면(地面) 위에 공간을 새겨 넣었다.
듣고 쓰고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사람. 그로 인해 정작 본인들의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던 사람.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자 부로컬리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워프앤우프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들이 만든 공간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삶이 담겨 있었다. 감응하지 않고서는 길어 올리기 힘든 이야기들이 빼곡히 나열돼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승훈이라고 합니다.
권윤선: 워프앤우프의 권윤선이고요. (이하 권)
임재홍: 워프앤우프의 임재홍입니다. (이하 임)
녹음을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권: 그럼요. 시작된 건가요?
네.
임: 잘 포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최근 건축 잡지 <브리크>와 인터뷰를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앞으로 더 주목받는 스튜디오가 되실 것 같은데요.
임: 아닙니다. (웃음)
인터뷰는 어떠셨어요?
임: <브리크>는 평소 관심 있는 잡지 중 하나였어요. 기성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색이 선명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매체에서 인터뷰 제의가 오니 떨리면서도 좋았죠. (웃음) 그런 와중에 부로컬리에서도 연락이 와서 '뭐지. 왜 우리가 지금 이런 주목을 얻는 거지?' 하며 의아했어요.
먼저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해당 인터뷰는 아직 읽어보지 못해 다소 중복되는 질문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데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부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워프앤우프는 무슨 뜻인가요?
임: 워프앤우프(warp and woof)는 날실(warp)과 씨실(woof)을 뜻해요. 가로 세로로 엮인 실들이 하나의 면 조직을 만들어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촘촘히 짜여 단단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요. 두 명의 디자이너가 엮여 하나의 회사를, 스토리를 만들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권: 공간 운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게 워프앤우프라는 이름을 지은 계기였어요. 디자이너가 하나의 실이라면, 클라이언트가 또 다른 실이 되는 거죠. 서로가 촘촘히 엮여 짜임새 좋은 하나의 이야기를, 공간을, 배경을 만드는 거죠.
실무 경력은 어느 정도 되시나요?
임: 6년 정도 된 것 같네요.
권: 저는 4년이요.
계속 한 곳에서만 일하셨나요?
임: 아뇨. 여기저기서 나름의 실무 경력을 쌓았어요. 첫 회사는 메인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서포트에 가까운 업무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기본 설계, 기획 설계만 하고 실시 설계는 시행사에 맡겼는데요. 실무에 대한 갈증이 있던 제게 있어 조금 아쉬운 지점이었죠. 두 번째 회사는 좀 더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택했어요. 쇼룸, 대형 식당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곳이었죠. 거기서 경력을 쌓은 뒤 다시 한번 이직했어요. 그리고 독립을 했습니다.
기획 설계와 기본 설계, 그리고 실시 설계의 차이점은 뭔가요?
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기획 설계는 말 그대로 공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지에 대한 틀부터 그리는 일이고요. 기본 설계는 기획을 바탕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지 시각적으로 그려가는 작업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편하실 거예요.
권: 3D 이미지를 뽑아내거나 평면도 작업을 떠올리시면 돼요.
임: 실시 설계는 착공 후 공간의 디테일을 푸는 방향성을 시공사가 참고할 수 있게 도면을 작성하는 과정이에요. 실시 설계가 마무리되면 시공사가 견적을 내고요. 이후 공사가 진행이 되면 이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인 감리를 진행하죠.
명쾌한 답변 감사합니다. 권 실장님은 4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권: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하나.
편하게 얘기해 주세요.
권: 전공은 실내 디자인이었는데요. 사실 이 일을 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임 실장이 한 건축사무소의 채용 공고를 알려줬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넣었는데 덜컥 통과 됐고. 거기서 6개월 정도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건축 회사이다 보니 실내 디자인과 방향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결국 인테리어 회사로 이직을 했어요. 그러다 다시 한번 이직을 했고, 그곳에서 한 1년 반 정도 일하다가 퇴사했는데 임 실장이 도와달라 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같이하게 됐어요.
독립하게 된 이유는요?
권: 사원으로 일을 하다 보니 클라이언트와 직접적인 소통을 나누기가 어려웠어요. 다양한 주제로 질문한다던지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죠.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임: 회사 소속으로 프로젝트를 총괄해도,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는 건 대표 디자이너의 결정에 따르는 경우가 잦아요. 디자인의 최종본이 특정 스튜디오, 혹은 메인 디자이너의 색이 묻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표현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시공 현장에서 경험을 좀 쌓고 싶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어 독립하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두 분, 막역한 사이처럼 느껴져요.
임: 결혼할 사이예요. (웃음)
아 정말요? 언제 하세요?
권: 5월에 해요.
축하드립니다. 채용 공고를 추천해 주셨다길래 예사롭지 않다 싶었어요.
임: 그때부터 사귀고 있었어요. (웃음) 같은 학교를 다녀가지고.
공부도 하시고 사랑도 하시고.
임: 그렇죠. (웃음)
이제 본격적으로 워프앤우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권: 어떻게 설명드리면 좋을까요?
작업하신 공간 중 하나를 소개해 주시면 작업 과정이 선명하게 보일 것 같아요.
임: 아, 그러면 에르디(@errd.seoul)를 보여드리면 될 거 같은데.
권: 피노키오(@pinocchio_seorae)로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뭐든 좋습니다.
권: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클라이언트와 교류하는 시간이 적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인터뷰하듯 대화해요. 지금 세 명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하듯 말이죠. 뭘 좋아하는지, 뭐 때문에 이 사업을 시작하시려는지까지. 누군가는 시시하다고 느낄만한 것조차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해요. 대화 속에 작업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야기가 곧 영감의 재료다,라는 말씀 같네요. 여기가 피노키오인가요?
권: 네. 피노키오는 서래마을에 있는 젤라토 바예요.
이름부터 흥미롭네요.
권: 사연이 있거든요.
사연이요?
권: 네. 어린 시절, 클라이언트분이 어머니와 자주 갔던 경양식집 이름이 피노키오였어요. 거기 갈 때면 마치 놀이동산 가듯 기분이 들뜨고 즐거웠다고 말씀하셨죠. 지금도 그 장소를 떠올리면 마음이 포근해진다면서, 본인 또한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름을 피노키오로 지은 거예요.
의미 있네요.
권: 그런데 젤라토는 경양식과 달리 차가운 요리잖아요. 안온한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메뉴였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따뜻한 공간감과 차가운 메뉴가 충돌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권: 발레를 전공하셔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쯤 클라이언트가 이미지보다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이게 좋은 힌트가 됐죠.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감각 경험에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어떤 식으로요?
권: 평소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던 순간의 기억과 감각을 떠올려봤어요. 개인적으로 '따뜻한 이불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참 맛있다고 느끼는데요. (웃음) 왜 그렇게 느낄까 곰곰 생각해 보니 감각의 대비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상반된 온도가 양쪽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잖아요. 이걸 공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죠. 따뜻한 공간에서 먹는 차가운 젤라토.
감각 경험을 시각화해서 풀어내신 거네요.
권: 네. 마침 현장 조건도 묘하게 맞아떨어졌어요. 볕이 잘 들지 않아 그늘진 장소였거든요. 차가운 느낌이 강했죠. 그런데 건물 외관은 좀 달랐어요. 켜켜이 쌓인 고벽돌과 헝클어진 덩굴들이 포근한 온도를 머금고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기존 건축물의 인상을 안쪽으로 가져가면 밖에서 느낀 온기를 내부로도 유입할 거라고 말이죠.
내부는요?
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모습이 있었어요. 일자로 대면하는 게 아니라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느낌이었죠. 이러한 의견을 통해 바의 형태를 라운드로 결정했어요.
흔히 보던 형태의 바는 아니네요.
권: 가구의 형태를 통해 삼삼오오 둘러앉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직원과 이용객이 대면했을 때 불편하지 않은 거리를 확보하는데도 고민했고요. 무엇보다 가구의 둥근 촉각에서 느껴질 수 있는 느낌을 상상했죠.
공간을 작업할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쓰시나요?
임: 구조, 형태, 경험에 집중해요. 단순하지만 본질에 가까운 요소들. 구조와 형태로 이용객의 경험을 얻게 하는 걸 우선적으로 생각해요. 공간의 본질, 중심, 무게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잡으면, 나머지는 수월해지거든요. 색감이나 마감재를 덧칠하는 건 그다음이죠. 이것들은 보조의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권: 마감이나 색감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데 주력하는 것 같아요. 피노키오도 말씀드린 형태로 작업을 했고요. 워프앤우프가 설계한 다른 공간에도 위 공식을 적용했죠.
에피소드도 인상 깊지만, 당시 기억을 풀어내는 두 분의 모습도 인상적이네요. 저는 기억력이 진정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보거든요. 당시 대화에 진심이었기에 이렇게 생생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권: 운 좋게 이야기가 풍성한 클라이언트를 만났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한 움큼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걸 그러모으지 못한 분들도 계시거든요. 결국 디자이너는, 이야기를 가진 분들의 문장을 좀 더 가지런히 윤문해 명료한 공간으로 구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임: 모든 클라이언트들이 명확한 의견을 가진 건 아니에요. 본인만의 서사를 말해달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저희가 여러 가지 제안을 드려요. 물론 그 근거는 클라이언트의 취향이나 생각이지만요. 아무튼 이야기의 유무보다는, 클라이언트에 대해 계속 파악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나 싶네요.
예전에는 공간 디자이너란 멋진 거 만드는 사람 정도로 인식했는데요. 인터뷰를 할수록 다양한 역할들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뭐랄까. 일종의 상담사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공간 만들기 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스스로를 톺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겠어요.
권: 그런 시간이 공간 운영자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고, 어디 서 있는지를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정리하자면 워프앤우프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첫째는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둘째는 이야기에서 길어 올린 형태, 셋째는 구조를 통해 제공하는 경험, 마지막으로 색과 마감재 선택.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임: 맞아요.
권: 정리를 너무 잘해주시네요. (웃음)
이번에는 워프앤우프가 가장 최근 작업한 공간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워프앤우프의 철학이 공간에 어떻게 구현됐는지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임: 최근에 작업한 공간은 에르디(ERRD)라는 곳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를 소개해 드리면 좋을 것 같네요.
거기는 어떤 공간인가요?
권: 카페예요. 1호점은 서울대 근처 '샤로수길'에 있고요. 2호점과 3호점이 곧 문을 열 예정이에요. 저희는 2호점과 3호점을 작업했어요.
오늘 소개해주시는 에르디는 몇 호점인가요?
권: 용산에 있는 2호점이에요. 에르디는 '에브리데이(everyday)'의 속어(slang)인데요. 같은 듯 보이지만 달라지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는 걸 추구하는 브랜드죠. 하루하루가 품고 있는 가치, 매일매일이 분명 다르다는 감각을 어떻게 공간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러다 제 일상을 떠올려보게 됐죠.
일상 중에서도 어떤 순간을 생각하셨나요?
권: 하루의 끝자락이요. 직무 특성상 모니터 아니면 현장만 보기 일쑤였다 보니 하늘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요. 퇴근길에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봐요. 그럴 때면 모양이 조금씩 바뀌는 달을 발견하게 되는데, 변화한 달의 형태를 보고 날짜 바뀌는 감각을 깨달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 경험을 발판 삼아 공간에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의 변주'라는 콘셉트가 나온 배경이에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임: 네. 준공 사진은 아직 일부만 작업이 마무리돼서. 설명하면서 보여드릴 사진이 많지는 않은데. 3D 이미지를 보면서 설명드려도 괜찮을까요?
저야 너무 좋죠.
권: 파일이 어딨지. 여기 있나?
임: 여깄나.
권: 저 폴더 한번 열어봐
임: 없는 거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모습, 부럽네요. 같이 일하면서 다투는 경우는 없었나요?
권: 초반에 많이 싸웠어요. (웃음)
임: 좀 특이하게 느끼실 수 있는데요. 가급적 프로젝트를 같이 안 하려고 해요. 초창기에 한 번 해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메인 디자이너 포지션을 하나씩 맡고, 혼자 행하기 어려운 작업의 경우 다른 한 사람이 서포트하는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도 권 실장도, 회사를 나와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유 자체가 각자가 가진 관점과 이야기를 공간으로 풀어내기 위해서였으니까요.
권: 의견을 말할 때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하려 해요. 의견을 줄 수는 있지만, '이건 별로야' 혹은 '이게 더 좋아' 이런 표현은 지양하죠.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기 위해서요.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감이 중요하죠.
임: 맞아요. 일이 재밌고 좋아서 같이 하기로 한 거니까요.
권: 서로의 의견 경청하는 건 정말 중요하긴 해요.
임: 찾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권: '공간의 변주'라는 콘셉트에 맞게, 가변성을 더하려면 어디에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는데요. 아무래도 시각 정보를 다채롭게 펼치는 장치들이 필요해 보였어요.
어떤 장치들이 있나요?
권: 우선 대문이요. 대문을 설치해서 닫혔을 때랑 열렸을 때 확연히 달라지는 풍경을 연출했고요. 바닥에는 레벨(높이) 차이를 주어 변주의 개념을 이어갔어요. 높낮이가 달라지면, 눈앞의 풍경 또한 묘하게 바뀌거든요.
임: 가구도 다채롭게 보이도록 제작했어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형태로 비치도록 말이죠. 정면에서는 면적 요소만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가구 사이 틈이 있어 형태가 조금 다르게 보이거든요. 의자와 책상의 경우, 목적에 따라붙었다 떼었다 할 수 있도록 가변성을 더했어요. 이런 식으로 변주라는 키워드를 공간 곳곳에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벽에 붙은 포스터는 뭔가요?
임: 벽에 붙은 포스터는 각각의 요일을 상징하는 도형이라고 해요. 에르디 측, 그래픽 디자인 담당자분께서 제작하신 거예요.
권: 에르디에는 몇 가지 콘텐츠가 마련돼 있어요. 메모지도 그중 하나인데요. 이용객이 그날 느낀 단상들을 기록할 수 있도록 구비해 둔 거예요. 이외에도 영수증 사진기가 있어, 그날의 모습을 이미지 형태로 소장하거나 남길 수 있게 했죠. 저희는 이런 콘텐츠들이 잘 진열될 수 있는 벽선반을 제작했고요.
다채로운데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 있네요.
임: 공간을 만들다 보면 부분적인 것들에 집중하기 쉬운데요. 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려고 노력해요.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 말이죠.
권: 지역성도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한옥이 가진 마감재나 구조 같은 것들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했거든요.
아, 원래 한옥이었군요. 상태는 어땠나요?
임: 심각했죠. (웃음) 1958년도에 지어진 한옥이었는데요. 바닥은 흙투성이였어요. 옛날 한옥들은 보통 바닥에서 떠 있는 구조잖아요.
네.
임: 벽 같은 경우도 손가락으로 누르면 무너져 내리고.
권: 그 정도는 아니지. 부스러졌지.
임: 정정할게요. (웃음) 아무튼 난도 높은 공간이었어요. 핵심은 기존 공간 요소 중 무엇을 어떻게 남길까 하는 선택이었죠. 특정 기둥이라던지, 천장을 뜯었을 때 나온 서까래라던지, 이런 것들은 구조상 없애기 힘든 부분이 있어 남겼고요. 나머지는 다 새롭게 구성했어요.
이런 현장 마주하시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임: 막막하다 생각하죠.
권: 착잡했어요. 예산도 정해져 있다 보니. 어디에 강약을 두고 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니까요. 보통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그래도 벽, 바닥, 천장은 있거든요. (웃음) 그런데 이 현장은 사실상 벽이 절반 정도 없는 상태였고, 바닥도 아예 없고. 천장은 너덜너덜했어요. 인테리어를 고민했다기보다는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대인 듯 해요. 미감적인 부분에서는 볼거리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쉬운 지점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공간을 만드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임: 1년 전까지만 해도 과열되는 인테리어 시장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애초에 공간 설계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 중 하나도 조금 오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였거든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특정 지역의 공간들이 소모되는 분위기를 목격했죠. 빠르게 소비되고 자극으로 도배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문제의식이 머리에 맴돌았어요.
지금은요?
임: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이점도 명확하다고 봐요. 공간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부분도 있거든요. 특히 기술력을 동반한 팝업 스토어 같은 공간들은 저에게도 여러모로 신선한 영감이 되기도 하고요.
권 실장님은 어떠세요?
권: 아쉽긴 하지만 필연적인 현상인 것 같아요. 요즘처럼 편집되거나 가공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않나 싶어요. 그렇게 소비되거나 소비될만한 공간이라면 적절한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소상공인이 하는 카페 같은 영역으로까지 번져가는 건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그리고 공간이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 모두에게 열린 장소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데요. 지나치게 이미지에 집중한 공간들은 마치 누군가 예약해서 사용하는 스튜디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공간이 누군가의 배경지로만 활용되는 현상. 사진 촬영 할 수 있지만, 함께 이용하는 장소이니만큼 서로 배려하는 문화도 자리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몇 가지만 더 여쭤보고 마무리하면 좋겠어요. 사실 맨 처음 했어야 하는 질문인데요. 실내 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임: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건축 시공사에서 일하셨거든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한 건물을 소개해 주셨어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었는데요. 그게 어린 제 눈에 참 볼품없어 보였어요. (웃음) 그런데 공간에 담긴 내용들은 의미가 컸어요. 5.18 기념관이었거든요. 어린 제가 이해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지만, 기억만큼은 강렬했어요. 밋밋한 외관에 깊은 의미가 담긴 공간. 그 후부터 쭉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의미를 담은 공간이, 미적으로도 멋지면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권 실장님은요?
권: 어릴 적, 어디 기어 들어가는 걸 좋아했어요. (웃음) 집에 다락방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노는 게 즐거웠죠. 학창 시절에는 경복궁 역 근처 카페를 좋아했고요. 아마도 그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공간이 지닌 힘에 대한 의식을 하게 된 거 같아요.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공간이 풍기는 어떤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의식 말이죠. 그래서 선택하게 됐어요.
앞선 질문과는 조금 다른 결의 질문인데요. 공간을 '잘' 만든다고 말할 때 어떤 기준을 토대로 판단하시나요?
임: 시대의 흐름을 잘 타는 디자인이 보기 좋다고는 생각해요. 거기에 더해진 디자이너의 감도가, 대중에게도 사랑받는다고도 생각하고요. 결과물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취향의 영역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의미 있는 디자인, 좋은 공간의 판단 기준이 프로세스라고 생각해요.
프로세스요?
임: 네. 공간을 볼 때 스튜디오나 디자이너가 떠오르지 않는 공간, 즉 특정 디자이너의 색이 크게 안 느껴지는 공간을 저는 작업의 프로세스가 좋다고 해석하거든요. 디자이너나 스튜디오의 색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디자인 작업을 매번 다르게 풀어냈다는 방증이기도 하거든요.
인터뷰(inter/view), 그러니까 대화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임: 예전에 독립출판사에서 계간지 형태로 발행하는 매거진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워프앤우프의 첫 인터뷰였죠. 질문지를 읽는데 여러 가지를 깨달았죠. 회사를 설립하던 초기에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성이 있었는데, 일에 치이다 보니 그런 것들을 잊고 지냈던 걸 알게 됐거든요. 누군가의 질문이, 스스로를 반추해 보게 만들어 준 거죠.
권: 단순히 매체에 소개된다는 걸 떠나 저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제안이 없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지냈을 거 같아요. 인터뷰, 대화는 저희에게 일종의 이정표 같은 거죠.
2023년, 워프앤우프의 목표가 있다면요?
권: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고 싶어요. 좀 더 다양한 타입의 공간 디자인을 기획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임: 경계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특정 형식에 갇히지 않고, 보다 새로운 관점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겠죠.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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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로컬리 속 영감 발견: 청킴제과
인터뷰: 꿈의 레시피로 구운 공간, 청킴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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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워프앤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