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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Apr 14. 2023

순수성을 표상하는 창작자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4 조남인

앞뒤가 바뀌면 의미가 변하는 것들이 있다. 분배란 단어가 그렇다. 두 낱말이 자리를 고쳐 앉으면 분배는 배분이 된다. 분배와 배분.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는 상이하다. 주지하듯, 분배(distribution)란 엄밀히 분리해서(divide) 나누어주는(tribute) 행위에 가깝다. 기준과 비율은 최종심급에 의해 정해진다. 종국엔 결과물, 즉 각각에 균일한 양을 할당했는지가 긴요해진다. 


배분(allocation)은 조금 다르다. 저울 눈금에 고개를 갖다 댄 다음, 미세한 오차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목적과 이에 따른 상황에 맞춰 어딘가에(to) 무언가를 위치(locate) 시키는 판단행위에 속한다. 무엇을 취하고, 어떤 걸 덜어낼지 고민하는 일련의 과정. 그러므로 배분은 발 디딘 상황 속에서 최선을 찾는 여정에 가깝다. 개별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무엇보다 종요로운 일이 된다. 
 

공간을 만드는 건 이 둘 사이의 되먹임 구조로 이루어진다. 설계란 3차원의 구조 속에 벽과 바닥, 천장을 구획하고 거기에 맞는 역할을 각각에 부여하는 작업의 순환이다. 무엇을 덜어내어 어디에 더할지 골몰하는 과정 또한 부단히 반복한다. 분배 없는 배분은 공허하고 배분 없는 분배는 맹목적이다. 둘은 공간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창작자 조남인은 ‘균등한 분배’를 중시한다. 공간을 구상하고, 구성하고, 표상하는 사람이 말하는 분배는 무엇일까. 그리고 분배를 균등하게 한다는 건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네.


처음 뵙겠습니다. 김승훈입니다. 우선 섭외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릴게요. 

좋습니다. 


매 인터뷰 말미에 하는 공통 질문이 있어요. 평소 주목하거나 관심 있게 보는 디자이너를 추천해 달라는 내용인데요. 얼마 전 인터뷰한 꼴 스튜디오(@kkol.studio)의 디자이너 세 분 모두 남인 님을 말씀해 주셨어요. 

영광이네요. (웃음)


다만, 접점이 없어 다가가는 게 조심스러우셨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를 잇는 가교가 돼보기로 했죠. 

그렇군요. 우선 저를 추천해 주신 디자이너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 주세요. 지켜봐 주신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덕분에 에디터 님도 만나 뵙고 좋네요. (웃음) 저는 가구 및 공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 디렉터 조남인입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프로젝트 디렉터’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디자이너’라는 이름 자체가 좀 무겁게 느껴져서요.


이유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라고 여기고 바라보는 분들이 계신데요. 그들과 같은 택(tag)을 제게 붙인다는 게 어렵게 느껴져요.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위한 기준이 굉장히 높은 편인  같네요말에 무게를 싣는 느낌

그 단어를 안 쓰는 게 노력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언젠가 제게 디자이너라는 택이 붙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죠. 


 시점이 언제쯤 도래할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웃음)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제 작업을 꾸준히 봐주던 누군가들이 언젠가 저를 표현을 할 때 디자이너라고 여겨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프로젝트 디렉터’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요.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지양하는 이유는  알겠어요반대로 ‘프로젝트 디렉터 소개하는 이유도 있을까요

프로젝트를 단순히 처리해야 하는 업무로만 생각하지 않아요. 제게 주어진 하나의 임무로 여기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공간 설계 혹은 물리적인 현상을 다루는 일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디렉팅 하기 위해 대단히 노력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 공임을 많이 들여 작업하는 편이기도 해요.


어떤 식으로요

공간의 미감이나 완성도부터 공간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 스타일링 같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요. 최근 제가 한 플랫폼에서 영화와 공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임장을 맡게 됐는데요. 영화와 공간의 연결점을 곰곰 생각했는데 결국 기획이고 연출이더라고요. 하나의 그림을 그려보고, 연출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하나하나를 디렉팅 하는 부분에서 말이죠. 프로젝트 자체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면 남인 님을 프로젝트 디렉터로 소개하면 좋을까요

프로젝트 디렉터라고 소개를 하면 좋죠. 당연히 좋은데. 저는 클라이언트 분들과 소통 시 ‘의뢰인’이라 표현하고요, 저는 ‘창작자’라고 명시하고 있어요. 창작자라 소개하는 게 좋겠네요. 창작자 조남인(@simone_cho)입니다. 








균등한 분배에 대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좀 드려보려고 해요. SNS에 작성하신 글을 읽었어요. '균등한 분배'에 관한.

아, 그 글을 읽어보셨군요.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프로젝트를 임무처럼 대한다’고 말씀드렸던 지점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프로젝트 하나에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어요. 가용할 수 있는 예산, 현장 위치나 환경, 계절에 따른 시공법, 동시대 흐름처럼 여겨지는 디자인의 결 등이 그렇죠.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다 이루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그럼 저는 여기서 어떤 부분들을 합리적으로 취하고 덜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돼요. 균등한 분배는 그런 개념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사진: 손미현

이런 고민의 과정에 빠져들게  이유가 있을까요?

맡은 프로젝트를 단순히 도구와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기 위한 방법론이자, 보다 넓은 의미로는 나름의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풀어주실  있을까요?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프로젝트의 목적과 다르게 본인의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방식은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쉽게 변질시키기도 하죠. 저 스스로 그 부분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창작자가 본인의 결을 투영하는 건 아주 당연하고 좋은 방식이지만, 그것만을 앞세우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균등한 분배’는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 중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어요.


사진: 손미현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중심을 잡는다는  쉽지는 않을  같아요

클라이언트를 위해 작업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클라이언트 편에 서는 건 아니에요. 앞서 말씀드렸듯, ’균등한 분배’는 무게중심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는 균형 잡기예요.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제 나름의 방법론이죠. 저 역시 항상 외줄 위에서 한쪽으로 무게가 쏠려 넘어지지 않도록 끝없이 노력해요.


정리하자면 ‘균등한 분배 본인의 창작욕만을 앞세워 작업하는 태도에 대한 경계그리고 예산이나 입지 조건과 같은 외부 요인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최선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는 일련의 고민이네요어찌할  없는 영역과 어느 정도 통제할  있는 영역 사이에서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련의 작업 자체가 ‘균등한 분배’로 향하는 과정이겠고요.

그 정도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앞서 제가 말에 무게를 싣는 느낌이라고 하셨잖아요. 


.

공간도 똑같아요. 구성 요소 하나하나에도 이유가 다 있어요. 절대 의미 없는 선택을 하지 않죠. 말씀해 주신 선택할 수 없는, 그러니까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지점과 통제할 수 있는 지점 사이에서 밸런스를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그 이유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거고요. 


이제  정리가 되네요. ‘분배’란 프로젝트들을 아우르는 과정에서 택한 결론으로 이해했는데요. ‘균등한이라는  어떤 의미인가요판단 척도나 기준이 있을까요

취하고 버리는 것의 비율을 좀 비례하게 가져가는 것, 이것이 ‘균등한’이란 단어의 의미였어요. 저는 한 프로젝트를 디렉팅 할 때 취하고 버리는 비율을 균등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풀어주실  있을까요?

흔히 실내 디자인 하는 분들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더하는 작업을 한다고들 일반적으로 많이 생각하시거든요. ‘더함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시죠. 맞아요. 실제로 기존 공간이 가진 형태에 많은 것들을 덮어 씌우는 ‘더하기'를 많이 하죠. 근데 그렇게만 작업하면 필연적으로 기존의 것들을 굉장히 많이 버리기도 해야 해요. 


그렇군요.

예를 들어 공간이 가진 원래 수도가 우측 벽에 있었는데, 그게 싫어 좌측 벽에 수도를 다시 제작하는 경우가 있죠. 새로운 것(좌측 벽 수도)을 취하려고 공간이 가진 원래 형태(우측 벽 수도)를 바꾸는 과정, 이게 ‘더함의 디자인’이에요. 물론 현장의 여건과 상황 때문에 필히 변경해야 하는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그럴 때는 다른 무언가에서 밸런스를 잡기 위해 더더욱 고민을 하죠. 저는 이런 과정 속에서 취하고 버리는 비율을 동일하게 만들어, 공간의 본래 모습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이용하는 합리적인 접근을 지향해요. 


‘균등한 분배’의 사례를 공간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시면 보다 더 이해하기 수월할 거 같아서요.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이곳, ‘Simone Cho Office’에도 말씀드린 ‘균등한 분배’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이곳은 원단과 미싱기가 상주하던 작고 허름한 공장이었어요. 벽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바닥에는 묵은 때가 잔뜩 있었죠. 창문도 대단히 낡아 좋은 미감처럼 느껴지진 않았고요. 다만, 공간이 지닌 형태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이걸 돋보이게 하면 충분히 멋진 공간이 되기라는 확신이 있었죠. 문제는 제게도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결론은 대수선보다는 환경 정리 및 개선하는 방식, 그리고 본래 구조가 가진 장점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됐죠. 

사진: 손미현


대수선보다는 정리  개선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어느 부분이 그런가요?

천장을 기준으로 원래 벽이 하나 내려와 있었어요. 그 뒤로 주방 싱크가 숨어 있었고요. 배수구는 딱 하나 있었고, 바닥은 단이 살짝 올라와 있는 형태였죠. 뜯어보다 발견한 부분들인데, 이게 참 재밌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균등한 분배’를 시도했어요. 


어떻게요

작업 전 여러 가지 방식을 고민했지만, 결론은 그냥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먼저 높은 단은 공간 바닥과 이어주는 계단 형태로 구현했어요. 기존 것(높은 단)에 저의 생각(낮은 단)을 하나 덧대서 자연스럽게 계단처럼 만든 거죠. 아랫단 사이즈는 제 발 하나 올라갈 규격으로 구성했어요. 사실 ‘싱크를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게 필수 요소는 아니었는데요. 현장에서 만난 우연한 요소를 활용한 것도 균등한 배분의 일환이었어요. 아, 이 얘기도 해드리면 되게 재밌어하실 것 같은데. 싱크 위에 선반 보이시죠?


.

실은 저게 선반이 아니라 창틀이에요. 옆에 있는 창틀이랑 같은 거예요.


지금 보니 그러네요?

창틀을 새로 짜려고 발주를 했는데요. 수량 체크를 해주신 현장팀과 소통 착오가 발생해 창호 하나가 더 만들어진 거예요. 아까운 상황이었죠. 이것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시공팀 분들에게 요청했어요.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잘라서 벽면에 달아달라고요. (웃음)


즉흥적이네요

제가 재활용을 대단히 잘하거나, 지향하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예상치 못한 요소들을 버리거나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려고는 노력해요. 옆에 보이는 창문 형태는 기존 건물이 가진 퇴창 구조를 그대로 둔 거예요. 사실 통유리로도 바꿀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다른 형태로 연출할 수 있었는데요. 건물이 가진 고즈넉한 인상이 너무 좋아서 그걸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같은 층에 지인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분들이 사용하는 창호의 형태와 방식을 비슷하게 해서 외부에서 보이는 맥락을 비슷하게 연출하고도 싶었고요. 그래서 소재만 아연으로 교체하고 형태는 최대한 유지했어요. 기존에 가진 인상은 취하고, 거기에 조금 더 덧대는 방식으로요. 


사진: 손미현


그렇구나.

천장에 있는 조명의 위치도 자세히 보시면 기존 조명이 있던 위치를 그대로 사용한 거예요. 따로 설계하거나 계획에 입각해서 만든 게 아니죠. 기존에 있던 배선들은 문제가 있어 제거를 하고 새로운 선을 인입(引入)했지만, 기존에 있던 전기의 통로는 그대로 뒀어요. 전기선을 빼서 버리고, 기존 천장 구멍을 취하고, 전선을 파이프로 연결해 내려서 콘센트로 만드는 형태로 덧대는 식으로요.


재밌네요.

바닥은 원래 바닥에 깔려 있던 구형 테라조를 활용한 건데요. 바닥에 묶은 떼를 갈아서 버렸고, 기존 바닥 소재 자체는 취한 다음, 여기에 코팅제를 도포해 색감이 손상되지 않게 덧대었어요. 이런 개념들이 작업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담겨 있어요. 이렇게 버리고 취하고 덧대는 비율, 중요성을 균일하게 확보하려는 게 제가 말씀드린 ‘균등한 분배’에요. 








순수함에 대한 갈급(渴急)



아까부터 계속 느낀 건데요공간이  포근해요이전 모습이 상상이  안 돼요.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공간이 어딘가 아파서 앓고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공간을 털고 뜯어낸 다음, 환기를 하고 공간을 만들기까지 약 2주 넘는 시간을 썼어요. 조금 뽀송뽀송한 상태가 됐을 때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방식이 특이하다면 특이했어요. 


뭔가요?

설계한 게 하나도 없죠. 디자인 모델링을 그려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한 거예요. 페이퍼 하나 없이 전부 구두로 만들어진 거예요.


현장에서요?

네. 만약 모델링을 했다면 독특한 요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거예요. 제가 쓸 작업실이다 보니 더더욱 신경을 썼을 테고요. 아무래도 작업 공간은 누군가 찾아와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니 말이죠.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이곳은 정말 제 공간이니까, 그간 해온 방식과는 다른 결로 작업해 보길 바랐어요. 제 공간이고, 저라서 할 수 있는 행위였죠.



그간 만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본인 공간 작업에 힘을  주셨던  같아요사무실이 디자이너의 첫인상을 담당이다 보니 말이죠간혹 그간 표현하지 못했던  원 없이 풀어낸 경우들도 있었고요. 이곳은 정반대네요.

맞아요. 그간 작업하며 쌓인 생각들이 사고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시기가 찾아왔는데요. 그즈음 많은 부분이 다양하게 변화한 거 같아요. 이런 작업도 그런 맥락의 연장일 수 있었어요.


사고의 전환이요?

한때는 저도 그랬어요. ‘잘 보여줘야 해, 멋져야 해’, 이런 사고방식에 침잠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디자인, 포트폴리오라고 하는 것들이 더더욱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계산을 많이 하지 않고 말이죠. 


그렇군요그렇다면 평소 공간을 작업하실 때는 어떤 태도로 임하시나요?

공간을 바라볼 때 ‘어떻게 만들면 주변 거리와 풍경에도 도움이 될까? 이 공간이 만들어지면 이웃과 상생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단순히 평방 제곱미터에 맞춰 짜 맞추는 게 아니라, 이 친구(공간)가 가진 장점이 뭔지 살펴보고 부족한 걸 보완하려고 해요. 공간이 섬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변 상황과 유기적으로 관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시의 문맥을 고려하는 접근이네요.

몇 개월 전, ‘오픈하우스 서울’이란 프로그램으로 공개된 노량진의 한 지하 배수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너무 흥미로웠어요. 1에서 5구간으로 나눠진 배수로 형태에 대한제국 시대의 토목, 건축 기술과 양식이 다 새겨져 있었거든요. 시대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는 흔적들 앞에서 다시금 곱씹었어요. '공간을 만드는 건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벽, 바닥, 천장으로 지구라는 표피 위에 기록을 새겨 넣는 일이구나’ 하고 말이죠. 즐겁고 영광이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해요. 


무섭다는 표현이 인상 깊네요.

그래서 매 작업마다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요.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가, 무참히 없애버리는 현상에 동조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보다는 지속성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서 준공 끝났다고 마침표로 닻을 내리지 않고요. 클라이언트와 주기적으로 소통하며 지내요. 결과물이 의도에 부합하게 활용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거죠. 그래야만 제가 구상하는 방향성이 지속성을 놓치지 않는 태도인지 확인할 수 있고요.


앞서 '지구라는 표피 위에 무언가를 새겨 넣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씀해 주셨는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을 하는 동력이 있을까요?

최근 가까운 친구랑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가 정말 '잘한다'라고 느끼는 작업자, 창작자, 아티스트들은 무엇을 가졌기에 많은 이들에게 멋지게 보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결과물에 감동할까, 하는 얘기요. 


결론이 났나요

순수성이었어요. 순수함. 창작자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지점이 하나 있어요. 창작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눈빛이 정말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논의를 나누다 보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 거리는 희열을 맛보게 되죠. 자기가 하는 일이 정말 좋아서 나오게 되는 표정과 말들. 저는 이런 게 순수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창작물과 그걸 대하는 열정이 만들어낸 모습 말이죠. 그래서 저는 순수함이 자연스러움과 연결된다고 봐요. 잘 보이기 위해 작위적인 태도로 임하는 게 아닌, 무언가를 즐길 때 나오게 되는 제스처. 이런 태도가 분명한 울림을 전한다는 걸 예전에도 생각은 했지만, 비교적 최근에 다시금 깨달았어요.



결국 공간을 대하는 남인님의 태도는순수성을 찾기 위한  아니라 순수함  자체에 충실한 행위라고   있겠네요

네. 정말, 정말 잘하고 싶어요.


‘잘하고 싶다 말이야말로 꾸밈없는 순수한 말이고마음이고태도라고 생각해요

한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습득하는데 집중했어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참고할 것들을 취하는 형식으로 말이죠.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어떻게든 안으로 주입하는 게 나름의 방법론이었던 거죠. 그러니 순수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죠. 순수함은 그냥 집에서 씻을 때 잠깐 뿐이었지. 안경을 쓰는 순간부터 절대 순수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웃음)


재밌는 표현이네요.

그래도 이게 마치 제 본성인 것 마냥 살지는 않았어요. ‘이거 뭔가 좀 잘못됐는데’라는 제동장치가 존재해서 지금까지 생각을 계속 바꿀 수 있었 거든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보석이 돼가는 과정과도 비슷한 거 같아요.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다듬어간다는 점에서 말이죠.



공간 작업을 하실  중요하게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로 정리하기는 조금 어렵긴 한데요. 단순히 공간을 탁 만들고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부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프로젝트 디렉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하고 맞닿는 지점이기도 한데요. 앞서 말씀드렸듯, 제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프로젝트로 대하죠. 공간의 운영 방식, 가구의 형태, 조명의 모습, 시대의 흐름에 맞는 커틀러리, 스타일, 공간의 형태, 주변 지역의 맥락, 이런 것들을 살피면서 그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집중해요. 어떻게 하면 공간이 보다 지속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 매번 골몰하죠. 


워낙 진지한 답변들을 듣게 돼서 여쭤보는 건데요. ’좋은 공간이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너무 어려워요. (웃음)


사실 정답이 없는 얘기죠. 2023년을 살아가는  사람이 가진 견해 정도를 말씀해 주신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순수함이 묻어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왜 그런 곳 있잖아요. 문을 열고 딱 들어갔는데 공간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느낌일지 바로 알 수 있는 공간이요. 


있죠.

그런 게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공간을 작업하기에 앞서 클라이언트와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그 계절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한 것들을 계속 묻죠. 그래야 해요.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야, 사람을 닮은 공간에 가까워지거든요. 클라이언트가 검은색을 싫어하는데, 검은색을 칠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조남인이란 사람이 묻어나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위적으로 꾸미는 게 아니라. 아, 최근 이전에 알고 있었던 목공방이 있었는데, 얼마 전 사무실 근처로 이사를 오셔서 작업을 의뢰드리려고 찾아뵀는데요. 그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뭔가요

“작가님은 작가님 디자인처럼 생기셨네요.”라고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디자인 언어가 뭔지 아직도 정확하게 설명을 잘 못해요. 그래서 ‘도대체 내가 하는 디자인의 결, 언어는 무엇인가, 내가 하는 디자인을 어떻게 언어로 명명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항상 하며 살거든요. 아직도 그게 뭔지 잘 몰라서요. 그런데 제 모습이 제 디자인을 닮았다는 한 마디를 들으니,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웃음)


그때를 떠올리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시네요.

결국 제가 하는 모든 고민과 작업은, 순수함에 다가가기 위한 일련의 과정인 것 같아요. 공간이든 디자인이든, 그걸 만든 사람의 고유성이 그 속에 묻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요.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조남인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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