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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Jul 14. 2023

음의 속성을 통해 양의 성질을 확보하는 사람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7 워크먼트

무언가를 새로 만들려면 원래의 것을 기꺼이 무너뜨려야 할 때가 있다. 가능성이란 여백은 뭔가를 전복하거나 해체할 때 열리곤 하니 말이다. 이때 공간에 남은 파편은 일종의 신호이자 흔적이 된다. 기존에 있던 형상이 무너졌으니, 새로운 걸 세울(construct) 수 있다는 여지의 신호. 


무언가를 짓는(construction) 일은 해체(deconstruction)를 전제로 한다. 건축도 그렇다. 있던 것을 허물고, 대지를 평탄하게 만든 후 새로운 걸 축조하는 식이다. 워크먼트(workment)는 철거의 과정에서 발견한 흔적(trace)들에 주목한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의 이유와 근거를 추적(trace)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 공간에 남겨진 잔여물과 흔적을 그러모아 디자인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건축이 주장과 근거로 이루어진 골조들의 집합체라면, 워크먼트에게는 기존 건물이 지닌 흔적과 속성이 주장이자 근거인 셈이다. 음의 속성을 지닌 행위를 통해 다시금 양의 성질을 확보하는 사람, 워크먼트의 조준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뵙겠습니다워크먼트(workment)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건축을 전공한 워크먼트의 조준우입니다. 워크먼트를 운영하기 전에는 피피피 스튜디오(ppp studio)를 운영했어요. 


언제부터 활동을 하신 건가요? 

대학교 3학년 무렵, 친구가 카페를 창업하게 됐는데요. 건축과 학생인 저한테 인테리어를 의뢰하더라고요. 학생이지만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호기롭게 제안을 받아들였죠. 근데 정작 해보니까 쉽진 않았어요. (웃음) 현장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현장에 뛰어들었거든요. 


쉽지 않으셨겠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만든 카페가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게 잘돼서 망원동에 있는 ‘소셜 클럽 서울’이라는 카페도 작업하게 됐죠. 장사가 잘 되는 바람에 친구는 계속 카페를 운영하게 됐죠. 저는 이걸 계기로 ‘학교 밖에서도 내 작업을 바로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요. 


건축을 전공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사실 예전부터 미술 쪽을 좋아하긴 했는데요. 입시를 통해 관심사를 이어갈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건축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됐어요. 실제로는 꽤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미술이 순수 자기 창작이라고 하면 건축은 이론에 입각해 방향성을 잡아가는, 논리적인 프로세스를 거쳐야 했죠. 그런데 도리어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지금은 건축보다 실내 디자인에 집중하는 느낌인데요

일종의 전략이에요. 보통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졸업 후 3년의 실무를 거친 다음,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죠. 저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도 작업을 했잖아요. 이 방향성을 통해 건축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요즘 인테리어 회사들이 건축을 하는 경우가 전보다 많아지고 있거든요. 종내에 워크먼트는 건축을 할 생각입니다. 


아참, 중요한 질문 하나를 빼먹을 뻔했어요. 워크먼트(workment)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워크(work)'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여러 가지 조합해 보다가 만들게 됐어요. '먼트(ment)'는 보통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로 사용되는데요.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작업 자체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워크먼트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또, 먼트로 끝나는 여러 단어들과 연관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예를 들면 '워크(work) + 디파트먼트(department)' 같은 식으로 말이죠. 
































흔적(trace)을 추적(trace)해 

디자인의 당위성을 찾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 시절 작업을 했다는  놀라워요 놀라운  결과도 좋았다 사실이고요기분이 남달랐을  같은데 어떠셨나요?

회사를 다니면서 실무를 접한 적이 없어서요. 어려움이 참 많았어요. 상상한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고 싶은데, 그런 기술이나 지식이 전무했으니까요. 맨 처음 작업한 공간은 ‘어나더 셰어(anoth.er.ahs)’라는 카페인데요. 도면 들고 을지로에 가서 가구를 제작한 다음, 공간에 옮겨다 놓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현장 공사를 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요. 그런데 결과가 좋았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웃음) 
 


사실상 공간을 가구로 구성한 작업이라고   있네요.
이건 워크먼트의 방향성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어떤 건가요

사실 인테리어는 분절된 판재나 각재들의 조합으로 공간 내부의 표면을 다루는 일인데요. 건축을 배운 저는 매스를 잡아 형태를 만드는 것에 익숙했어요. 표면에 대한 문제를 건축적으로 풀어내기에 가구가 적절하다고 여겼거든요. 가구는 스케일이 커지면 공간을 점유하는 면적도 높아지는데요. 이에 따라 사용자의 동선이나 목적성도 정해져요. 그런 이유로 큰 가구를 공간에 집어넣는 걸 방향성 중 하나로 설정하게 됐어요.
 

워크먼트가 작업한 공간 하나를 예시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같아요.

망원동에 있는 이이알티(eert)라는 곳이 있어요. 크게 두 가지 정도 방향을 잡았어요. 먼저 흔적이에요. 공간은 임대 기간이라는 나름의 생애주기에 맞춰 변화하기 마련인데요. 저는 철거 과정을 탐구하고, 그 표면에 있던 것들을 다시 활용하는 작업을 시도했어요. 


사진: 송유섭


  풀어주실  있을까요?

이이알티는 오래된 건물을 수선하는 작업이었어요. 1층은 세 개의 상가가 자리해 있었고, 2층은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죠. 저는 이러한 흔적을 활용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죠. 세 개 상가가 있던 1층은 안내와 포장을 위한 공간, 차를 내리는 공간, 커피를 내리는 공간으로 나누었고, 각각의 영역에 다른 마감재를 사용해 공간을 구분했어요. 작은 상점들로 이루어진 망원동의 맥락을 이어받고자 한 부분이에요.  


자칫하면 분절된 공간감을 조성할  있었을  같은데공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중앙의 긴 테이블과 벽 조명을 두어, 서로 다른 세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겼어요. 2층도 1층과 마찬가지예요. 주거로 활용되던 곳이다 보니 공간이 방들로 나눠져 있었는데요. 저는 최소한의 철거를 통해 공간을 연결하고, 중심에 긴 테이블을 배치해 이 또한 하나의 공간으로 묶도록 연출했죠. 또한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지, 마루 장판, 천장 장식 등의 표면 마감재에 주목, 마루 장판의 그리드를 전체 바닥에 새겼어요. 
 
앞서 표면에 있던 것들을 다시 탐구해서 작업하신다고 하셨는데요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 같은 작가가 공간을 해체하면서 나오는 것들을 가지고 미술 작업을 하는데요. 그런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고요. 보통 건축이나 인테리어나 뭔가를 만드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철거는 음의 속성을 가진 행위라고 볼 수 있거든요. 이걸 양의 성질로 변환한다는 접근이 재밌기도 했어요. 또, 당위성에 관한 이유도 있어요.


사진: 송유섭


당위성이요?

어떤 디자인을 할 때, 사실 '이 디자인에 왜 들어가야 되냐’는 걸 찾는 게 쉽지 않거든요.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러기에는 기존의 공간에 머물던 흔적을 활용한다는 게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장소에서 이런 디자인이 나오게 된 당위성, 근거를 만들어주는 부분 같거든요.


치밀한 논증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이 방식을 모든 작업에 적용해야 한다’, 이건 절대 아니에요. 신축 공간을 작업하는 경우는 철거 과정 자체가 없기도 하니까요.


앞서 ‘건축적인 실험이라는 표현을  써주셨는데요이것도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결국 건축에서 표면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관한 실험이라고 생각해 주셔도 돼요. 2D 이미지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도, 가구를 가지고 공간에 배치하는 건축적 제스처들도 그런 맥락이거든요. 최근 대구 현장 프로젝트는 평면, 오피스 랜드스케이프(office landscape)라고 하는 배열 방법을 활용했어요. 불규칙한 테이블 배치라던지, 흩뿌리는 듯한 평면 연출을 시도해 봤죠. 


사진: 송유섭


 
















요즘 공간에 대해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과 노고가 담긴 공간이요즘은 이미지로 압축돼서 소비되는 느낌이 들어요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간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진으로 남길 공간적 요소에 대한 부분은 이젠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공간이 이미지로도 잘 담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미지로도  담길  있는 공간이요?

네. 물론 공간의 목적성, 본질을 간과해선 안 돼요. 그건 디폴트죠. 다만, 카메라에 잘 담길 수 있는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해야 할 일이 늘어난 거죠. 왜냐면 어떤 공간이 생겼을 때, 그 공간을 직접 방문하는 사람보다, 사진을 통해 공간을 우선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이 훨씬 많잖아요. 이미지가 어떤 의미에서 공간을 방문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이 되기도 하니까요. 물론 사진보다 실물이 더 감동을 준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 실물을 관람하게 하려면 결국 이미지로 잘 담아야 하잖아요. 그 부분 또한 보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지에  담기는 공간. 비결이 있을까요?

대중들이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경우, 가로보다는 세로로 촬영할 때 공간감이 풍부하게 담기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저는 이제 현장을 볼 때나 이미지를 그릴 때, 공간의 특정 부분이 스마트폰 화면 크기로 크롭 했을 때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며 작업을 구상해요. 결국 비율에 관한 얘기죠.
 
이미지로 공간을 선(先) 방문하는 흐름과 현상을 막을  없으니기존 작업 태도는 유지하되 최근 현상들도 고려한다 정도로 요약할  있을  같네요이이알티(eert) 망원의 경우가  가지 조건을  충족한 사례라고   있을  같은데요.

그런가요. (웃음) 사실 이이알티 망원을 작업할 때는 증명해보고 싶었던 부분도 있어요. 


어떤 건가요?

거울 혹은 상징적인 오브제 같은 포토존이 없더라도, 이미지로 소비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 수 있다고 말이죠. 이이알티에서 사진 찍으면 인물도, 공간도 꽤 잘 나와요. (웃음) 빛이 워낙 좋아서 말이죠. 물론 이걸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신 클라이언트의 의지 덕분이에요.












공간을 매개로하는 

보다 다양한 작업을 꿈꾸며


최근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작년 12월 말,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아트 앤 사이언스(Art and Science)라는 매장이 기억에 남아요. 코이치 후타츠마타(Koichi Futatsumata)가 운영하는 케이스 리얼(Case Reeal) 사무소에서 타일을 활용해 작업한 곳인데, 디테일이 어마어마했거든요. 사각형 타일을 가지고 모서리를 뭉툭하게 처리한다던지, 미시적인 부분까지도 조각을 하나하나 내서 짜 맞춘 걸 보며 ‘이걸 대체 어떻게 했을까’ 곱씹었어요. 한국에서는 쉬이 수용하기 힘든 작업 방식과 퀄리티에 감탄했고요. 


디테일에 특히 감동을 느끼시는  같네요.

그간 작업물에서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들을 조금 놓쳤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콘셉트에 대한 고민과, 이를 잘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거든요. 요즘은 달라요. 디테일 요소를 볼 때 더 큰 감동이 밀려와요. 아까 이야기한 이미지와도 연관되는 지점이기도 해요. 공간의 특정 부분을 카메라에 담다 보면, 공간이라는 사물 혹은 상품의 디테일이 강조되고 소비되거든요. 아무튼 요즘은 이 두 가지를 신경쓰다 보니 더 많이 고민하는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인데요작업에서 워크먼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작업의 콘셉트와 방향성인 것 같아요. ‘좋은 공간’을 만드는 건 좋은 재료를 쓰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공간을 통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도 잘 전해져야 해요. 그러려면 일관된 얘기를 사족 없이 정리할 수 있어야 하고요. 최근에는 디테일도 간과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경직될 수 있다는 성찰을 했거든요.


작업의 우선순위마음가짐은 시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인  같아요중요도 외에도 예전의 생각과 달라진 지점은 없나요?

있어요. (웃음) 예전에는 클라이언트가 오면 디자이너 관점에서 중요한 것들을 강조한다던지, 제가 가진 색을 주입하는 걸 최선의 방식이라 여겼는데요. 지금은 좀 달라요.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내에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잘 받아주고 그걸 구현하는데 좀 더 비중을 쏟아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죠.


워크먼트가 사실상 1인체제로 운영 중이잖아요. 혼자서 작업을 한다는 게 쉬울 것 같진 않은데요. 고충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혼자서 일하다 보면 객관적인 태도로 작업을 바라보기 어려워질 때가 있어요. 생각이 갇혀버릴 때가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워크먼트로 작업할 때도 디자인은 말프(malf)와 계속 협력했고, 시공의 경우도 여러 업체와 같이 하고 있어요. 
 

반대로 혼자 작업해서 얻는 이점도 있을 것 같아요. 

혼자서 작업하게 되면 클라이언트와의 소통부터 디자인 시공까지 직접 관리해야 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큰데요. 프로젝트를 원하는 방향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기도 해요. 예를 들어, 디자인 담당자과 시공 담당자가 다를 경우 그 사이에서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왕왕 발생하는데요. 두 가지를 혼자하면 이 부분에 대한 오류가 줄어들죠.  


앞으로 워크먼트가 어떤 스튜디오로 자리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워크먼트만의 스타일을 더 확립해 나가면서 건축, 인테리어, 전시, 오브제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가 되고 싶어요.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워크먼트 조준우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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