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는 소확행이 없다

참선수첩(禪帖) p.1

by 분촌

P브랜드 카페는 내가 오랫동안 좋아한 곳이지만 요즘은 저렴하고 맛있는 커피가 많아 자주 애용할 일이 없었다. 상가에 저가 커피집이 자그마치 5개인데 저가 커피들 맛이 마실 만하고 그중 한 집은 원두가 좋아 맛이 일품이다. 평소 잠시 읽을 책을 들고 가거나 테이크아웃으로 공원에 가지고 갈 때 자주 애용하는 곳들이지만, 지난 2주 연속 P브랜드 카페에 주말마다 출근했다. 긴 시간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밤늦게까지 오픈되어 있고 자리가 편하며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해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세탁기를 돌려놓고,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대충 옷을 걸치고 책가방을 챙겨 어슬렁어슬렁 카페로 간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놓고 내다보는 가을 오후 풍경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 행복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안다.

이 또한 끝날 것이다.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라는 일'이 아니라

이 순간에 감사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캐럴이 울려 퍼지는 따뜻한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공부라는 욕심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이 사소한 행복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크레마가 예쁘게 떠있는 잔을 내주며 직원이 나를 흘긋 본다.

가을 오후의 평화로운 풍경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얼마 전까지 대단한 유행을 탔다.

한때는 나도 그 단어를 믿었으나, 이제 내 삶에는 소확행이 없다.

내가 아는 한, 행복에는 소소하거나 사소한 행복이 없다.

내가 행복에 '소소한'이나 '사소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당연하지 못한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나의 착각이 깊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불행'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시간이 마침내 끝났을 때,

'행복'이란 단어를 어떻게 쓰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사고로 이런저런 '불편'이 나의 삶과 생활을 바꾸어 놓았을 때,

나에게 당연했고 타인에게 당연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무 탈 없이 웃을 수 있는 그 모든 순간들이

'당연이 아닌 기적'이라는 걸 알았다.


오래전 어느 오후, 늘 건너던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던 나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세상을 잊지 못한다.

별 가루를 뿌린 듯이 반짝이던 세상.

그 이전까진 '좋았던 일들'은 많았지만 행복을 몰랐다.

나의 행복은 불행을 안 다음부터 시작되었고,

기적은 고통을 안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재가 수행자로서 참선(화두선)수행을 해나가며 일상 중 떠오르는 상념들을 낙서처럼 끄적이고 있습니다. 관심사가 비슷한 분들과 경험이나 생각을 나누고 싶어 매거진을 시작합니다. 수행이 얕은 저의 입에서 섣부른 풍월이 흘러나올까 두려워, 댓글 기능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깊거나 어려운 내용은 없으니 그간 제가 올린 동화시처럼 가볍게 읽으시며 머리 식혀가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