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첩(禪帖) p.2
15년 전, 지인의 손에 이끌려 티베트 명상을 배우러 간 적이 있다. 나는 화두선을 하므로 다른 명상을 굳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배우러 갈 마음이 없었지만 상대는 끈질겼고 나는 못이겨 끌려갔다.
안국역에 있는 조계종전법회관에서 개설된 과정이었고 일부 스님들도 관심이 많아 배우시는 과정이라니 그럼 이 기회에 어떤 건지 경험이나 해보자 싶었다.
오체투지 방식의 절과 매우 독특한 호흡, 관세음보살 이미지를 활용하는 명상법이 주였다. 나에게 맞는지 어떤지는 미뤄두고 어쨌든 두 달 기간의 과정 동안 열심히는 했었다. 지도 법사님이 오체투지와 호흡을 집에서도 하라며 과제를 주셔서 저녁마다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두 달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법사님이 모두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법사님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깊이깊이 내려가라고 했었던 것 같다.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어느 대문 안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기는 파란색 전복과 복건 차림으로 마당에 쪼그려 앉아 놀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마루 난간이 높이 떠 있었다.
이제 일어서서 대문을 나선다. 이때부턴 아이가 보이지 않고 풍경만이 보인다. 마당을 가로지른 후 나무 계단을 올랐다. 나는 너무 작아서 두 손으로 계단을 짚으며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자 눈앞에 드넓은 마루가 펼쳐졌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걸어간다. 헛간 같은 게 보인다. 갑자기 너무 무서워져 눈을 번쩍 떠버렸다.
다시 눈을 감았지만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법사님이 모두에게 눈을 뜨라고 했다. 혹시 영상 같은 걸 본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다. 난 누구나 어떤 이미지든 보았을 거라고 믿었는데 손을 든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달랑 두 명이었다.
법사님이 본 것을 말해 보라 하여 설명을 해드리니 그 아기 도령이 내 전생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에 무서워서 못 갔던 장소를 끝까지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전생이라니 그런가 보다 할 뿐 그걸 어찌 증명하겠는가마는,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이 찾아왔다.
지하철에서 신문지를 거두어가는 할머니를 보는 아침이면 출근한 후 자리에 털썩 앉자마자 울었다. 원래 잠이 많은 편이 아닌데 자꾸만 자고 싶어졌다. 매일 한밤중에 잠이 깨고, 잠이 깬 후에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가족이든 누구든 통화만 하려고 하면 눈물과 함께 울음이 나와서 통화를 할 수 없었다.
2주가 넘어가도록 매일 똑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신경정신과를 찾았더니 경미한 우울증이란다. 내 기분엔 경미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신약이 있대서 좋은 건가 싶어 한 알 먹었다가 너무 놀라서 그만두었다.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공포가 밀려오더니 30분 정도 지속되었는데, 그게 공황 상태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의사 선생님은 약이 내 증상에 비해 너무 강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반이나 사분의 일로 쪼개서 먹다가 늘려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런 물질을 더 이상 내 몸속에 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매일 저녁 백팔배와 염불, 참선을 해나갔다. 티베트 명상 과제는 그만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또 잠이 깨었다. 그날 밤은 눈을 뜨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진언을 염송 했다. 한동안 그러고 있자니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흰 저고리에 머리를 풀어헤친 남자였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 슬펐다. 나는 그렇게 슬픈 남자의 뒷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는 죄인의 몸인 것 같았다. 옥에 갇혀있거나 사약을 먹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냥 아는 것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언 염송을 끊지 않고 계속했다. 잠시 후 그가 사라졌고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그날 이후 우울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수년간 그때의 우울증이 외적 원인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티베트 명상 기간 동안 했었던 호흡법이 더 큰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호흡에는 신체 저변의 것들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어떤 날은 명상하는 동안 내 양쪽 무릎 근처에서 약한 에어컨 바람 수준의 찬 기운이 계속해서 새어 나와 놀라기도 했는데, 그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뿐 아니라 의식의 깊은 곳까지 펌프질 하듯 끌어올리니, 아뢰야식(제 8식. 모든 업의 씨앗이 저장되는 곳)의 종자까지 끌어올린 것일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법사님이 그 아기 도령이 내 전생이라고 했을 때 긴가민가 했던 것과는 달리, 슬픈 뒷모습을 한 죽은 남자는 본능적으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명할 길은 없지만.
아기 도령과 그 남자가 무슨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
전생을 보는 일이 그리 어이없이 간단하단 말인가 싶어 아기 도령이 내 전생이란 걸 처음엔 그다지 믿지 않았다. 반이나마 믿기 시작한 건 그 남자 귀신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지금도 그 뒷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죄를 지어 죽었을까, 억울하게 죽었을까?
이번 생에 별로 복이 없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남았다.
그 영상들이 내 전생이 아니라 내 무의식이 짜낸 드라마라면? 정말 쪽팔릴 것 같다는 것.
(ㅁ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