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첨해의 후회

by 분촌

죽현은 왕실과 길선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예언자 발천이 첨해를 만나고 갔다는 소식을 귀띔해 준 대등이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 첨해의 병세가 매우 나빠졌고, 아로는 며칠 전 갑자기 길선을 불러들였다. 길선은 새 이사금 즉위식 이후 첨해와 아로를 고운 눈길로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아로 역시 길선을 따로 불러들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대등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꼭 필요한 대화만 짧게 나눌 뿐, 눈길조차 주지 않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발천이 다녀간 후 갑자기 길선을 따로 만나고, 서불한의 품계를 내린 것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길선이 데려온 여인과 아기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길선의 수레에 태웠지만, 궁궐까지 그들을 미행했던 양질과 양적은 여인과 아기를 똑똑히 보았다. 아기를 보았다는 말에, 죽현은 마음이 혼란하여 종일 마당을 서성거렸다.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길선은 교활하여 욕심에 눈이 멀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 아기를 데리고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죽현은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람에 부대끼는 대나무밭만 바라보았다.

마당 안의 저녁 햇살이 손바닥만큼 작아졌을 때, 종일 부지런히 일하며 다니던 다래어멈과 새미어멈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다래어멈의 손에는 계란 파는 집에서 사 온 계란 한 꾸러미가, 새미어멈의 손에는 방금 밭에서 뜯어 온 채소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다래어멈과 새미어멈은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다래어멈이 말했다.

“죽현 님, 서불한께서 내일 당장 달못으로 떠나실 것 같답니다. 서불한 댁 하인 하나가 계란장수 아낙에게 귀띔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번엔 새미어멈이 말했다.

“장터 사람들 말로는, 길선 님 댁 하인들이 하루 종일 제사 준비로 부산을 떨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저녁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들어간 후, 죽현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에 사락거리는 댓잎 소리를 들으며 한참동안이나 꼼짝없이 서 있던 죽현은 마침내 양질과 양적을 불렀다.

“날이 밝거든 몰래 길선 일행의 뒤를 밟아라. 그들이 아기를 데리고 있으면, 기회를 엿보아 아기를 빼오너라. 만약 들키거든 내 이름을 대거라.”

그리하여 양질과 양적은 다음 날 먼동이 트기도 전에 움직여, 달못으로 떠나는 무리의 뒤를 밟게 되었다. 큰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에 어린 무사들은 가슴이 설레면서도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다.

한편, 첨해는 아로가 길선에게 서불한의 품계를 내리고 달못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길선이 달못으로 떠나고 있다는 말에, 첨해는 급히 서리를 불러오라고 시켰다. 곧 서리가 첨해의 방으로 왔다. 첨해는 서리만 남겨두고 모두 나가게 한 후, 도후로 하여금 문 앞을 지키게 하였다.

“말해보아라. 이사금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러나 서리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길선이 아기를 데리고 달못으로 가고 있느냐?”

서리는 들릴 듯 말 듯 모기만한 목소리로,

“예.”

하고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금이 길선에게 무엇을 약속했느냐?”

첨해는 숨이 찬 듯 몇 번이나 말을 끊고 쉬어가며 물었다.

“진한의 상황이 나아지면 서불한과 혼인을 하시고, 왕위를 서불한께 넘겨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사금께서는 그리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놓으십시오.”

서리가 죄지은 사람처럼 간신히 대답을 하였다. 첨해는 두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죽현 숙부를 불러다오.”

문 밖에 있던 도후가 다급히 달려가 죽현을 데려왔다. 죽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첨해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숙부는 내가 달님께 저지른 일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발천은 나라를 살리려면 달님이 묻힌 날 태어난 아기를 산 제물로 바치라 하더군요. 나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로에게 털어 놓았더니 길선을 시켜 그 일을 하려고 하는군요. 나의 숙부 죽현, 나는 후회합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숙부께 왕위를 드렸어야 하는 건데, 우리 부부가 한순간 욕심을 이기지 못해 너무나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군요. 숙부, 부디 아로를 이끌어 주세요. 그 아이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사로를 지켜주세요. 아기를 살려주세요. 백성을 제물로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첨해는 눈물을 흘렸다. 죽현이 첨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마마, 아기를 구할 아이들을 이미 보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급벌찬 양진의 아이들이라 용맹과 무술이 뛰어납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첨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굳고 어두웠던 첨해의 얼굴에 긴장이 풀어졌다. 첨해의 눈은 마치 아름답고 믿음직스러운 무언가를 바라보듯 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첨해의 눈앞에 둥글고 환한 달이 떠올랐다. 그 아래로 어린 남자 아이 하나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밤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조그만 손을 올려 달을 가리키자, 부모님도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미소 띤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머니, 아버지…….”

첨해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잠들듯이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