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과 양적은 급벌찬 양진의 아들들이었다. 양진은 첨해 이사금의 명에 따라 사도성에 이주해 살며 해안 경비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흙비가 내린 후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던 지난 해 여름, 사도성은 사흘이 멀다 하고 왜구와의 전투가 벌어졌다. 양진은 수많은 왜구를 무찔렀지만 자신도 왜구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양진을 따라 싸운 사도성의 많은 장정들과 아녀자들도 목숨을 잃었고, 왜구는 양진에게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사도성의 집들을 불태워버렸다. 양질과 양적은 어머니가 미리 땅 밑 저장고에 감쪽같이 숨겨 놓아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마을이 불타고 왜구가 떠난 후, 저장고 덮개를 열고 나온 두 사람의 눈앞에는 온통 검은 재와 연기뿐이었다. 마을도 사라지고,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양질과 양적은 잿더미가 된 마을을 뒤로 하고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겨울이 시작될 즈음 국읍까지 오게 되었다.
어느 추운 저녁, 이틀 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형제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터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마침 부리산을 다녀오던 죽현이 두 사람 앞을 지나게 되었다. 죽현은 손에 들고 있던 떡 꾸러미를 내려다보았다. 장터를 지나오며 떡이 팔리지 않아 울상인 떡장수에게서 몇 개 산 것이었다.
죽현은 형제에게 다가가 떡을 내밀었다. 둘은 떡을 받자마자 누가 뺏어가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런, 떡을 그렇게 급히 먹으면 체하고 말지.”
죽현이 근처에 있는 주막으로 달려가 물을 한바가지 얻어 와서 건네주었다. 형제는 물을 몇 모금씩 마시곤 또다시 떡을 씹는 둥 마는 둥 먹어치웠다. 죽현은 두 사람을 마주한 채 쪼그려 앉았다.
“너희들 어디에서 왔느냐?”
죽현이 물었다.
“사도성에서 왔습니다.”
양질이 대답했다. 죽현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사도성이라고? 너희들이 그곳에서 살아남았단 말이냐?”
형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저는 양질이라 하고, 제 아우는 양적이라 합니다.”
이번에도 양질이 대답했다. 죽현이 두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비의 이름이 무엇이냐?”
“급벌찬 양진이십니다.”
양질은 대답을 한 후 고개를 숙였다. 양적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다. 죽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죽현은 양질과 양적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날부터 죽현과 두 소년은 서로를 부모와 자식으로 여기며 한 가족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죽현은 양질과 양적 말고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두 명 더 거두었다. 그들은 다래어멈과 새미어멈이라 불리는 가족을 잃은 노파들이었다.
둘 중 먼저 죽현의 가족이 된 사람은 다래어멈이었다. 다래어멈은 본래 조문국의 소민이었는데, 지독한 흉년으로 자식 내외와 어린 손자까지 잃은 후 집을 버리고 길을 나섰다. 약초를 다룰 줄 알았던 다래어멈은 약초를 구해 팔며 이 곳 저 곳을 떠돌다 사로 국읍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죽현이 며칠 동안 저잣거리를 다니며 관찰해보니, 거지 행색을 한 여인이 낮에는 길가에서 약초를 팔고, 밤에는 무너진 집터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죽현은 아이들에게 밥을 해 줄 찬모를 구한다는 핑계로 다래어멈을 거두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새미어멈도 죽현을 찾아왔다. 새미어멈은 사로국 사람으로 일찍이 남편을 잃고 하나뿐인 딸마저 시집보낸 후 혼자 살았다. 그러다 딸이 사는 곳에 전염병이 돌아 딸마저 세상을 떠나자, 손수 수놓아 만든 주머니를 팔며 이 고을 저 고을 떠돌아다니다 죽현의 집까지 오게 되었다. 새미어멈은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해다 주는 일도 하였는데, 종종 죽현의 집을 드나들던 새미어멈은 다래어멈과 형 아우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자주 다래어멈의 집안일을 거들어주곤 했는데, 그러다 어느새 그 집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래어멈 혼자서는 살림이 힘에 부친다고 여겼던 죽현은 새미어멈도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도록 해주었다.
죽현의 보살핌 아래 양질과 양적은 아버지 양진에게서 배운 무예를 갈고 닦으며 건강하게 자라났고, 다래어멈과 새미어멈은 힘을 합하여 집안일을 살뜰히 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