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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러기 Feb 08. 2021

소울, 아임뚜렛

며칠 전,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한 편씩 보았다. 픽사의 영화 <소울>과 KBS 다큐멘터리 <아임뚜렛>.


<소울>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 관람했다. 먼저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이 새로 태어난(?) 표정으로 작품을 칭찬하곤 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주 평범하고 특별나지 않은, 심지어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자의든 타의든, 인생의 거창한 목적에 현재를 볼모로 잡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끔한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팽 돌았다. 요새는 뭘 보고 울컥할 때마다 괜히 새삼스럽다. 예전엔 무덤덤하게 스쳐보냈던 것들이 이젠 좀 다르게 다가와서. 혼자 또르르 울고 머쓱한 기분.


자기 전에는 KBS에서 방영된 다큐 <아임뚜렛>을 찾아봤다. 뚜렛증후군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스틸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홀리듯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생각외로 좋았다. 인물과 삶을 보여주는 방식이 편안하면서도 선명했다. 촬영 또한 아름다웠다. 연출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장면들조차 어쨌든 예뻤고 그래서 즐겁게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뚜렛증후군이 있음을 드러내고 카메라 앞에 선 주인공들이 멋있었다.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질병 혹은 장애를 이겨내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뚜렛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을 모습을 직시하고 긍정했다.


자연스럽게 얼마 전 기사에서 읽은 HIV 감염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감염인을 지칭하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로서 PL(People Living with HIV)을 알게 되었다. 완곡하면서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본질을 회피하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각자 몇 가지씩 삶에서 지니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들은 대체로 외면하거나 감추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몸에 새겨진 흔적이든,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기억이든. 나의 일부를 구성하는 유형 또는 무형의 존재들을 떠올리면 나 또한 비슷한 심정을 느낀다. 크기가 서로 다른 양쪽 눈과 삐뚤어진 아랫니,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아무때나 마음을 집어삼키는 불안, 자기 모순과 자기 혐오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들을 안고 살아가는 내 모습을 인정하려면 좀 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떠난 제주도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현실과 다른 시간을 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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