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향으로 우산을 들어도
비가 오는 날 세상은 온통 회색이다. 눈이 부셔 아프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확 들어오는 색도 없을 때면 시선은 머물 곳을 잃고 멍해진다. 멍한 눈을 하고 집 밖을 나서는데 유독 짙은 경비실 지붕에 시선이 닿았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등학교 시절 반쯤 멘탈이 나가(무척 힘들었던 게 분명하다) 억수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은 적을 제외하고 되도록 비를 맞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내리지도, 내리지 않는 것도 아닌 빗속에서 어디로 우산을 향하든 비를 맞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차피 맞는 비라면 우산을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 하며 접으면 이내 후회하고 다시 툴툴 우산을 핀다. 하지만 오늘의 보슬비는 그냥 툴툴거리며 넘길 수 없었다.
어디로 우산을 들어도 맞을 비를 다 맞는 느낌이다. 어차피 학교를 더 다니기 글렀다는 걸 알아서 휴학을 했고 굳이 뭔가를 더 하려 하지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는 변함없을 테니 나름대로의 우산을 피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하다 못해 치트키로 '쉼'을 꺼내 들었다. 솔직히 쉴 새 없이 살았으니까, 어차피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냥 좀 쉰다고 하면 아무도 뭐라고 못할게 뻔하니까. 그런데 우산을 쓴 것 같지가 않다. 우산을 폈으면 적어도 쫄딱 젖지는 않아야 할 텐데, 내가 젖은걸 자꾸 누가 안다.
버스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무렇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냥 좀 흐리구나 하며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방금까지도 우산을 쓰고 있었으면서, 바깥의 우산 든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끝없는 환승을 거듭한 것 같다. 비는 계속 이렇게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을 텐데, 잠깐 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바깥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했던 게 아닐까.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펴고 걸어가며 문득 차 타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그들이 향하는 곳과, 차를 끌 수 있을 정도의 돈과, 그들이 통과한 시간이 부러웠다.
어느 날에는 그냥 장대비가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찔끔찔끔, 우산 쓴 보람도 없는 날보다 우산 안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억수록 비가 내리면 우산 하나에도 안도할 수 있지 않을까. 창가 바깥 전깃줄에 맺힌 빗방울이, 얼른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연달았다.
누가 뭐래도 지난 몇 년은 장대비였다. 어디에 있든 고민과 할 일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란한 빗소리만큼,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우산 삼아 버텼다. 훨씬 많이 젖었겠지만 아무렴 상관없었겠지. 우산 없이 빗속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을 테니. 그걸 알아서, 더더욱 우산을 움켜잡았다.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찾아 나서던 마음과 에너지가 아련하게 느껴질 만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장대비 한가운데서도 우산을 붙들던 내가, 고작 보슬비에 이렇게까지 침울해지는 게 증말증말 싫다.
햇빛 쨍쨍한 날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오늘만큼은 유독 화창한 날이 그립다. 젖을 일도, 우산 없이도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 있긴 했을까. 조금 젖더라도 얼른 마르던 그런 날이 오면 이렇게까지 침울한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될까. 화창한 날이 오면, 내내 내리던 비만큼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이르고서야 비가 그쳤다.
대책이 필요하다. 무작정 젖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장을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새 5년이 지났다.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브런치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