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의 환상
몇 년 전 자주 가던 동네 중국집이 있었다. 평균 이상의 맛에 도기 접시가 아닌 대나무통에 면과 밥을 담아 오는 ‘플레이팅’도 매력적이라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갔었다. 특히 볶음밥과 같이 나오는 짬뽕 국물은 정말 특별하고 얼큰했다(feat. 깨알같이 들어있는 홍합과 오징어). 굳이 짬뽕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볶음밥을 시키고 국물을 한 숟갈 들이켰는데 맛이 달랐다. 화끈한 불맛은 간데없고 푹 고아 만든 사골 육수에 가깝다고나 할까 중국집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맛이었다. 당황스러움을 뒤로 하고 사장님께 수상하고 범상치 않은 국물의 ‘근본’ 및 ‘출처’에 대해 물었는데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본인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만든 소 내장탕 국물이고 볶음밥에 이 국물을 서빙할거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셨다. 슬쩍 사장님을 바라보니 표정과 눈빛에서 흐뭇한 자신감이 넘쳐났다. 타인의 선택과 취향이 그렇다는데 내가 끼어들 틈은 없다. 하지만 예전의 짬뽕 국물은 내겐 이 곳의 ‘시그니처’였고 뜻하지 않게 그 맛과 강제 이별하게 된 소감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난처했다.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느낌에 식사를 대충 하고 나왔다. 요식업을 잘 몰랐지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나뿐만 아니라 남의 일에도 예측에서의 정확성이 높다. 그리고 남들은 세상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훨씬 빨리 변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후 매장을 다시 방문하니 그 곳은 아예 내장탕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비스로 내장탕 국물을 내놓은 건 시작에 불과했고 그동안 사장님은 수십건의 ’베타 테스트‘를 끝내신 듯 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내장탕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그 곳에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곳은 폐업했고 사장님도 바뀌어 있었다(무슨 업종으로 변경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내장탕‘ 사장님의 노력과 수고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분명 시간을 들여 많은 시도 끝에 ‘출시’한 레시피였을 것이고 내장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메뉴 변경을 반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손님들은 사장님과 생각이 달랐고 중국집을 더 선호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야심차게 만들었던 메뉴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내장탕집은 수익성의 악화 앞에 더 이상 영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사장님은 손님들이 아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여 승부수를 던졌으나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해서 성공한 경우도 있다. 패션 브랜드 ‘스타일난다’를 프랑스 로레알에 6천억원에 매각한 김소희 대표는 사업을 하는 동안 본인 취향에 충실하면서도 크게 성공했다(물론 다른 부분에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제주도 여행, 반려동물, 등산 등을 원래 좋아해서 그에 관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올렸을 뿐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뜻하지 않게 사업가나 인플루언서가 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그런 점에서 ‘나이 70되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더니 세상의 법도와 일치하더라’는 공자님 말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역대급 ‘바른생활충’이었기에 때문이다. 물론 본인이야 끊임없는 수양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올바른 성품조차도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간과했을가능성이 높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거기에 승부를 걸라는 조언은 일견 낭만적이지만 반면 매우 공허하며 심지어 위험하기도 하다. 본인의 만족도가 높으면서도 금전적으로 성공하고 거기에 더해 타인의 공감까지 얻기란 정말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대중의 취향에도 맞고 심지어 돈까지 되는 ‘쓰리 콤보’가 맞아떨어질 확률은 로또에 가깝다. 그 어려움을 인식하고 재능과 성향이란 고착성이 매우 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작은 성공이 시작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조차도 힘들어하거나 잘 해내지 못한다는 점이 성공의 어려움을 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