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않는 울림
거리를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순간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도시라 이야기하는 우루과이의 콜로니아의 좁은 골목, 햇살이 잎사귀 사이로 미끄러지며 부서지고, 세상의 시끄러움이 포근하게 잦아드는 시간이었다.
나는 우루과이의 작은 도시에서, 이름 없는 거리의 악사 앞에 잠시 숨을 들이쉰 채 서 있었다. 음표가 공기 속으로 번지는 찰나, 사람은 침묵했고 마음은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노래하지 않았지만, 노래는 그녀의 몸을 통해 흐르고 있었고, 관객은 가사가 없는 노래를 마음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낡은 기타 위로 흐르는 멜로디, 그 안에 감춰진 수만 가지 사연. 처음엔 스쳐 지나갈 생각이었지만, 그 음악이 내 귀를 지나 내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요한 거리, 햇빛은 물감처럼 번지고, 악사의 노래가 바람과 엮여 거리 전체를 감쌌다.
‘왜 이토록 작은 순간에 마음을 주게 되는 걸까.’
흐르는 음악은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표정들 속에서 나를 누군가의 삶과 맞닿게 해 준다. 음악은 경계가 없고, 악사의 목소리는 나에게 묻는다. ‘넌 지금 어떤 마음으로 여기 서 있니?’
기억이란 것은 대개 사소한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인생의 장면들을 하나씩 불러왔다. 바쁜 일상, 반복되는 걱정, 내 안에서 자주 닫히는 문장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든 생각이 음악 앞에서 투명해졌다. 음악이 잠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나는 그 흐름에 조용히 귀를 내어주었다.
"음악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을 가장 먼저 말해준다.”
- 오스카 와일드 -
나는 이 말을 조용히 되새겨보며 그 악사의 손짓을 다시 바라본다. 기타 줄을 튕길 때마다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들린다. 거리의 바람이 바뀌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내 안의 두려움과 슬픔도 잠시 그 흐름에 맡겨진다. 발걸음이 빨라져야 할 여행의 순간에서 나는 음악이 가진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그녀는 기타를 연주했지만, 사실은 시간을 연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잊고 있던 것들 — 감정, 회상, 그리움 같은 것들이 기타 줄 사이에서 피어났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들었다. 나만 들을 수 있었던 속삭임. 그건 어쩌면 나 자신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우린 결국 모두 누군가의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속삭이고 싶어지는 물음이었다.
지구 정반대편에 서 있는 콜로니아의 거리는 아주 오래된 시간 위에 새로움과 낯섦이 겹쳐져 있다. 그 안에서 한 악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고, 나는 듣는 이로서 그 음악의 일부가 되어 사진으로 남겨지고, 음악은 멈추지만 기억은 그 안에서 더 오래 춤추고 있다.
내 인생도, 이 거리의 음악도, 그렇게 흘러간다. 악사는 다음 곡을 연주하고, 나는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마음속엔 작은 울림이 계속 남는다. 음악처럼, 사랑처럼, 그리고 기억처럼 변치 않는 울림이다.
작은 도시에서 만난 짧고 작은 순간.
그 안에 담긴 큰 울림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가며 순간을 노래하게 해 준다. 때때로 걷다가 멈춰야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