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을 사는 사람들
시간의 빛
지구상에서 나라 이름만으로 애절함을 느끼게 하는 곳은 쿠바가 유일하다. 짧고 단단한 음절이지만, 그 속에는 먼 나라의 오래된 기억이 숨 쉬는 듯하다. 비행기가 하강하면서 보이던 붉은 지붕과 바다의 푸른 곡선이 맞닿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이름의 낯섦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하바나의 구시가지는 낡았다. 하지만 그 낡음이 폐허가 아닌 역사처럼 느껴진다.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 창문마다 걸린 낡은 커튼,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벤치에 앉는 노인들. 그들은 시간을 낚듯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기타 소리가 엇갈리고, 골목의 끝에서는 담배 냄새와 바다의 향이 섞인다.
여기서는 아무 일도 급하게 일어나지 않는 듯이 올드카들이 고요히 미끄러지고, 해 질 녘의 노을이 각자의 건물에 자리를 잡는다. 이방인에게는 그 느림이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느림 덕분에 나의 시간도 잠시 멈춘 듯했다.
오래된 빛과 사람들
하바나의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춤을 추고 있었다. 두터운 육체가 아닌 눈빛으로, 그리고 웃음만으로 풍족하지 않은 삶을 대신하여 그 들의 얼굴엔 묘한 평온이 배어 있다. 그건 아마도, 누구와의 비교 대신 당신들만의 ‘존재’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 때문 일 것이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마다, 사진 속의 낡음은 오히려 따뜻하게 번져 나갔다. 세월에 벗겨진 색이 아니라 시간이 칠해준 색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곳에도 흉내 낼 수 없는 도시가 보여주고 있는 인간의 온도 그대로 간직한 색상이었다.
쿠바의 이름처럼
쿠바는 이상하게도, 입 안에 오래 남는 이름이다. 짧은 여운 속에 ‘기억’과 ‘그리움’, 그리고 ‘존재의 체온’이 뒤섞인다. 그곳의 풍경은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웠다. 빈곤이 만들어준 평온, 느림이 만든 리듬, 침묵이 품은 노래들 사이로 낡은 페인트와 그늘, 그리고 느리게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괜찮아, 이렇게 살아도 충분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이름을 중얼거린다. 쿠바.
세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만드는, 낮게 숨 쉬는 이름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