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0만 킬로미터의 여행
우리는 모두 시속 10만 킬로미터로 여행 중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기차를 타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서 있는 이 행성은 태양 주위를 질주하고 있다.
무심히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를 지나가는 여행자가 되고 있다.
류시화의 책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누구의 삶도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다.”
약 80억 명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상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하루를 맞이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오늘을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여행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문학평론가 피에르 바야르는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된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여행은 반드시 어딘가로 떠나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방에 콕 틀어박혀하는 여행, 이른바 ‘방콕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피에프 바야르는 마르코폴로가 20년 동안 유럽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귀동냥과 책 몇 권만으로 '동방견문록'을 썼을 것이라는 솔깃한 이야기와 함께 독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갈구하고 있던 현존하지 않은 장소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책과 이야기, 그리고 상상력만으로도 우리는 가보지 않은 도시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낯선 사람들과 여행을 함께 하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나 스스로 꽤 여러 번 찾아갔던 곳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동반자가 놀라울 만큼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어서 귀를 쫑긋하고 듣게 된다. 비결을 물어보면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앉아서 많이 봤거든요.”
조금 우스운 말 같지만 그 안에는 여행의 숨은 본질이 있었던 것이었다. 물리적, 재정적 어려움을 이겨내며 여행을 해왔던 정신적 산고는 상상력을 등반한 미디어의 세련된 기억 앞에서 작아지게 된다.
어쩌면, 나 역시 매일 시속 10만 킬로미터로 우주를 여행하면서도 그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도시는 직접 걸어도 보이지 않고, 어떤 도시는 책 한 권 속에서 더 또렷하게 살아나고 있었던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여행은 어디에 갔었는지 보다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누군가는 먼 나라의 거리에서 세상을 배우고, 누군가는 작은 방 안에서 쉽게 가보지 않은 세계를 상상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행성 위에서 지금도 같은 우주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이미 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