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이 함께 하는 시간들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반하는 일들이 생겼다. 바로 기억을 붙잡기 위한 사진 찍기와 사진만으로 완전히 담기지 않은 온도를 기억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그런데, 순간을 고정하는 사진을 찍는 일과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었다.
흐려진 배경
처음 똑딱이 카메라에서 DSLR로 넘어왔을 때, 가장 먼저 매료되는 것은 ‘아웃포커싱’이었다.
선명하게 살아나는 피사체와, 의도적으로 흐려진 배경에서 느껴지는 대비는 똑딱이 카메라에서 느끼지 못하는 묘한 사진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손은 망원 렌즈나 85mm 단렌즈로 향하고, 사진은 점점 인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기의 사진은 마치 내가 아는 것만을 나열하던 초반의 글쓰기와 닮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였지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서 문득 이상한 감각이 찾아온다. 분명 그곳에 있었는데, 사진 속에는 그 장소의 공기가 없었다. 아웃포커싱된 인물 뒤로 건물도, 거리도, 풍경도 모두 지워져 있다. 남아 있는 것은 얼굴뿐이었다. 그때 비로소 ‘넓게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유적지의 크기와 도시의 결을 한 프레임 안에 담기 위해 다시 광각 렌즈를 찾게 된다. 이 시기의 사진은 비로소 주변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글도 비슷했다. 하나의 주제에만 매달리던 시기를 지나, 많은 책을 접하게 되고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을 끌어안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도 귀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 속 아름다움에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오래갈 것만 같았던 눈부신 과정을 지나고 나니, 또 다른 정체가 찾아온다. 더 멋진 사진을 위해서는 더 먼 곳에 가야만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일상의 풍경은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
그때,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버스 창문에 맺힌 빗방울,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곤충, 손끝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바라본 사물들이 이전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서 세상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가 되면 가까이 있지만, 놓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평범함 속에서 새로운 결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게 해 준다.
글도 그렇게 변하게 되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아침의 공기, 집 안의 작은 이야기,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이 하나의 글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때의 글은 누군가의 공감을 더 쉽게 만나게 해 주었다.
결국 여기까지 오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셔터를 쉽게 누르지 않게 되고, 한 장을 찍기 위해 구도를 여러 번 바꿔보며 빛을 기다리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찍고 나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찍기 전에 이미 선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쓰는 순간은 여전히 자유롭지만, 무엇을 쓰고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은 훨씬 깊어지게 된다.
함께 가는 길
사진을 찍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게 되면서 기억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두고 사진은 바깥을 향하고, 글은 안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조금 더 오랫동안 여행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서로 다른 두 가지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