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배운 기술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었다.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는 매년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다. 전 세계 IT 기업과 유명 인사들이 모인다. 그런데 그 행사에 또 하나의 ‘참가자’가 있다고 했다. 유럽 전역의 실력 있는 소매치기들이 바로 그 들이다. 전시장에서 유명 인사의 포럼에 가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비싼 참가비를 내야 하지만, 소매치기를 만나는 건 무료였다. 실제로 일주일 동안 행사에 참석했던 동료들 중에서 절반이 넘는 인원이 본인들의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 모두 해외출장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나름 조심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당했다.
그래서 그동안 해외에서 직접 보거나 겪은 사례를 담아서 소매치기 잘 당하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모르는 사람을 너무 믿으면 된다 — 뉴욕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주변에는 우리나라 용산전자상가 같은 전자상가가 있다. 늦은 밤에도 문을 여는 가게가 많아서 전자제품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싸게 줄게.”
흑인 삐끼 두 명이 접근했고, 함께 갔던 동료는 별 의심 없이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치킨집이었는데, 돈을 먼저 주면 물건을 가져다주겠다고 하고는 돈을 받은 후 뒷문 화장실로 사라졌다. 남아있던 흑인 1명도 헤로인을 피우며 횡설수설하던 어느 순간 번개처럼 사라졌다.
모르는 사람을 믿으면 소매치기가 아니라 그냥 강도에게 돈을 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코펜하겐
덴마크 코펜하겐은 유럽의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다. 그래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다.
코펜하겐역 근처 쇼핑가를 지날 무렵은 햇살 좋은 한낮이었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이 몰려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여행객의 머리를 치고, 순식간에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도 당황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았던 주변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저 본인들이 가야 할 길만을 가면서 늘 있는 흔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해외에서는 “사람들이 많은 대낮에는 괜찮다”는 말이 항상 맞지는 않는다.
관광객 티를 내면 된다 — 파리
프랑스 파리는 소매치기의 종합 전시장 같은 도시였다. 지하철, 박물관, 관광지, 어디에서나 파리전역에서 고개 들면 볼 수 있는 에펠탑만큼 자주 보였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들 그룹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솜씨는 정교했다.
한 명이 가방을 열고, 뒤를 따르는 다른 아이가 물건을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는 다시 지퍼를 닫는다.
마치 릴레이 경기 같았는데 베르사유 궁전에서 함께 간 일행을 둘러보니 일곱 명의 가방이 모두 열려 있었다.
지하철, 몽마르트르 언덕, 베르사유. 파리에서는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 곧 소매치기의 직장이다.
눈앞의 연기에 집중하면 된다 — 로마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신문을 들고 있거나 버버리를 입은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파리와 유사하게 대개 여럿이 함께 움직인다.
임산부 차림의 여성이 갑자기 몸을 부딪치면서 크게 호들갑을 떤다.
사람들은 당황해서 그쪽을 보게 되고, 그 사이를 이용해서 뒤에서 가방이 열린다.
체코 프라하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천문시계탑에서 인형이 나오고 닭이 울 때, 모든 관광객은 위쪽을 본다.
그때 소매치기는 오직 아래쪽 주머니만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호텔 앞에서 관광버스 짐을 내리고 있을 때, 관광객들은 호텔로 들어가고 운전기사와 가이드만 남아 짐을 정리하는 순간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캐리어 하나를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소매치기임을 깨닫고 그를 쫓아가면 뒤에 남은 짐이 또 사라진다.
팀플레이의 정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실험해 봤다
호기심이 많았던 시절이기에 바르셀로나 지하철에서 작은 실험을 해보았다. 중요하지 않은 문서를 백팩에 넣고 가방을 등에 메고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10 정거장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지퍼가 네 번 열려 있었다.
분명히, 단단히 신경 쓰고 있었는데도 언제 열렸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소매치기를 만나고 싶다면 무조건 이 방법을 추천한다.
백팩을 뒤로 메고 바르셀로나 지하철을 타면 된다.
소매치기를 피하는 방법
한국의 소매치기는 보통 혼자 움직이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서 소매치기를 쉽게 당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해외의 소매치기는 한국의 소매치기만큼 정교하지 않아서 대부분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방식도 다양해서, 노천카페 테이블 위 카메라 슬쩍 가져가기, 동전 달라며 지갑 열게 만들기, 지하철 입구에서 앞뒤로 포위하기, 물건 떨어뜨려 시선 분산시키기, 가짜 경찰 행세하며 벌금 요구하기 등 말없이 가져가는 방법은 끝이 없다.
결국 소매치기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무시하는 것이다. 말을 걸어도 반응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해도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소매치기는 돈 많은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방심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